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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세분화되는 시장과 아이덴티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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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7-01-26 06: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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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세분화되는 시장과 아이덴티티 전쟁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20여년 전 필자가 자동차 전문기자로서 첫 발을 디뎠을 때부터 상당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Dream Car’가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포르쉐 911이라고 대답했었다. 당시야 물론 자동차 전문기자라는 직접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답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은 사라진 944를 비롯해 928 등 역사 속의 포르쉐는 물론이고 오늘날 스포츠카의 세계 최고봉의 자리를 지키게 해준 911의 운동성능에 경이로움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운 좋게 초창기부터 해외 자동차 전문기자들과의 교류가 많았고 그들과 만나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10여년이 지날 때까지 필자는 포르쉐 911을 진정한 드림카로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인식이 모두에게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 시켜 준 모델이 있다. 바로 1989년에 데뷔한 마쓰다의 미아타 MX-5라는 모델이다. 경량 2인승 로드스터인 MX-5는 그때까지 통용되는 정통 스포츠카의 레이아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자가 이 차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90년으로 수입이 되지는 않았지만 국내에 근무하는 미군들과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시승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MR 또는 FR, RR 등이 정통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레이아웃이라고 여겨졌던 시절 등장해 지금은 3세대로 진화해 있는 미아타 MX-5도 뒷바퀴 굴림방식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다루기 쉬운 모델로 흔히 말하는 스파르탄한 다이나믹성과는 거리가 먼 차다.

하지만 MX-5는 최고의 스포츠카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포르쉐 911을 비롯해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 이그조틱카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랑받는 스포츠카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더불어 미아타 MX-5는 석유파동으로 시들해져 가던 스포츠카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주었으며 그 영향으로 메르세데스 SLK를 비롯해 포르쉐 박스터, BMW Z3등이 등장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컨셉이 다른 모델이 쟁쟁한 스포츠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유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자동차라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성격을 결정짓는 시대로 변했다. 또 하나 메이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갈수록 연성화되어 가는 유저들의 특성을 잘 파악했고 그에 걸맞는 차만들기를 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시하면서 볼보의 아이덴티티 살려

SUV인 XC90를 이야기하면서 무슨 스포츠카 이야기인가하는 의견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SUV의 성격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SUV의 시조인 지프 체로키를 시작으로 프리미엄 SUV 의 등장, 그리고 크로스오버, 또는 퓨전카라는 용어를 등장시킨 오늘날의 컴팩트 SUV의 전성시대 속에서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1997년 메르세데스 벤츠 ML클래스로 촉발된 프리미엄 SUV 전쟁 속에서 등장한 볼보 XC90는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 수많은 SUV들 속에서 포지셔닝하기 위한 차만들기를 해야 했다. 물론 XC90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이었고 그때는 이미 BMW X5가 ‘달리는 SUV’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뿌리내린 때였다.

후발 주자로서 자신의 입지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톱의 위치에 있는 모델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그보다 한 단계 앞선 모델을 만들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자신만의 컨셉을 창조해 내는 것.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크게 보아서는 크로스오버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차별화는 쉽지가 않겠지만...

XC90가 데뷔할 당시에는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된 폭스바겐 투아렉과 포르쉐 카이엔 등 쟁쟁한‘Made in Germany’들이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때.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유럽 메이커들이 만드는 이런 프리미엄 SUV들은 실질적인 수익을 올려 주는 달러박스다. 특히 미국시장에서의 이익이 사운을 좌우할 정도로 볼륨이 크다. 이런 바람에 더해 유가 폭등 사태까지 겹치자 대형 SUV 에만 치중하던 미국 메이커들까지 앞다투어 CUV를 개발해 출시하고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이 시대 등장한 SUV들은 모두가 승용차의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것들이었고 볼보 XC90 역시 플래그십 S80을 베이스로 개발됐다. 볼보측은 이에 대해 S80을 SUV개념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모델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추세가 그렇다. 4WD 시스템을 채용하면서도 지향하는 방향은 포장도로에서 주로 사용하는 승용차 감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볼보만의 색깔이 나타난다. 볼보는 당시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미국 LA지역의 잠재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들었었다. 우선은 볼보의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승용차처럼 안정적이면서도 승용차 감각의 주행성을 보일 것, 브레이크와 코너링 성능도 승용차와 같을 것, 그리고 리어 시트의 안락성을 확보할 것 등이었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극단적인 주행성 위주의 모델이 아니라 종합적인 균형을 갖춘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랜드로버나 지프와 같은 정통 오프로더쪽으로 치우친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차만들기 과정에서 여성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참여가 높은 메이커답게 여성 취향의 터치를 고려하게 되었고 실제 판매에서도 여성 구매자가 80% 가까이 될 것을 기대했었다. 여성 취향이라는 의미는 결국 조작성이나 주행성이 승용차 감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데 다름 아니다. 전체 판매대수에서 여성 오너의 비율이 얼마인지의 자료는 없지만 2005년 XC90는 8만 5,994대가 판매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볼보차라고 하는 실적이 그런 컨셉이 먹혀 들었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자꾸 하는 얘기이지만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확실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분명한 타겟마켓 설정을 통한 시장공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보여 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7 볼보 XC90 시승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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