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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자동차의 150년 역사를 만든 명차들 Top 20 (1)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04-04 01:24:29

본문

1.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는 전륜구동 트랙터

 

*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엔진에서 얻은 아이디어

인간과 소식을 빠르게 이동시켜 시간을 절약하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과학문명의 5대 이기(利器)는 자동차, 기차, 비행기, 기선, 컴퓨터이다. 컴퓨터를 제외한 4대 자동 탈것 중 인간 개개인이 큰 부담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빠른 운송기기는 바로 자동차로서 4대 자동수송기기 중 가장 많은 10억대가 지구촌을 누비고 있다. 이는 인구 7.5인에 1대꼴이다.

 

때는 1767년 오스트리아 육군에는 니콜라 조제프 퀴노(Nicolas Joseoh Cugnot)라는 기술자가 공병대 기사로 벨지움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퀴노는 영국인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엔진이 공장 동력용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영국의 공장으로 찾아가 구경한 다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엔진을 이용하여 그의 자동마차 만들기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상세히 살핀 후 돌아와서 연구에 몰두한다. 2년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설계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차를 만들 돈이 없어 고민하던 중 평소에 그의 재능을 믿고 후원하던 벨지움 귀족 삭스 백작에게 보였다. 퀴노는 백작의 소개로 프랑스 육군대신 스와솔 공작에게 도면을 보이고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대포를 끌고 다니기에 고생 하는 병사나 말의 노고를 덜어 줄 자동마차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육군대신의 후원을 받은 퀴노는 곧 파리에 연구소 겸 공작실을 차리고 9개월만인 1769년 가을 드디어 세 바퀴 증기엔진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

 

* 군인이 발명한 인류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비로소 인류의 대망이던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1770년에 탄생한 것이다. 나무로 만든 세 바퀴 자동차는 트랙터였는데, 두 개의 뒷바퀴와 한 개의 앞바퀴 앞쪽에 증기엔진이 달려 앞바퀴를 구동하는 자동차였다. 바로 오늘날 전륜 구동차의 시조인데, 완성된 자동차를 본 육군대신은 실용가치가 있는지 시험해볼 것을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퀴노는 곧 차를 끌어내어 첫 시험운전에 나섰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퀴노의 차는 보일러에서 검은 연기와 흰 증기를 뿜어내면서 퀴노가 운전하는 데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최고속도래야 시속 3.2km를 넘지 못해 아이들의 걸음걸이 정도였지만 가축이나 사람이 끌지 않아도 제 스스로 굴러가는 이 괴물수레를 보는 사람마다 기절초풍했다.

 

* 비운의 발명가

10분마다 물을 주입하면서 잘 굴러가던 자동차는 목적지인 파리교외 ‘방생’ 숲 근방 네거리에서 엔진이 달려있는 앞바퀴가 너무 무거운데다가 핸들이 뻑뻑해 커브를 제때 틀지 못하는 바람에 그만 남의 집 담 벽을 들이받고는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이 뜻밖의 사고로 따라가던 군인들과 구경꾼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것이 최초의 자동차 사고였다. 시험운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기계로 보고 받은 육군대신의 관심은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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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의 기회를 간청했으나 거절당한 퀴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련을 떨칠 수 없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부서진 차를 다시 고쳐 파리 시내를 타고 돌아 다녔다. 그런데 이 자동차 때문에 공포를 느낀 파리 시민들이 경찰에다가 괴물수레의 통행을 금지시키라는 거센 항의 때문에 자동차는 창고에, 퀴노는 감옥에 1년 동안 감금되는 비운을 당했다. 풀러난 퀴노는 집념을 버릴 수 없어 한 대를 더 만들어 타고 다녔으나 역시 시민과 경찰의 방해로 차는 다시 압수당하고 퀴노는 국외로 추방되어 깊은 좌절감을 안고 방황하다가 1804년에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 오늘날의 간편하고 편리한 가솔린 자동차가 발명 된 1886년까지 1세기 동안 증기 자동차 시대였지만 석탄을 연료로 하는 크고 거창하고 운전하기 힘들며 속도가 느린 증기 자동차는 인간에게 편리한 자동차 생활시대를 안겨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동차생활시대를 열어준 시금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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