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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헤리티지 라이브, 현대차의 유산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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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ㅣ 사진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승인 2017-11-19 22: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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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적인 자동차 역사가 상당히 짧은 한국에서도 후발주자인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더 짧다. 1967년에 창립한 이후 이제야 50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런 짧은 기간이지만 현대자동차가 쌓아올린 역사, 그리고 감성은 다른 유구한 역사를 갖춘 자동차 제조사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중요한 것은 50년은 절대적으로 짧은 세월이 아니고, 그 세월동안 현대자동차는 자신들만의 헤리티지를 축적해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과 겨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동안 달려온 발자취를 짚어볼 때도 됐다. 창립 이후 기술이 없어 라이선스 생산을 해야 했던 모델들도, 기술을 얻기 위해 다른 제조사와 제휴 생산했던 모델들도 지금의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데 일조한 자동차들이다. 그리고 당시의 우리의 삶,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뜻 깊은 모델들이다. 그런 자동차들이 없었다면 지금 현대자동차가 출시하는 모델들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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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헤리티지 라이브는 뜻 깊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라이선스 생산한 포드 20M과 그라나다, 1세대 그랜저는 모두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이고 당시 부의 상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모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랜저 IG가 있고 제네시스 브랜드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잘 언급되지 않았던, 아니 박물관도 없어서 보기가 힘들었던 모델들이 실제로 전시되고 이야기의 주제로 올랐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수 있지만, 성우 배한성씨를 비롯한 패널들의 토크가 라이브를 한층 더 살렸다고 평할 수 있다.

 

포드 20M으로 시작한 현대자동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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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여러 장사를 했던 정주영은 ‘아도[아트(Art)의 일본식 발음이다]서비스’라는 이름의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는데 관공서와 계약을 맺고 자동차를 정비하기도 했다. 당시 관공서에 정비 대금을 받으러 갔다가 건설업자가 받는 많은 금액을 보고서 현대건설을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의 현대자동차그룹에 현대건설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다.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조금 늦게 설립되었다. 당시에는 자동차 제작 기술이 부족하여 외국 자동차 제조사와 제휴를 맺은 회사에 한해 정부가 허가를 내주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역시 설립을 위해 파트너를 찾았다. 처음에는 GM과 접촉했지만 GM은 제휴 수준이 아닌 완전한 점령을 노렸기에 무산되고 두 번째로 찾은 파트너가 포드였다. 다행이 조건을 맞춰서 제휴를 맺고 회사를 설립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포드가 제작했던 자동차들은 한국의 도로에서 주행하기에 너무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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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하던 현대자동차는 미국 포드가 아닌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독일 포드의 모델들 중 선택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판매되던 포드 토너스(Taunus) P7 20M을 라이선스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자동차가 포드 20M을 통해 태어나기 된 순간이다. 판매 가격은 1960년대 당시 1,846,000원 이었는데 그 때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60원이었으니 상당히 비쌌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독일 포드가 다듬은 기술로 인해 고속도로에서는 위력을 발휘했고, 때맞춰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포드 20M은 고속도로경찰차로 사용되기도 했다.

 

포드 20M의 활약 시기는 상당히 짧았다. 가격도 높았지만 1970년대 초, 오일쇼크가 발발하면서 정부가 6기통 자동차를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20M은 순식간에 단종 절차를 밟게 되지만 현대자동차의 시작, 그리고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가치가 있는 모델이다. 포드 20M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이었던 ‘김사복’이 당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라나다, 그리고 그랜저로 이어지는 플래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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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970년대 말 즈음에 그라나다가 등장했다. 8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그라나다는 당시로써는 국내에서 최고급 차량으로 칭송받았고,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그라나다가 출시되었을 당시 판매가격이 11,540,000원 이었는데 같은 시기 서울 강남의 아파트 시세가 11,000,000원  이었으니 플래그십 모델의 위용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당시 그라나다와 관련된 일화도 상당히 많고, 지금도 TV 프로그램에서 그라나다가 언급되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지위를 누리던 그라나다는 80년대 말, 아시아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잇달아 개최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모델로 탄생해야 하는 변화를 겪으면서 그랜저가 등장하기 1년 전에 단종됐다. 현재는 극소수의 모델만이 남아있지만, 높지 않은 차체와 균형잡힌 디자인으로 인해 30여년이 지난 현재 바라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디자인을 갖고 있어 세월을 거스르는 것 같은 매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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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랜저가 탄생하게 되었다. 본래 첫 번째 안이 무산되고 두 번째 안으로 그라나다의 차체를 이용하고 이탈디자인에 디자인을 의뢰해 플래그십 세단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무산되면서 마지막으로 일본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해 플래그십 세단을 제작하기로 했다. 1987년 8월에는 수입차 진출의 자유화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경쟁을 할 정도가 되는 세단이 되어야 했던 것도 있었다.

 

당시에는 ‘플래그십 세단은 FR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이와 같은 신념을 따르는 5개의 자동차 제조사를 통틀어 ‘FR 펜타곤’이라고 불렀다(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이들 중 두 제조사는 FF 플래그십 세단을 제작한다). 그런 시대에 플래그십 세단을 FF로 제작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랜저가 등장하고,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 모험은 성공이 되었다.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고 특이함을 밀어붙인 것이 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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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 등장했던 그랜저는 독특한 생김새로 인해 ‘각그랜저’로 많이 불렸지만, 사실 이 디자인 안에는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는 등 곡선이 세세하게 적용되어 있다. 또한 당시에는 없었던 최신 기술인 ‘전자제어식 MPI 엔진’과 ‘자동변속기’가 적용되는 등 플래그십 세단으로써 손색이 없었다. 그랜저의 인기는 그 뒤를 이어 출시된 2세대 그랜저로 이어졌고, 그라나다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자동차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랬던 그랜저는 한 단계 더 높은 플래그십의 자리를 ‘다이너스티’와 ‘에쿠스’에게 물려주고 그랜저 XG부터 ‘성공한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세단’으로 위치를 변경한다. 그런 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으며, 현재의 그랜저도 사실상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랜저는 시대를 넘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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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과거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거울이고 이정표다. 자동차가 백년 가까이 사용하던 내연기관을 버리고 전기 모터로 주행한다고 해도, 운전자들이 더 이상 스티어링을 잡지 않고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해도 그러한 기술들 역시 오랜 역사 속에서 다듬어지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자율주행이라는 기술 자체도 1950년대부터 프로토타입 머신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되어 오던, 아주 오랜 역사와 유산을 갖고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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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현대자동차가 ‘헤리티지 라이브’를 개최하고 자신들의 뿌리 그리고 유산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올바르게 길을 걷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미래로 흘러가더라도 그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추억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 속의 역사 하나 하나가 쌓여 헤리티지를 만들고, 이제는 당당하게 논할 수 있는 때이다. 포드 20M과 그라나다가 있었기에 지금의 그랜저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헤리티지를 통해 현대자동차가 미래로 더 나아가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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