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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카 전쟁의 시작을 알린 람보르기니 Mi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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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12-23 12: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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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데뷔해 단 765대만 생산된 미우라는 오늘날까지도 람보르기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수퍼카이다. 간디니가 빚은 고혹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스타일링은 미우라의 상징. 미우라의 디자인은 지금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또 강력한 V12 엔진에서 비롯된 280km/h의 최고 속도는 페라리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람보르기니의 명작으로 꼽히는 미우라는 60년대를 빛냈던 최고의 수퍼카였다. 지금은 아우디 산하에서 개성이 다소 흐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람보르기니지만 카운타크와 디아블로의 카리스마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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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람보르기니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모델로서 미우라를 빼놓을 수 없다. 60년대 최고의 수퍼카로 꼽히는 미우라는 수퍼카 전쟁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우라 데뷔 이후 페라리와의 불꽃튀기는 성능 경쟁은 잘 알려진 얘기다.

수퍼카의 전형 제시한 스타일링과 성능
350 GT와 400 GT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람보르기니는 본격적인 수퍼카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미드 엔진 차를 계획한다. 람보르기니는 포드 GT40에서 영감을 얻어 막강한 성능의 수퍼카를 만들 생각이었다. GT40은 당시 르망 24시에서 무적의 성능을 과시했고, 스트리트 버전인 Mk III는 레이스카의 V8 7리터 엔진을 얹었다.

미드 엔진의 수퍼카를 계획하고 있었던 람보르기니에 GT40은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엔진은 미제 엔진 특유의 기통당 배기량이 높은 레이아웃 대신 V12 4리터를 선택했다. 섀시는 모노코크와 튜불라 서브프레임을 사용했으며, 전문 업체인 달랄라가 제공했다. 섀시 레이아웃 문제에 있어서는 간단치 않았지만 엔진을 가로로 놓고 기어박스는 엔진 블록에 통합해 공간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미니 쿠퍼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1965년 11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미우라 P400은 모두를 깜짝 놀래키기 충분했다. 창업자인 페루초 역시 뜨거운 반응에 무척 고무되었다. 미드십에 가로로 놓인 거대한 V12, 엔진 비할데 없이 공격적인 스타일링은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미우라의 디자인을 완성한 베르토네의 마르첼로 간디니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보다 완성된 작품으로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차들을 탄생시킨 간디니의 경력에서 미우라는 빠질 수 없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넘실대는 보닛 라인과 거의 90도로 누운 헤드램프, 리어 펜더 앞의 공기 흡입구 등 미우라는 그 스타일링만으로도 명차의 요소를 갖췄다 하겠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난폭한 스페인의 황소에서 따왔다. 미우라가 처음으로 고객에게 인도된 때는 1966년 12월 29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듬해로 미루어졌다. 이는 양산 직전 보다 편안한 거주성을 위해 지붕은 10mm 높이고 시트는 보다 낮추는 개선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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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우라의 실내는 2명이 타기에도 부족할 만큼 협소했고, 짐 공간은 없다시피 했다. 양산형은 프로토타입과는 달리 휠베이스도 2,460mm에서 2,500mm로 늘어났다. 125번째 모델(섀시 넘버 3312)부터는 보다 운동 성능을 높이기 위해 철판 두께가 1mm 늘어나기도 했다. V12 엔진은 350마력/7,000rpm, 37.5kg·m/5,1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했으며, 이 힘을 바탕으로 0→100km/h 가속 시간은 6.7초, 최고 속도는 280km/h에 달했다.

미우라는 최고 속도가 280km/h에 달했지만 고속에서의 안정성은 좋지 못했다. 람보르기니는 프론트에 작은 친 스포일러를 달아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결국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또 등뒤에 놓인 V12 엔진은 매우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운드를 선사했지만 항상 노이즈가 심했다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우라 P400은 성공을 거두었고, 보다 강력한 미우라 P400 S가 데뷔하기 전까지 475대가 생산된다.

1969년 선보인 미우라 P400 S는 보다 강력한 엔진과 개량된 리어 서스펜션, 업그레이드 된 피렐리 타이어 등으로 무장했다. 엔진은 연소실의 개량과 보다 듀레이션이 높은 캠샤프트, 캬뷰레터, 매니폴드를 손보는 한편 보다 회전수를 올려 출력이 370마력/7,500rpm, 39.5kg·m/5,500rpm으로 높아졌으며, 0→100km/h 가속 시간은 4.5초로 대폭 빨라졌다. 이는 차체 중량이 1,292kg에서 1,040kg으로 대폭 가벼워졌기 때문. 또 스티어링 휠과 센터 콘솔 등 실내의 디자인도 변경되었다. 미우라 P400 S는 140대가 생산되었다.

후속 모델인 미우라 P400 SV는 1971년 선보였다. ‘V’는 빠른 템포를 뜻하는 벨로체(Veloce)이다. SV는 S의 장점에 문제가 되었던 드라이 섬프 시스템의 오일 순환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엔진을 개량해 더욱 성능을 높인 모델. 출력은 385마력/7,850rpm으로 높아져 최고 속도가 람보르기니 최초로 300km/h에 달했다. 또 서스펜션의 지오메트리 변경과 새로운 피렐리 타이어와 브레이크 등을 더해 운동 성능을 높였다. 미우라 최초로 에어컨이 기본 장비되기도 했다. 단 150대만 생산된 미우라 P400 SV는 뛰어난 성능과 희소성으로 수집가들의 진정한 아이템 중 하나. SV는 나중에 나온 디아블로보다 생산 단가가 더 높았다 한다.

람보르기니 역사에서 단 한 대만 제작된 미우로 요타는 가장 신비에 싸여있는 모델이다. 람보르기니의 테스트 드라이버인 밥 월라스는 원래 P400 레이싱 머신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짬짬이 시간을 내 요타를 완성했다 전해진다.

요타는 스타일링만 미우라와 비슷할 뿐 모든 부분이 철저히 개조되었다. 보디는 경량 알로이 재질로 아비오날에서 제작되었으며, 스틸 섀시도 경량 재질로 대체되어 차체 중량은 단 900kg에 불과했다. 사이드 윈도우도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헤드램프는 고정식으로 바뀌었으며, 친 스포일러를 더해 고속에서 들림 현상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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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역시 센터 콘솔의 디자인이 바뀌었으며, 페달도 미우라와 같이 바닥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요타는 무게 배분을 위해 스페어 휠도 자리를 옮겼으며 연료 탱크도 2개로 나눠 하나는 도어 실에 배치할 정도로 철저하게 운동 성능을 고려했다.

엔진은 밥 월라스에 의해 대폭 개량되었다. 높은 압축비와 전자식 점화 시스템, 하이 캠샤프트, 배기 시스템 등이 달라졌으며, 엔진 회전수를 8,500rpm까지 사용해 출력은 역대 최고인 440마력에 달했다. 또 오일 라디에이터와 촘촘한 기어비의 기어박스도 이슬레로에서 가져왔다. 요타의 0→100km/h 가속 시간은 3.6초, 최고 속도는 320km/h에 달했다.

한편 오리지널 요타는 화재로 인해 섀시만 남은 채 사라졌고 이후 섀시 넘버 4860, 4990, 3781, 5100, 5090의 레플리카가 제작되었다(오리지널 요타는 5084). 공식 선보인 미우라 중 가장 특이한 모델은 1968년 브뤼셀 모터쇼에서 데뷔한 P400 로드스터이다. P400 로드스터는 이전 모델들처럼 베르토네가 만들고 디자인했다.

미우라는 스타일링과 성능에서 수퍼카다운 면모를 한껏 과시했지만 1972년 생산이 중단된다. 부진한 판매와 카운타크의 데뷔 때문이었다. 미우라는 7년 동안 단 765대만이 생산되었을 뿐이지만 그 강렬한 카리스마와 성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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