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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GM대우의 뿌리 신진자동차 첫 차 코로나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7-21 14:36:45

본문

GM대우의 뿌리 신진자동차 첫 차 코로나

최초의 양산 국산차인 새나라를 본 뜬 신성호로 재미를 못 본 신진자동차는 65년 11월 파산상태에 빠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 신진자동차공업(주)로 급성장했다. 신진은 다음해 7월 새 차종인 코로나를 생산, 국내 자동차산업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코로나는 일본 도요타가 57년 처음 선보인 소형 승용차로 신진이 수입한 모델은 3세대인 RT40형이었다. 차체는 길이☓너비☓높이가 4,085☓1,550☓1,420mm 크기에 배기량 1,492cc 4기통 엔진을 얹었다. 성능은 최고출력 72마력으로 시속 145km까지 낼 수 있어 그때까지 나온 국산차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차였다.
차 값은 83만7,000원으로 당시 대통령 월급이 7만8,000원, 쇠고기 한 근 200원, 택시 기본요금 60원 다방커피 40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다. 66년 7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코로나는 그해 3,600대, 67년 5,000대, 68년, 1만1,000대, 69년 1만3,000대가 팔려 나가 신진자동차를 돈방석에 올려 주었다.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사장은 자동차사업 시작한 지 10년 만에 자동차재벌로 떠올랐다 그러나 71년 도요타자동차와의 기술제휴 5년 계약이 끝나자 재개약을 하지 않고 거래를 끊어버렸다. 당시 중공이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물론 그 나라와 통상관계가 있는 나라까지 교류하지 않겠다는 ‘주은래 4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진출 야망을 가지고 있던 도요타가 재빨리 태도를 바꾼 것이다. 신진은 결국 코로나뿐 아니라 도요타와 제휴해 만들었던 퍼블리카, 크라운 등의 생산도 모두 중단하게 됐고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는 70년에 선보인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코로나70’을 포함 72년 11월까지 4만6,000여대를 만들어 팔았다. 60년대 최고 인기차종이었던 코로나는 국내 자동차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었으나 외국 메이커에 의존한 기술은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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