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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역사 (11)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5-03-30 17:26:51

본문

● 헨리 포드 때문에 일장춘몽으로 끝난 자동차 사기극

 

 셀든은 자동차 특허를 가졌으나 자동차 만들기에는 흥미가 없어 공장하나 세우지 않고 1912년 11월까지 사기행각만 계속한다. 부정행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드디어 그에게 위기가 닥쳐온다. 자동차 제작업자들이 견디다 못해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셨다. 이 때문에 두 가지의 큰 고민꺼리가 셀든을 괴롭힌다. 그 하나는 유럽의 자동차메이커들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받아 내려는 비합법적인 효력을 가진 셀든의 특허권을 파괴하려는 도전이었다. 셀든은 이 때 증거물로 특허 설계도 데로 겨우 자동차 한 대를 전시용으로 만들고는 1877년에 만든 것처럼 차체에다가 1877이라는 년표를 써넣고 다녔다.

 

셀든과 업자들 간의 투쟁을 절정으로 이끈 것은 gps리 포드가 직접 개입하면서 부터이다. 포드는 셀든을 무너트리기 위해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과도 동맹을 맺고 셀든의 사기적인 특허를 타도하려 했다. 포드는 여러 가지의 세밀한 조사 끝에 셀든의 특허가 허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즉 특허권 신청해인 1879년에 승인되어야 할 셀든의 특허권이 16년간이나 미승인인 체 그후 지연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과거 이러한 비합법적인 전례가 모두 패소 당했다는 증거를 들어 특허권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결과 주법원에서는 무효판결을 내렸으나 셀든이 다시 연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여 1911년 주법원의 무효판결을 뒤업고 셀든의 특허는 근거가 확실하고 위배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 승소한다.

 

그러나 1년 후 포드 등 패소자들로부터 상고심을 받아들인 최고법원에서 1912년 11월12일 법적인 불합리성과 기술적인 부조리가 명백히 발견되어 연방법원의 판결을 파괴하므로서 셀든의 특허는 드디어 무효가 된다. 이로서 초창기의 미국자동차공업을 괴롭히던 특허사기사건은 종말을 고하고 만다.

 

셀든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된 이유는 엔진 때문이었다. 1876년 브레이턴의 엔진을 모방할 때 그의 엔진은 2행정 엔진이었으나 16년이 지난 후에는 독일의 어거스트 옷토가 발명한 4행정엔진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에 명시된 엔진사양에 허점이 발견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패소를 당하던 날 셀든은 4행정엔진을 발명한 독일의 어거스트 오토를 저주하는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만약 오토가 4행정 엔진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셀든은 틀림없이 힘 안들이고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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