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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전설 이어가는 럭셔리 스포츠의 전통 XK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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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8-08 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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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XK120 아래: XJ-S

재규어의 전설 이어가는 럭셔리 스포츠의 전통 XK시리즈

오늘날 재규어라고 하면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모델의 하나로서의 인상이 강하지만 그 시작은 그다지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그점에서 같은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아스톤 마틴 등과는 상당히 성격이 다르다.
재규어사의 시작은 윌리암 라이온스가 오토바이용 사이드카의 생산을 시작한 1920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재규어로 명명된 것은 1945년이다.

재규어 스포츠의 뿌리는 XK120

그 재규어의 뿌리는 다름 아닌 저 유명한 GT스포츠카 XK120. 데뷔는 1948년 10월의 전후 최초로 열린 런던 모터쇼에서였다. 당시 XK120은 그때까지의 스포츠카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때까지 스포츠카란 단지 달리는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자동차였다. 이때문에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엔진음은 거칠고 서스펜션도 당연히 하드하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승차감도 세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진동도 심하고 기어와 클러치의 조작도 미세한 테크닉이 필요했었다. 또 톱의 개폐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XK120의 주행감각은 고급 설룬과 같은 정숙성을 가졌고 주행성도 매끄러웠다. 기어 체인지도 쉬웠고 핸들조작도 힘이 약한 여성도 여유가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톱의 개폐 역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그 강력한 파워에 기반한 동력성능도 주목할만한 높은 수준이었다.
또 스포츠카라고하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는데 XK120의 가격은 '좋은 것을 저렴한 가격에'라고 하는 재규어의 전통대로 998파운드(물품세 포함 1,275파운드)로 당시 200km/h의 속도를 내는 차의 1/3 수준이었다.
그리고 재규어가 제시한 스포츠카의 기준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었다.
1949년 실버스톤 서키트에서 행해진 1시간 레이스에 3대의 XK120을 출전시켜 1, 2위를 독점했다. 그리고 그 파생모델인 C/D 타입은 이후 10년간의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승리를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재규어가 가장 힘을 쏟은 것은 르망 24시간이었다. 그 첫 출전은 50년이었는데 51년의 르망에서는 2위와 100km 이상의 큰 차이를 내며 우승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재규어 XK120은 미국시장에서 대 히트작이 되었다. 제2차 대전 중 유럽으로 건너온 젊은 미국의 병사들은 작지만 기동성 넘치는 스포츠카의 매력에 심취되어 전후는 XK120, MG, 트라이엄프 등의 수입 스포츠카에 의한 아마추어 레이스에 열중했다. XK120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영국의 외화벌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상품이 되기도 했다.
XK시리즈는 61년부터 역시 GT적인 성격이 농후한 E타입으로 교체되었다.
65년에 배기량은 4,235cc로 확대되고 또 2 + 2인승 쿠페도 미국시장의 요청에 의해 추가되었다. AT도 준비해 한층 GT화가 진척되었다. 그리고 아마추어 스포츠카 레이스에서의 활약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 미국의 배기가스규제기준이 엄격해져 E타입도 다른 유럽 스포츠카와 마찬가지로 제약을 받았다. V형 12기통 엔진을 실은 E타입의 제 3세대도 그러한 사정을 반영해 등장했다.
그 후로 현대화된 XJS의 등장과 함께 재규어 스포츠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고 1996년에 등장한 XK8은 재규어 스포츠의 전통인 고성능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에서 초기모델의 시리즈명을 부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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