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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자동차 역사 - 스튜데베이커 자동차 (3)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6-01-18 16:56:05

본문

미국 3대 고급차 메이커로 진출
  스투드베이커는 1918년부터 직렬 6기통 5.8ℓ 엔진의 빅 6(Big Six)를 생산한다. 스투데베이커가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빅 6 모델은 처음에는 오픈 튜어링 카로만 생산했으나 후에는 다양한 형식의 모델로 만들었다. 또한 빅 6 모델은 중저가의 라이트6(Light Six)와 고가의 스페셜6(Special Six), 스탠다드6(Standard Six) 등 다양한 시리즈로 판매되어 인기를 끌었다. 1923년에 스투데베이커는 14만6천2백 여 대를 생산하여 미국 메이커 중 판매량 7위를 기록했다.     스투데베이커의 주력 모델은 중상급 이었다. 당시 스투데베이커의 사장이였던 알버트 러셀 얼스킨(Albert Russel Erskine, 1871~1933년)은 이윤이 높은 고급차 시장에서 캐딜락이나 패커드와 경쟁하기위해 1920년대에 미국 명문가가 타는 3P 자동차 중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피어스-애로(Pierce-Arrow)를 1928년에 흡수했다. 기존 모델의 변화를 위해 1927년 스투데베이커는 보급형 빅 6 모델을 대체하는 커맨더(StudebakerCommander)와 기존의 스탠다드 6 모델을 대체하는 딕테이터(Dictator)를 내놓았다.      이어 1928년에 출시한 스투데베이커의 첫 고급차인 프레지던트(Studebaker President,)는 8기통 5.1ℓ 100마력 엔진을 얹은 다양한 보디 스타일로 1천985~2천450달러의 저렴한 값에 시판했기 때문에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끌어 첫 해에만 9천840대가 팔렸고 1933년까지 모두 3만8천403대가 생산됐다.   
 
경제 대공횡의 직격탄 맞고 사장 자살에 법정관리로 추락
  그러나 1929년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고급차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스투데베이커의 판매량은 급락한데다가 피어스-애로자동차 인수에 무리한 투자로 스투데베이커를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얼스킨 사장은 SPA트럭회사(Studebaker-Pierce-Arrow Truck Company)를 1929년 설립하여 난관을 극복하려 했지만 사업 파트너인 화이트 자동차(White Motor Company)와의 결별로 결국 1933년 스투데베이커는 파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소유 주식이 휴지가 되어 빈털터리가 된 얼스킨 사장은 3개월 뒤 자살했고, 그가 남긴 35만 달러의 빚은 90만 달러의 생명보험금으로 상환했다. 또한 피어스-애로는 처음 매입한 가격의 5분의 1인 100만 달러에 뉴욕 버팔로의 투자그룹으로 매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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