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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캠의 기원-스피드를 위해 DOHC는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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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3-12 11: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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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캠의 기원-스피드를 위해 DOHC는 태어났다.

DOHC=트윈 캠 시스템은 고성능, 레이싱카의 이미지로 불과 20여년 전에는 특별한 파워 유닛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경자동차, 리터카 등에까지 폭 넓게 도입되어 일반적인 엔진이 되고 오히려 SOHC가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80년 전 DOHC 4밸브의 레이싱카를 출전시켜 승리한 것은 저 메르세데스가 아닌 푸조였다. DOHC의 원류를 찾아 보자.

엔진 출력의 증대를 위해 급기를 기통 내에 강제 압입시키는 과급(터보차저와 수퍼차저)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데 엔진 자체의 연소효율을 높이기 위해 DOHC(Double Over Head Camshaft) 타입의 구조도 오래 전부터 주로 레이싱카의 엔진에 채용되어왔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부터는 일반 시판 승용차에도 상식화한 메커니즘이 DOHC 레이아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화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제 2차 대전 후 DOHC엔진차로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르망 비극으로 알려진 메르세데스 벤츠 300SLR이었다. 이것은 원래 레이싱 타입의 W196에서 파생된 모델이다. 걸 윙 도어의 300SL쿠페와는 별종이다. W196의 엔진은 직렬 8기통 2.5리터, 기통 내 직접연료분사 타입(원래는 항공기용인 DB600시리즈용 엔진으로 채용)으로 밸브 개폐도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고 데스모트로닉 타입이라고 하는 극히 고도의 기술내용을 보여주었다. W196은 F1 GP 레이스에서 54년과 5년에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등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대 활약했다. 300SLR은 그 컴포넌트를 그대로 2인승 스포츠형으로 하고 배기량을 3리터로 늘린 것이었다.

같은 해인 54년에는 이탈리아의 알파로메오로부터 줄리에타가 데뷔했다. 이 엔진은 직렬 4기통 DOHC의 1.3리터로 레이스에서 숙련된 고성능으로 주목받았다. 줄리에타는 62년에는 줄리아로 되었는데 이들은 당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DOHC엔진차로서 특이한 존재였다. 일본에서의 DOHC엔진 시판차는 62년에 데뷔한 혼다 T360(이어서 S500)이 최초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아자동차가 내 놓은 캐피탈이 첫 번째 DOHC였다.

DOHC엔진도 다른 많은 초기의 발명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생겨났다. 그 요청이란 끊임없는 스피드의 추구를 말한다. 즉 스피드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1895년에 시작된 자동차 경주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어 1906년에 제1회 프랑스GP가 개최되게 되었다. 거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엔진출력의 증대가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배기량을 높이는 것, 또 하나는 엔진의 흡배기효율(연소효율)을 높여 동일 배기량에서 가능한 높은 출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무엇보다 쉬웠다. 그 때문에 20세기 초두의 레이싱카 엔진의 배기량은 증대 일로였다. 예를 들면 1906년의 프랑스 GP 우승차, 르노의 배기량은 12.8리터(평균 102.8km/h) 1907년의 피아트는 15리터(평균 113.6km/h), 1908년의 메르세데스는 13리터(평균 110.9km/h) 등이었다.

세계 최초의 DOHC차로 우승을 거둔 푸조

여러 가지 사정으로 프랑스 GP는 1909년부터 11년까지의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1912년 디에프에서 열린 GP에서 우승한 것은 푸조 L76이었는데 그 배기량은 예를 들면 르노의 절반정도인 7.6리터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에는 DOHC의 위력이 숨어있었다.
초기의 자동차 기술자에 있어 밸브 배치는 큰 문제였다. 가장 간단한 구조의 SV(Side Valve)는 우선 실용차에 장착되고 그 뒤로 OHV(Over Head Valve), SOHC(Single Over Head Camshaft)로 발전되었다.

SOHC는 영국의 알렉스 크레이그가 발명해 선박용 증기기관의 메이커인 모즐레이사가 SOHC승용차 엔진을 제작했다.(1904년)
그 즈음부터 진보적인 기술자들은 SOHC타입을 경쟁적으로 채용하게 되었다. 에토레 부가티는 부가티 타입13에(1909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오스트로 다이믈러 20/80마력차에(1910년) 이 방식을 채용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도 DOHC헤드의 출현은 시간문제였다고 해도 좋다.

프랑스 최고 메이커인 푸조사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그 하나인 리옹 푸조사는 보아추레트(소형차)를 생산해 레이스에도 적극적으로 출전해 1908년부터 11년에 걸쳐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출전차는 그래티앙 미쇼의 설계였다. 당시 레이스 규제에는 엔진의 보어 크기만이 정해져 스트로크 제한은 없었기 때문에 스트로크가 아주 긴 기형 엔진이 횡행했었다.

예를 들면 1910년의 푸조 VX5 엔진은 보어는 80mm이면서 스트로크는 280mm라고 하는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해 레이스에서는 보다 소 배기량의 이스파노 수이자에 완패했다. 우승 드라이버는 폴 투카레리라고 하는 개발기술자이자 테스트 드라이버였다.
그런데 이스파노 수이자사는 이 해를 끝으로 레이스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투카레리는 푸조사의 요청에 따라 레이스 후 스카우트되었다. 이것은 DOHC엔진의 탄생에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이스파노 수이자의 설계자마크 비르키히트(스위스인)는 포르쉐와 부가티와 함께 우수한 기술자로 당시의 DOHC엔진의 구상을 갖고 있는 것도 충분히 고려되어 부하의 투카레리도 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1910년 두 개의 푸조사는 합병해 유럽 최대의 메이커로 되었는데 그 이미지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 레이스에서의 성정이 중요하다고 사장 로벨 푸조는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1912년 레이스를 위해 신예 머신의 개발을 담당한 것이 앞서 얘기한 투카레리를 시작으로 하는 조르쥬 보아로, 줄 구 등 3인조였다. 신 엔진의 개발은 동사의 항공 엔진 부분에서 했다.

이 L76이라고 불리는 머신에 탑재된 엔진은 오늘날 레이싱 엔진과 기본적으로 아주 흡사한 구조다. 기동당 4밸브로 연소실은 반구형, 그 꼭대기부분에 플러그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엔진에는 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데스모트로닉(강제개폐) 밸브기구가 채용되었다. 이것은 항공 엔진에 사용된 수법이다.(그런데 후에 통상적인 타입으로 개조되었다)

L76엔진의 출력은 130ps/2,200rpm(리터당 17.1ps)으로 1912년 프랑스 GP에서 푸조의 최대의 라이벌로 된 피아트(14.1리터 140ps/1,600rpm, 리터당 9.9ps)의 그것과 비교해 효율이 높았다. 이후의 레이싱 엔진은 대부분이 DOHC타입으로 변신했다.
시판 타입의 DOHC엔진차의 최초의 예는 1923년 데뷔한 프랑스의 삼손 10/15마력차(1.2리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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