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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고출력화와 함께 발전한 서스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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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9-11 16: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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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고출력화와 함께 발전한 서스펜션

보다 좋은 승차감, 보다 높은 안정성, 보다 정확한 조종성을 목표로 엔지니어들을 끊임없은 연구를 계속해왔다.
말이 끄는 마차. 그 말이 엔진으로 바뀌어 수십마리분으로 되고 속도도 10배 이상으로 향상될 즈음, 하체(현가장치)는 급속한 진화를 이루었다. 엔진의 고출력화와 서스펜션의 고도화는 언제나 동조 해 서로 균형을 이루어왔다. 성공, 실패를 거듭하면서. F1이 그렇고 대중차도 그랬다.

오늘날의 자동차는 TV와 전기세탁기 등과 같이 스위치를 돌리면 간단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의 자동차에 타는 사람들처럼 그 각부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유사시에는 스스로 미케닉이 되어야 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특히 그 구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다 정교하고 또 복잡화해 아마츄어의 지식으로는 손도 델 수 없을 정도로 되었다.
서스펜션이라고 해도 그 종류는 초창기에 비해 아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오늘날은 앞바퀴 독립현가장치는 상식화되어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두 개의 타입이 있다. 위시본/코일식과 스트러트/코일식이 그것으로 스프링으로서는 코일 외에 토션바, 에어백(링컨 마크Ⅷ), 하이드로 뉴매틱(시트로엥 DS19, 55년), 고무(미니 59년) 등 다양한 수법이 채용되었었다.
뒷바퀴의 현가방식도 도 다양화되었다. FR전용으로서는 3/4/5링크와 코일의 조합(리지드), 또 일찍이는 주류를 이루었던 리프(판 스프링)타입이 있다. 후륜의 독립현가로서는 가장 일반적인 세미 트레일링 암/코일, 풀 트레일링 암/코일, 스윙 암/코일 그리고 드 디옹 액슬 타입이 있다.

그리고 고급 메커니즘으로서는 승객수와 화물들의 적재조건에 따라 차고를 일정하게 수평으로 유지하는 오토 레벨라이저, 그리고 오토 레벨링 서스펜션도 채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스펜션의 복잡화는 20세기 후반의 특수한 현상으로 100년이 넘는 자동차역사 중에 서스펜션의 진화는 극히 더뎠다. 그것은 자동차의 다른 구성부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후반은 자동차 기술이 어지러울만큼 급성장을 이루었던 시대였고 그 중에서 각 자동차회사 엔지니어들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다.

역마차의 평균속도는 10km/h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자동차는 마차의 연장선상에서 태어났다. 초기의 자동차가 마차의 메커니즘을 대부분 그대로 채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차의 평균속도는 19세기 후반 9.5km/h로 계산되었다. 시속 10km/h는 엄청난 속도로 여겨졌었을 것이다.
막 탄생한 자동차의 속도는 마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서스펜션도 마차와 같이 겹판 스프링과 리지드 액슬이 조합되어 이것과 앞 엔진/ 뒷바퀴 구동이 1930년대초까지는 확고한 정석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의 보조를 일거에 끌어 올린 이벤트가 있었다. 그것이 1985년부터 시작된 파리를 기점으로 해 유럽의 주요도시를 잇는 소위 파리 레이스였다. 1895년의 파리-보르도-파리 레이스(1,178km)의 평균 시속은 24.14km로 그다지 빠르지 않았지만 3년 후의 파리-암스테르담-파리 레이스(1,485km)에서는 43.29km/h, 1900년의 레이스에서는 64.70km/h의 속도를 냈다. 1903년의 최후의 파리 레이스에서는 105.09km/h를 기록해 최초로 100km/h의 벽을 돌파했다.
독립현가의 역사도 꾀 오래다. 1899년의 볼레차(프랑스)에는 전륜과 가로배치 리프 스프링(상하 2판)에 의해 독립현가가 채용되었는데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가로배치 엔진 전륜구동차를 사상 처음으로 개발한 미국의 월터 크리스티는 극히 단순한 형태이면서 슬라이딩 필러식의 앞바퀴 독립 시스템을 실용화했다. (1904년) 크리스티의 FF레이싱카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이 현가 시스템은 많은 기술자들의 주목을 받아 프랑스의 시젤 노던은 1908년에 이 방식을 채용했다.
그리고 영국의 모건 3륜차는 1910년에 이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모건의 전륜현가방식은 1910년 이래의 슬라이딩 필러방식을 거의 충실하게 계승해 동일한 기구가 어느상품에 계속 채용된 최장기록을 해마다 갱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명작 란치아에도 채용되어 53년 발표된 아피아까지 계속채용되기도 했다.

VW 비틀의 하체는 레이싱카에서 유용

앞바퀴 독립현가가 레이싱카에 본격적으로 채용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부터로 여기에 35년부터 시행된 GP카의 소위 750kg 포뮬러에 대응해 만들어진 다이믈러 벤츠(위시본/코일) 그리고 F. 포르쉐박사의 설계의 아우토 유니온 P바겐이 유명하다. P바겐에서는 트레일링 암/토션바에 의한 아주 독창적인 방식이 고안되어 이것은 후에 KdF(전후는 폴크스바겐)에 계승되었다.
앞바퀴 독립현가로서 가장 인기있던 방식은 위시본/코일방식인데 그 최초의 예는 1934년형의 캐딜락이다. 이것이 호평을 받아 이후 GM각사를 시작으로 세계의 메이커들은 앞다투어 이 시스템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독립현가의 정석으로 된 맥퍼슨 스트러트/코일방식의 도입은 꾀 새롭다. 이것은 미국인 알 S. 맥퍼슨이 발명한 것이다. 30년대 말에 GM에 입사한 그는 2차대전 종료 후에 대중차 시장의 확대를 예상한 GM수뇌진의 명령을 받아 시보레 카데트의 설계개발을 했다.
카데트는 휠 베이스 2,743mm의 4도어 세단으로 맥퍼슨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반영되었다. 엔진을 뒤로 경사지게 하고 기어박스를 앞좌석 아래에 위치시켰기 때문에 바닥은 편평해졌고 스트러트/코일 전륜독립현가도 큰 특징이다.

하지만 생산코스트가 올라가 GM은 이 현신적인 카데트를 창고에 넣고 말았다. 화가난 맥퍼슨은 GM을 뛰쳐나와 포드로 이적했다. 머지않아 그의 아이디어를 살린 앞바퀴 스트러트/코일 독립현가를 채용한 영국 포드의 콘살과 제퍼가 데뷔했다. 맥퍼슨의 아이디어의 탄생에는 크리스티와 란치아 람다의 슬라이딩 필라방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자동차 메커니즘의 뿌리는 이처럼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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