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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빅 3의 모함에 사라진 명작 ‘터커 톨페도’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4-06 10:16:22

본문

빅 3의 모함에 사라진 명작 ‘터커 톨페도’

미국의 자동차 사업가 프레스턴 터커는 캐딜락자동차공장의 사환으로 시작하여 포드자동차 조립공을 거쳐 패커드자동차의 판매부장으로 성장한 자동차 영업전문가이다. 그는 다른 차가 따라올 수 없는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차를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해군에서 제대하자마자 1946년 자동차 엔지니어들을 모아 1백 일만에 완성한 터커의 1호차인 ‘터커 톨페도’는 그 후 20년 동안 자동차가 소화했던 선진기술이 총 접목된 앞선 차로 태어난 걸작품이었다.

배기량 5천5백cc에 1백70마력의 알루미늄으로 만든 엔진을 뒤쪽에 얹어 최고시속 1백96km까지 낼 수 있으며 휘발유 1리터로 10km를 달릴 수 있는 경이적인 경제성, 네 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피아노 건반식 키 모양의 4단 반전자식 변속기, 네 바퀴 독립 현가장치를 비롯한 각종 운전자 보호 장치 등 당시로서는 너무나 앞선 기술의 슈퍼 카였다.

이 차를 본 빅 3는 터커를 위험한 경쟁자로 보았다. 충분한 자금과 공장이 없는 터커는 이 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은행과 정부로부터 융자 운동을 벌이는 한편 문을 닫은 B29 비행기 엔진 생산 공장을 불하 받으려했다. 이를 간파한 빅 3는 정부, 재계, 은행, 법조계, 매스컴등과 짜고 치열한 방해공작을 벌였다. 결국 빅 3의 방해공작으로 궁지에 몰린 터커는 마지막 수단으로 생산도 하기 전에 선금 계약을 받아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것이 빅 3에게 좋은 미끼가 되어 매스컴과 짜고 ‘빈 털털이 터커의 사기행각’으로 보도되자 계약자들도 터커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터커는 재판에서 불법계약과 사기죄로 15만 달러의 벌금에 115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졸도했다. 결국 진실이 입증되어 최종 판결에서 무죄로 풀러난 터커 앞에는 숙명의 ‘터커 톨페도’ 50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스턴 터커는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간암의 악화로 무죄 판결을 받은 두 달 후인 1948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혁신적인 차 역시 총 51대 제작을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진>

wfc002h; 터커 톨페도

wfc002ha; 터커 톨페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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