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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18대의 자동차 (7)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02-19 15:52:14

본문

◉ 독재 반항차 이소타 프라스키니 티포 8c 몬테로사 (Isotta Fraschini Tipo 8C Monterosa) ; 1947

1947년에 탄생한 이소타 프라스키니 티포 8c 몬테로사(Isota Fraschini 8C Monterosa)는 1930 년대 초부터 유럽과 미국의 럭셔리 카 시장을 장악했던 세계 최고의 명품 차 메이커들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이소타 프라스키니 (Isotta Fraschini) 자동차의 마지막 걸작이다. 모든 것을 파멸시켰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인간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부흥의 꿈에 매달렸다. 대전의 흉터는 종전 직후인 1947년부터 유럽 곳곳에서 신선하게 치유되기 시작했다. 끔찍한 폐허에 맞서 사회와 산 사람들은 재건을 열심히 모색해 나갔다.

 

2차 대전에서 무소리니 때문에 패배했지만 대전 전 자동차의 영광을 누렸던 이탈리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소타 프라스키니는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 위해 1938년부터 공장 뒷마당 한 구석에 무소리니 몰래 지하에 연구실을 설치하고 피아트 자동차의 똑똑한 젊은 디자이너 였던 파비오 라피 (Fabio Rapi)를 중심으로 신형차 개발팀을 조직하여 비밀리에 설계를 추진했다. 이 전후 구세주로 계획한 이소타 프라시니의 르네상스 모델은 전쟁 전 이소타 영광의 구심점인 본사가 있던 밀라노의 몬테로사(Via Monterosa) 거리 이름을 따 모델명을 타입(Tipo) 8C 몬테로사(Monterosa)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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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47년에 와서 이소타 프라스키니는 럭셔리 자동차 메이커로서 13 년 동안 활동하지 않아 거의 잊혀진 이름이었다. 이유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소리니의 강압으로 1932년부터 선박 및 항공기와 트럭 엔진 제조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 몬테로사는 잘 못했으면 잉태한 체 사라질 번했다. 지하연구실에서 엔진 설계의 막바지에 돌입했던 1943년 어느날 무소리니의 파시스트 경찰에 발각되어 반역으로 팀장인 파비오 라피 등 연구원들은 생명까지 위험했으나 이탈리아 공군의 전투기용 엔진을 설계 중이라는 파비오 라피의 거짓말이 통해 살아날 수 있었던 차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 코치빌더인 자가토(Zagato)가 만든 아름다운 유선형 차체에 V8기통 3,400cc 엔진을 뒤쪽에 얹어 최고시속 170km를 낼 수 있었던 8C 몬테로사로 자동차 시장에서의 재기를 노렸으나, 종전 직후라 자금 조달이 안 되어 4대 제작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까지 남아오는 3대의 티포 8A 모델은 클래식 카 경매에서 70만~90만 달러를 호가한다.

 

◉ 카 스타일링에 새 바람 일으킨 치시탈리아 202 쿠페 (cisitalia 202 coupe) ; 1946~52

1947년생 이탈리아의 치시탈리아 202 쿠페(Cisitalia coupe)는 타고 다니는 밀로의 비너스라고 평했다. 밀레 밀리아와 그랑프리 레이스카 명 드라이버였던 피에로 두지오(Piero Dusio)는 승용 스포츠카를 만들어 팔기위해 1944년에 치시탈리아 자동차를 창업했다. 피에로 듀지오는 창업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과 설계 전문 업체인 피닌 파리나(Pini parina))에게 새롭고 멋있는 새 시대를 위한 차의 디자인을 부탁했다. 디자인 전문업체라 해서 디자인만 해 주는 게 아니라, 설계까지 하여 프로토타입 자동차를 만들어 주는 회사로 이탈리아에서는 카로체리아(Carrocería)라 부른다. 피닌파리나는 1930년 디자이너이며 엔지니어 였던 바티스타 파리나(Batista Farina)가 창설하여 자동차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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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전과 전쟁중에 재산을 상당히 모았던 바티스타는 1946년에 화제로 재산을 몽땅 잃어 그는 나무로 지은 오막집에서 디자인하고 설계하여 태어난 치시탈리 202 쿠페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놀라운 환영을 받았다. 4기통 1089cc 55마력의 피아트 엔진을 얹고 4단 수동 변속기로 최고시속 165km를 낼수 있었던 치시탈리아 쿠페는 가는 강철 파이프로 만든 섀시 후레임 위에 가벼은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바디를 얹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의 디자인 큐레이터인 아더 드렉슬러는 1951년 자동차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캐탈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치시탈리아의 차체는 옷이 책을 감싸듯 차대 위에 덮여 있다. 차의 뒤쪽 펜더 디자인은 전체 형태에 안정감을 주는 수평 라인에서 약간 각을 이루며 올라가 차 앞뒤의 끝 부분 피부가 몸통에 맞지 않아 당겨 덮은 듯 한 긴장감을 주고 있어 실물보다 더 커 보이게 하는 생동감을 준다. 치시탈리아는 굴러다니는 조각, 자동차 예술의 대표작으로, 어떤 디자이너도 그 모양을 바꿀 수 없는 걸작이다‘. 1947년부터 52년까지 총 153대가 생산된 이 차는 2015년 미국 경매에서 41만 달러에 거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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