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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최악의 자동차 탑 10 - 5. 마세라티 비투르보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7-11-14 11:30:10

본문

1984년생 이태리의 마세라티 비투르보(Maserati Biturbo)
이탈리아산 소형차인 1984년식 마세라티 비투르보(Maserati biturbo)는 안전성에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타임지는 "역대 최악의 50대 자동차" 목록에 올릴 정도로 조악했다. 당시 영국의 저명 자동차 저널리스트였던 댄 닐(Dan Neil)은 이 차를 운전하면 액체가 새고 전선 타는 냄새에다 덜컹 거리고 엔진 과열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썼다. 또 1990년 8월, 미국의 자동차 월간지인 ‘로드 엔드 트랙(Road &Track)은 엔진의 연료 기화기인 캬브레터의 프로팅 레벨이 잘못 설치되어 차가 좌향할 때 엔진이 떨었다고 보도했다.
 
이 뿐만 아니라 디스트리뷰터 배선이 열을 받아 금이 가는가 하면 냉각수가 실린더 슬리브로 흘러들어 가고, 윤활유가 새고, 퓨즈박스가 열에 녹고, 그리고 엔진이 과열 아닌데도 냉각수 온도 경고등이 점등 하는 등 그야말로 불안한 차라 했다. 영국 BBC의 자동차 전문 프로인 톱 기어(Top Gear) 작가인 리차드 포터(Richard Porter)가 2004년부터 시리즈로 쓰기 시작한 ‘쓰레기 자동차들(Crap Cars)’에서는 비투르보의 외형 디자인을 ‘어린 아이들이 그린 자동차’라고 스타일을 혹평했다. 오늘의 내 눈으로 보면 스타일은 아담한데, 보는 눈도 시대적 차이가 있나보다. 또 톱기어의 에피소드 진행자인 제레미 클락슨(Jeremy Clarkson)은 비투르보는 고철 쓰레기통에 던져 넣기 직전의 자동차로 표현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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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 유고슬라비아의 유고(Yugo)
1985년 한국 최초의 전륜구동 고유모델인 현대 엑셀이 탄생하여 1986년 미국 상륙 만1년 만에 16만대를 수출하여 미국 땅에 엑셀의 신화를 구축할 초기 큰 라이벌이었던 유고 (Yugo)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유고슬라비아의 자스타바 자동차 회사에서 생산한 소형 승용차이다. 1984년 5월에 로스 엔젤레스 모터쇼에 “유고 GV“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여 판매되기 시작했으나 곧이어 캘리포니아의 배기가스 규정을 통과하지 못해 곤혹을 겪었다. 이 때문에 당시 유고를 미국 시장에 맞게 손보는 일을 맡았던 튜닝 전문가인 토니 시미네라(Tony "Hurricane" Ciminera)는 500가지가 넘는 수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미국 현지 신설 공장에서 생산된 1300cc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의 유고는 당시 돈으로 3,99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하여 동종 수입차와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고, 더구나 이즈음 최초의 전륜구동 한국산 고유모델인 현대 엑셀도 미국 시장가격에서 유고보다 1,000달러나 비쌌다.

 

그런데 1989년에 31세의 미국 여성 레슬리 안 프루하(Leslie Ann Pluhar)가 시속 80km/h의 속도로 자신의 1987년형 유고를 운전하다가 다리 난간을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 때문에 미국의 언론이 일어나 기대 이하의 저품질과 부족한 서비스망 게다가 꾸준히 쌓여오던 결함 문제들과 합쳐지면서 판매량이 급감해버렸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여기다가 12만 5천대가 배기가스 규제에 걸려 리콜 명령을 받았다. 결국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까지 터져 1992년을 마지막으로 미국수출이 중단되었고, 이때까지 약 15만대의 유고가 미국에 수출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하자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서 부품 수가 부족해지자 이것저것 구해다가 모양이나 색체조화에 관계없이 웬만큼 맞으면 억지로라도 조립해 출고했다. 이런 식이니 유고는 절품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농담으로는 "유고는 아무 곳도 못 간다.!(Yugo Nowhere)", "차 값을 2배로 불리려면 연료를 배 터지게 채워라!", "유고의 브레이크는 손으로 만든 브레이크이다!", “유고의 뒷 유리 열선은 차를 밀때 사용하는 것이다.!‘’ 등 꽤나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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