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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 굴림방식의 뿌리는 미니와 시트로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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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2-07 20: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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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 굴림방식의 뿌리를 찾는다.

FF,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Front Wheel Drive=FWD, 앞바퀴를 구동해 주행하는 자동차의 기원은 사실 오래되었다. 이미 100년 가까운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많아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독자성을 중시여기는 프랑스인, 그레고르는 FF차의 핵인 등속조인트를 완성, 이것이 후에 시트로엥, 이어서 미니의 대성공에 공헌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패밀리카 중에 앞바퀴 굴림방식을 채용하고 있지 않는 모델은 예외적인 존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앞바퀴 굴림방식은 일반화되어 있다. 1897년에 파날 에 르왓슬이 프론트 엔진(플러스 변속기) 리어 드라이브, 즉 후륜구동방식(FR)을 확립한 이래 거의 60년 가까이 이 레이아웃이 ‘자동차의 정석’으로 답습되어 왔다.
그리고 20세기 전반은 혁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FF화의 시초를 만들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의 알랙 이시고니스 설계의 오스틴/모리스 미니(59년 데뷔)다.
그렇지만 FF차는 미니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없다. 실은 수많은 작은 자동차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FF차에의 시도는 상당한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 1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00년에 약관 25세의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설계한 로넬 포르쉐 전기자동차였다. 이 차는 앞바퀴에 허브 모터를 장착한 형식으로 포르쉐는 그 후에도 가솔린 엔진에 의한 발전을 하는 하이브리드카에도 이 레이아웃을 채용했다.
가솔린차로서의 FF화 제 1호는 1904년에 미국의 월터 크리스티 제작의 FF레이싱카로 그 후 프랑스 GP(1906년)에도 참가하는 등 꾀 활발한 레이스 활동도 했다. 게다가 그는 택시용 투어러도 설계했는데(1905년) 기어가 전진 1단, 후진 1단으로 사용성이 좋지 않아 얼마가지 않아 회사(크리스티 다이랙트 액션 모터카 컴퍼니)는 도산하고 말았다.
크리스티가 만든 차의 최대 특징은 직렬 4기통 엔진을 가로배치하고 크랭크샤프트가 프론트 액슬을 겸한다고 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오늘날 정석인 이 가로배치 FF방식은 긴 잠속에 빠져 이시고니스가 과연 크리스티의 것을 알고 있었는가 어떤가에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크리스티의 선진성은 발군이었다.
자동차에서는 실패한 크리스티의 다음 연구 목표는 전차(탱크)였다. 제 1차대전 중에 영국에서 발명된 전차는 육전의 양상을 바꿔놓았으나 그것들은 아무래도 보병과 협력하는 성격를 갖고 있어 속도도 겨우 20km/h 전후라고 하는 늦은 것이었다. 그런데 드넓은 국토를 가진 미국에서 기병대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크리스티는 전차에 기병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1929년부터 미 육군에 채용된 크리스티 탱크는 독특한 현가장치를 가진 최고속도 50km/h, 캐터필러를 바깥으로 한 노상주행에서는 가볍게 100km/h를 넘는 것이엇다. 크리스티 탱크는 마찬가지로 광대한 국토를 가진 소련의 주목을 끌어 그 특허를 취득한 소련 육군은 BT-7 비스트로 호드니 탱크(쾌속전차)를 만들어 내 1939년의 일본의 관동군과 소련 육군과의 전투에서는 보병전차밖에 알지 못한 일본국을 압도했다.

시트로엥, 드디어 FF를 완성하다

FF차의 역사에 의해 크리스티는 발상의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공헌을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실용화에는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면에서는 처음으로 구체적인 방향설정을 한 것은 프랑스의 J.A. 그레고르였다. 방직공장에서 기사로 일하던 그는 얼마 안있어 전륜구동의 연구를 시작했다. 아마추어 엔지니어인 피에르 페네이유는 자동차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통상적인 FR로는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그레고르의 FF방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머지 않아 그레고르는 독자적인 등속 조인트를 완성하고 그것을 사용한 FF차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수퍼차저 장착 직렬 4기통 1,100cc SCAP 엔진을 탑재하고 앞바퀴는 가로배치 리프 스프링에 의한 독립현가장치로 되어 있었다. 이 경 스포츠 타입의 최고속도는 140km/h를 마크하는 등 성능적으로도 우수했다. 거기서 페네이유는 트랙터사를 설립해 제조판매를 시작했다.
이 독특한 스포츠 타입은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작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고가였던 것이 큰 이유였고 대공황의 여파로 34년 동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그 판매대수는 27년부터 34년까지 겨우 300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레고르의 FF방식 자체는 아주 획기적이었고 그것을 거의 그대로 받아 들여 성공을 거둔 것이 같은 프랑스의 시트로엥사였다.
1934년에 시트로엥 7CV트락숑 아방(앞바퀴 굴림이라는 뜻)이 발표되어 프랑스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플로팅 파워 OHV 직렬 4기통 엔진에 의해 앞바퀴를 구동해 러닝보드 없이 깔끔하게 처리한 일체구조 보디, 전륜 토션 바(포르쉐의 발명) 독립현가를 채용하는 등 시대를 앞서간 모델로 그 로드홀딩은 발군이었다. 앙드레 시트로엥은 부하 설계진에게 과감하고 선진적인 모델을 요구했는데 그들은 훌륭하게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데 시트로엥의 강인한 경영전략은 심각한 제정위기를 맞아 경영은 미쉐린사가 맡게 되었고 그는 회사를 떠났다. 샹송에까지 노랫말로 들어간 트락숑 아방의 화려한 인기를 뒤로하고 앙드레는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트로엥사는 이후 FF타입의 걸작차를 차례대로 생산해 냈다. 7CV에 이어 9CV, 11CV가 만들어졌고 거기에 6기통 엔진차인 15CV가 38년에 데뷔했다.
프랑스인의 일상의 다리로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트로엥 2CV의 개발은 36년부터 시작되어 1939년 5월에는 2대의 프로토 타입이 가을 파리살롱에 출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같은 해 9월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발매는 전후인 1947년까지 기다려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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