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다기통 엔진의 꽃, V형 12기통의 역사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7-23 13:00:08

본문

다기통 엔진의 꽃, V형 12기통의 역사

V12는 끊임없는 꿈과 욕망에서 태어났다.

벤츠 1호차(3륜)가 탄생한 것이 1886년. 단기통 2∼3ps로 속도는 15km/h 정도. 아주 보잘것없지만 자동차라는 것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110년이 넘게 지났다. 20세기 자동차의 메커니즘의 원류를 찾아 그 시대를 회고해 본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제는 V12형 엔진 탑재차의 역사다. 그것은 실로 7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가장 진보한 고급 엔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구든지 V형 12기통(그것도 DOHC엔진을 가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V12엔진 탑재차에 타는 것은 그 오너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서민의 눈으로 보면 그런 모델은 영원한 그림의 떡이다.
현재 V12 엔진을 탑재한 시판 모델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을 몇 개 예로 들어보면 우선 페라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페라리사의 역사는 그대로 V12 엔진의 전후사(戰後史)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550마라넬로의 엔진은 DOHC 65도 V12, 5,474cc, 485ps/7,000rpm의 최고출력. 실측치로 300km/h를 넘는 최고속도를 과시하고 있다. 2+2인승 쿠페인 456GT의 엔진도 같다. 뱅크의 협각 65도는 다른 예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은 디노 V6엔진(56년 11월 완성) 이래의 전통이다.
페라리 타도를 목표로 63년 출발한 람보르기니도 V12에서 빼 놓을 수 없다. 디아블로의 엔진은 DOHC 60도 V12, 5,707cc로 최고출력은 530ps/7,100rpm(콤피티션용은 640ps/7,500rpm), 최고속도는 320km/h를 마크하고 있다.
자동차계의 최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믈러 벤츠도 91년 이래 V12형을 채용한 모델이 있다. 98년 현재에는 S/CL/SL에는 V12가 탑재된 600형이 있다. 이것은 DOHC 60도 V12, 5,987cc, 394ps/5,200rpm, 최고속도는 SL의 경우가 283km/h이다.
V12의 도입이 다이믈러 벤츠보다 빠른 것이 BMW로 86년 가을이었는데 7시리즈의 750i에 탑재되어있다. SOHC 60도 V12, 4,988cc, 300ps/5,200rpm의 사양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을 전후해 토요타가 센츄리에 V12를 탑재해 화제가 됐었다.
이런 V12 엔진차는 성능면에서나 인테리어, 장비 등의 면에서는 물론이고 가격에서도 승용차로서는 최고수준이다.

V12엔진차의 역사는 꾀 길다. 최초의 이 타입은 1915년 데뷔한 패카드 트윈 식스로 동사의 오너인 헨리 B 죠이, 공장 총 지배인 앨번 맥커레이. 그리고 기사 제이스 빈센트 등 3명의 합작으로 양산 시판형으로서는 사상 최초였다. 라이벌들을 날라게했던 이 트윈식스는 크게 히트했고 당시의 윌슨 미국 대통령, 러시아의 리콜라이 2세, 그리고 암흑가의 대부 알 카포네도 애용했다. 엔진 배기량은 6,950cc, 출력은 88ps로 최고속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30km/h였다. 끈기있는 엔진은 톱 기어로 5km/h부터 매끄러운 가속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었다.
제이스 빈센트는 제 1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군의 주력 엔진으로 된 리버티형 V12항공엔진의 설계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전 후 지상 절대속도 도전을 위해 채용되었다.
1919년 2월 12일 데이토나 비치에서 패카드 905(리버티 레이서)는 랄프 드 팔마의 조종으로 242.261km/h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 SOHC엔진의 배기량은 14.8리터, 출력은 240ps/2,400rpm이었다. 리버티 엔진은 1926년 4월 27일에 펜다인에서 JC파리 토머스의 조종으로 272.459km/h의 기록을 수립했는데 버브스라고도 불리운 이 기록차는 다음 시도에서 전복, 토머스가 사망하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버브스는 그 사막에 묻히고 말았다.
1920년∼30년대에는 12기통 시판차가 차례로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피어스 애로우(29년), 오번(Auburn)(30년), 그리고 패카드도 34년, 뉴 트윈식스를 발표했다.

12기통차를 능가하는 V16모델도 있다. 1930년 캐딜락, 1933년 마몬(경합금 엔진)이 그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들라지는 레이스타입의 V12형 타입을 1923년의 프랑스GP에 데뷔시켰다.(DOHC, 1995cc, 110ps) 그리고 여기에 수퍼차저를 장착한 타입은 25년에 프랑스와 스페인 양 GP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들라지(Delage)사는 35년에 드라이에(Delahaye)사에 흡수되었는데 V12엔진 기술은 완전히 이전해 37년에 타입 145(V12엔진)이 데뷔해 그 개량형인 타입 165는 38년의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스파노 스이자(Hispano Suiza)도 31년에 타입 68을 데뷔시켰다. 이 OHV엔진은 9.4리터(100×100mm)와 11.3리터(100×110mm) 두가지가 있고 극히 완성도가 높고 정숙성도 발군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전부터 비행기의 설계제작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가브리엘 보아장(Voisin)은 자동차차계로 방향을 돌려 1919년에 제 1호차, C1을 발표하고 이후 그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독자적인 고급차를 계속 만들었다. 원래 항공기술자였기 때문에 자작의 레이싱카에 사상 처음으로 이론적인 웻지 형상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년)
그런 그가 V12엔진차를 시장에 내 보낸 것은 1929년으로 프랑스로서는 가장 빨랐다. 보아장차의 고속안정성에는 정평이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1936년의 파리 살롱에 ‘환상의 명차’라고 하는 직렬 12기통차를 발표했다. 프론트 미드십타입의 구상에 가깝고 고속주행시에도 안전한 조종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엔진이 객실 내에 침입해 들어와 실용성에 문제가 있어 이 지나친 아이디어의 모델은 혹평을 받아 사라졌다. 말할 것도 없이 동사는 도산하고 그렇게도 개성적이었던 보아장의 차도 사라졌다.

엔초 페라리의 군생활에서
V12가 탄생했다

제 1차 대전 중 엔초 페라리는 육군에 입대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미국인 고급장교가 탄 패카드 트윈 식스의 배기음이었다. 그것은 젊은 그의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되어 남았다. 그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음에 대한 이해도 수준급 이상이었다.
그리고 엔초가 제 2차대대전(1939∼45년) 후에 레이싱카 만들기를 하려했을 때 그 엔진은 V12형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었다.
알파로메오사에서 같이 일했던 조아키노 콜롬보와 함께 60도 V12, 1,498cc 엔진을 완성시켜 레이스에 출정한 것은 47년 5월 11일의 일이었다. 그 이후 페라리는 예외없이 V12엔진을 만들었다. 역사상 작은 에피소드는 인간의 삶의 방향, 운명의 불가사의함을 가르쳐 주는 예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리고 12기통 엔진은 자동차기술의 최고봉으로서 언제나 사람들의 꿈과 낭만을 주는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