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ä ۷ιλƮ  ͼ  ī 󱳼 ڵδ ʱ ڵ 躴 ͽ ǽ ȣٱ Ÿ̾ Auto Journal  Productive Product
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자동차 역사 - 포드 자동차 (10)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6-04-18 15:56:25

본문

◉ 포드 차의 구원투수 우주공학도 앨런 멀렐리 (Alan Mulally)


포드 차의 구원투수 앨런 멀렐리 (Alan Mulally ; 1945 ~ 생존)는 1945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생하여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항공분야의 전문가로  1969년 항공기 제조업체인 미국 보잉사에 입사하여 2006년까지 37년간을 근무 후 2005년 보잉사 CEO의 유력후보였으나 낙마했다. 그런데 포드 최고 경영진은 그의 IT기술과 경영능력을 인정하여 2006년 빌 포드 회장의 뒤를 이어 포드사의 CEO에 선임시켰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자동차 업계의 이방인물이 포드를 정상화 시킬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앨런 멀렐리는 이런 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1만개 정도이만 항공기에는 200만개가 들어간다. 게다가 이 부품들은 항공기를 하늘에 뜨게 만들어야 한다’
 
◉ 포드를 구하기 위한 앨런 멀렐리의 비책

* 234억 달러 규모의 예비 자금을 조달하다.
 이것은 막대한 손실과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금 지급을 위한 자금마련이었다. 앨런 멀렐리 회장이 거액의 자금을 대출받겠다고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우려가 대단했으나 “이 자금은 경기 후퇴나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포드의 완충장치가 되어 줄 것”이라고 앨런 멀렐리는 못을 밖았다. 멀럴리의 이같은 선견지명 덕분에 포드는 2008년 미국의 대 금융위기에도 미국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버텨내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 회사의 수뇌부를 휘어잡다.
보잉사 근무시절에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자신만의 조직 장악 방법으로 회사의 수뇌부들을 꽉 틀어쥐었다. 먼저 매주 목요일 ‘주간 사업기획 검토회의’를 신설하고 임원들을 전원 의무적으로 참석케 하고, 출장중이면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하거나 상세한 리포트를 제출케 했다. 멀렐리는 이 회의를 포드 경영진의 분열을 막고 팀워크를 다지는 기회로 만들었다.

* 브랜드를 단일화 시키다.
멀랠리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고급차 브랜드 정리에 나섰다. 고급차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고객이 원하는 차’ 에 집중하고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는 것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승부하는 전략으로 바꾸어 8개에 달하던 브랜드를 고급차 1개, 양산차 1개로 정리하고 모델수도 대폭 줄였다. “포드의 약점은 정확한 비전이 없고 제품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포드, 링컨, 머큐리 브랜드만 남기는 원 포드 전략으로 간다는 정책에 따라 2006년 97개에 달하던 모델을 대폭 감소하여  2008년에는 59개로, 2010년에는 38개로 줄여 2006년 대비 39%로 축소했다.

* 포드의 미래방식(Ford's Way Forward)
여기다가 포드의 대표적인 해외 브랜드인 재규어, 볼보를 매각하고 4만 명을 감원하는 등 뼈를 깎는 긴축정책을 강행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멀랠리 회장은 깎고 없에는 데만 열중하지 않았다. 다시는 쓰러지지 않는 탄탄한 포드의 미래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을 중요시 하여 회사 재무 상태가 나쁘지만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 전지차 등 기술 개발에 매년 75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왔다. 멀렐리는 이런 포드차 회생 프로젝트를 ‘포드의 미래 방식(Ford's Way Forward)'이라 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