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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공기의 벽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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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5-12 13: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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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공기의 벽과 싸운다

빠른 자동차는 아름답다. 그리고 연비효율이 좋다. 자동차의 디자인은 처음에는 배, 그리고 비행기를 참고로 진화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차에 공력성능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성능=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엔지니어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공기의 힘이었다. 시속 100km가 되자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키려는 다양한 연구가 디자인으로서 성립이 되었다. 현재 F1도 최신 메르세데스 S클래스도 공기와의 싸움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이라고 한마디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조형적인 것, 미학적인 의미, 그리고 스타일링, 즉 자동차의 보디 형상도 중요한 요소라해도 좋다. 자동차가 탄생해 그 속도가 점차 향상되자 자동차는 숙명적으로 공기의 벽과 싸우게 되었다. 그 벽을 어떻게 쉽게 빠져 나가는가가 자동차의 형태를 결정했다. 그것은 자동차 형상의 공기역학적인 추구이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 자동차의 경제성-즉 어떻게 해서 적은 연료로 먼 거리를 갈 수 있는가 하는 연비효율을 높이는가하는 문제가 지상명령으로 되게 되었을 때 하나의 정점에 달했다. 그것은 일찍이는 연구하는 사람들 밖에 관심이 없었던 공기저항계수(Cd, 프랑스에서는 Cx로 표기한다)가 일약 각광을 받고 일상적인 단어로 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디자인은 소위 Cd시대에 들어섰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술과 관계되는 이론과 학문은 당연하지만 직접 경험을 토대로 해 완성된다. 자동차의 보디 형상과 그에 관련한 공기의 양과 관계에 관해서도 초기의 자동차 기술자가 어느정도의 경험적인 고려를 넓혔다. 또 어느 분야의 기술은 항상 병행한 기술로부터의 유추에 의해 문제의 해결을 꾀했다. 초기에는 배, 그리고 후에는 비행기의 형상이 참고되었다.

공기의 벽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두 개의 커다란 흐름이 있다. 그 하나가 유선형이고 또 하나가 웻지 형상(쐐기형)이다. 그리고 이 두 개와 함께 자동차의 역사 초기부터 그 시도가 보였다.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 100km를 처음으로 넘은 것은 1899년 4월 29일. 차는 ‘라 자메 콘탄트호’(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의미), 운전자는 벨기에인 까뮤 제나티였다.(105.882km/h)
그리고 이 전기자동차의 보디는 당시 수중을 달리는 물체로서 가장 저항이 적은 어뢰형을 택했다.
같은 해 프랑스의 ‘발레’차는 사상 최초의 웻지 형상의 풍절부분이 큰 특징이었다.
그런데 두 차 모두 차륜은 노출되어 조종차도 전신을 공기의 저항에 드러내기 때문에(말을 탄 것과 같은 상태와 같이) 전체로서 공기저항이 걸린 만큼 감소 가능한가하는 효과 정도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1906년에 미국의 데이토나 비치에서 205.405km/h의 속도기록(미공인)을 수립한 스탠리 스튜머(마리오트 조종)는 운전자도 완전히 동체중에 들어가 있었고 그만큼 공기저항도 감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기역학의 소박한 경험주의는 일신되게 되었다. 그것은 항공기의 발달이었다. 그 기체형상의 결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학문분야로서 공기역학이 급속히 충실한 발전을 이루었다.

자동차의 보디는 비행선의 연구로부터

무엇보다도 자동차보디의 유선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비행기보다도 오히려 비행선의 연구로부터였다. 그 보디는 기류의 영향을 받기 쉽고 충분한 이론적 배경이 필요했기 때문에 연구가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독일의 유명한 비행선 메이커 슈페린비행선회사에서는 클렌펠러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자들이 보디의 공기역학 실험연구를 했다. 많은 풍동실험을 반복한 끝에 그들은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유선형 보디를 발표했다. 그 Cd치는 0.04였다. 물론 차륜 외에 것과 이어져 있는 자동차에서는 이 이상치로는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유선형이라고 하는 단어는 1920년대 초기에 등장하는데 자동차 보디의 이상적 유선화의 제 1호는 독일의 자동차/항공기 기술차 에드몬트 룸펠러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물방울(트롭펜)이라고 불린 것으로 1921년의 베를린 모터쇼에 트롭펜 바겐(OA104)가 발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것은 또 미드십 엔진차 제 1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로드카도 그것을 베이스로 한 레이싱카도 실패로 끝났으나 이것은 또 한사람의 뛰어난 공기역학자 웨인출신의 파웰 야라이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야라이는 일찍부터 항공기의 연구에 뛰어 들어 곧 슈페린 비행선회사에 입사했다. 야라이는룸펠라의 트롭펜 바겐에 대한 강한 관심을 표했는데 그것은 단순한 2차원, 즉 평면적인 유선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룸펠러는 배의 형상에서 힌트를 얻었었다) 그리고 그는 전술한 프렘펠러의 협력을 얻어 3차원적인 ‘물방울형’의 유선형을 고안해 이것을 자동차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바닥은 편평하지만 루프는 테일 부분을 향해 완만하게 내려가는 독특한 형태로 이것은 자동차 보디의 형상이 결정적으로 마차적인 발상을 난 최초로 스타일링이라 해도 좋다. 그리고 1925년에 야라이가 시험적으로 만든 차는 그때까지의 보디보다 공기저항이5% 감소했다고 한다.

유선형 보디는 자동차의 속도 상승, 그리고 30년대에 들어서 급속히 정비가 진행된 고속도로에서의 장거리 운전을 염두에 둔 소위 그랜투리스모(그랜 투어링)의 스타일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 즈음, 돌출된 차 바퀴를 덮고 보디 내부에 집어 넣는 플래시 사이드에의 시험도 시작되었다. 최초의 예는 마이바하 DSA슈페린(1929년)이다.

양산차로서 야라이 이론을 처음으로 받아 들인 것은 미국의 크라이슬러 에어플로(34년)로 미국의 자동차 스타일링의 방향목이었다.
이것은 일본의 도요다 AA(36년)의 스타일링에도 반영되었다.
유럽에서도 30년대 중반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540K와 푸조 402에 채용되어 특히 타트라77(34년)은 전형적인 리어 엔진 유선형 보디를 갖고 있었고 폴크스바겐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제2차 대전 후의 자동차 디자이너의 새로운 수법이 된 웻지 형상은 쐐기형의 차체가 발생하는 다운포스에 의해 차체를 지면에 붙여 구동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통해 우선 F1 그랑프리 머신(페라리, 브라밤, 68년 벨기에 GP)의 윙의 채용으로부터 시작해 결국은 양산 모델에도 다용되게 되었다. 오늘날 자동차 디자인에는 유선형, 쐐기의 두 가지가 통합되어 응용되고 있다.
자동차인 한 공기의 벽과의 싸움은 언제까지나 넘어야 할 벽인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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