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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차저의 역사-BMW2002/포르쉐 930터보/사브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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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3-19 16: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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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차저의 역사-BMW2002/포르쉐 930터보/사브 900

1980년대 초, 일본에는 터보차 붐이 일었었다. 우선 닛산을 시작으로 미쓰비시, 그리고 일본 메이커 대부분이 터보차저 장착차를 시장에 투입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지금 일본은 세계 제일의 터보차 왕국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터보차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터보차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엔진출력 향상의 수단으로서 터보차저는 DOHC/SOHC/멀티 밸브 방식등과 함께 중요한 정석의 하나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엔진을 회전시킨 후의 배기가스는 엔진이 발생한 모든 열량의 약 33%를 가진 채로 대기 중에 방출되고 만다. 그것을 유효하게 터보차저로 활용하는 것으로 승용차 등의 경우 그 출력은 20∼30%정도 증대되기 때문에 그 장점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자동차용의 터보차저가 우선 압도적으로 위력을 발휘해 주목을 끄는 것은 레이싱카에서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캔암(CanAm) 레이스 시리즈는 카나다와 미국을 무대로 연간 10∼11 경기를 치렀었다. 유럽의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던 포르쉐(70년과 71년 메이크스 선수권 타이틀을 획득)도 72년부터 이 레이스에 진출해 917/10을 내 보냈다. 캔암의 레이스 규칙에 의하면 개조는 거의 모든 부분이 자유이고 과급기(터보 & 수퍼차저)도 인정되었기 때문에 포르쉐는 917의 12기통 4,495cc 엔진에 에벨슈페허제 터보를 2기 조합해 850ps(노멀 917은 520마력)의 출력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조지 포머는 간단하게 72년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 다음해 917/30은 더욱 출력을 높여 1,100ps/7,800rpm을 발생시켜 사상 최강의 레이싱카가 되었고 그 머신을 조종한 마크 다나 휴는 다른 모두의 접근조차 못하게 하며 챔피언이 되었다. 그런데 포르쉐의 그런 강력함은 오히려 레이스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켜 캔암시리즈는 소멸되고 마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다.
100년이 넘는 자동차의 역사 중에서 실용화된 것이 겨우 30년 전이라고 하는 것은 가솔린 엔진의 연료분사장치도 그렇지만 극히 새로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밖의 수많은 자동차기술과 마찬가지로 터보차저 원리의 발견도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의 기술자 알프레드 J. 뷔시히가 터보차저를 발명 해 그 특허 신청을 한 것은 1905년의 일이었다. 물론 당시의 유년시대의 자동차와 미완성의 터보의 조합은 무리였지만 뷔시히는 그 일생을 터보의 연구에 바쳤다.
디젤 엔진의 완성은 1898년의 일이었는데 뷔시히는 겨우 실용화가 시작된 대형 정치 디젤 엔진에 터보를 장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의 발명은 원래 수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세간의 평판을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신진적인 기술자 몇 사람인가는 터보의 메리트에 주목했다. 그 중의 한사람 프랑스의 라트는 항공 엔진에의 이용을 고안했다. 게다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선포드 모스도 연구에 나섰다.
모스는 당시 미국의 고급차 메이커 패커드사가 설계 제작한 리버티형 V12기통 항공 엔진(제 1차대전 중 미국 공군의 주력 엔진)에 터보를 조합시켜 전투기에 탑재해 각종 실험을 실시했다. 1918년 제 1차대전이 끝나는 해였다.

터보는 고도 1만 미터의 비행을 가능하게 했다.

터보의 메리트는 항공기, 특히 산소가 적은 고도를 비행하는 타입에서는 분명해졌다. 상공인만큼 공기는 엷고 터보에 의해 기통 내로 공기를 압입함으로써 성능의 저하를 막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스박사는 더욱 정력적으로 연구를 거듭해 1936년 경에 되자 폭격기 등은 앞다투어 터보 엔진을 채용했다. 그리고 제 2차대전(1939∼45년) 중의 유럽전선의 전투기도 대부분 과급기(수퍼차저 2단식 등)를 장착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수퍼 마린 스피드파이어와 독일의 매사슈미트 Me109 등이 그것이다. 일본에서도 터보를 ‘배기 터빈’이라고 부르며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기술격차는 아무리해도 줄어들지 않아 보잉 B29폭격기의 일본 공습으로 격분하는 상황에서도 1만 미터 가까운 고도를 비행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습하는 전투기의 성능 부족은 치명적이었다.
항공기에서의 터보의 발달은 놀라운 것이었는데 그것과 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이 디젤 엔진의 분야였다. 뷔시히는 1927년에 디젤 기관차용의 터보를 완성시켜 38년에는 스위스의 자우라제 디젤 트럭에 터보를 장착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는 자동차용 터보 제1호다.
제 2차대전 후인 1949년에 뷔시히 개발의 터보 장착 디젤 트럭의 본격적인 생산이 스위스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외에도 디젤용 터보 메이커가 차례대로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서독의 에벨슈페허사, 그리고 미국의 에어리서치사다.
에어리서치사는 원래 항공엔진용의 터보 메이커였는데 항공 엔진의 제트화와 함께 가솔린엔진용의 터보 개발에도 나섰다.(1958년) 그리고 그 4년 후인 62년 미국에서 사상 최초의 터보 승용차가 탄생했다. 올즈모빌 F85 제트파이어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F85의 알루미늄제 엔진은 배기량 증대가 어렵기 때문에 고육책으로서 터보의 채용을 하게 된 것이다.
제트 파이어 터보로케트 V8이라고 이름 붙인 3,532cc 엔진의 출력은 터보에 의해 노멀에 비해 39% 향상된 218ps를 냈다.
확실한 것은 압축비가 노멀 8.75에서 10.2로 높여 오늘날의 터보와는 역방향이었다. 이 엔진에는 기통 내의 이상연소(디토네이션) 방지용으로서 기통 내로의 알콜/물 분사장치가 갖추어져 있다. 이것도 오늘날의 웨이스트 게이트에 의한 컨트롤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고객은 메이커의 생각대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별도의 탱크에 물과 알콜을 넣는 것을 귀찮아하기도 하고 메이커가 금지한 엔진을 과회전을 하기도 해 엔진을 파괴시키는 경우가 발생했다. F85에 이어 시보레 콜베어에도 터보판이 추가되었으나 단명했다.
한편 레이싱카에서는 1963년 인디 500에 출전한 머신에 처음으로 터보차저가 장착되었고 67년에는 전통의 오펜하우저 직렬 4기통 엔진에 슈비처제 터보를 조합시켜 68년에는 그 중 한 대 이글 오피(바비 앤서 조정)가 터보차로서 사상 최초의 인디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터보차저는 인디 머신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터보 승용차는 1974년 6월에 데뷔한 BMW2002(호몰로게이션용), 시판 승용차로서는 같은 해 9월에 발표된 포르쉐 930터보였다. 그리고 일반적인 승용차에 채용되어 성공을 거둔 것은 사브 90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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