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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자동차의 150년 역사를 만든 명차들 Top 20 (2)
2. 증기엔진을 몰아 낸 내연기관의 발명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04-24 19:05:57

본문

* 비효율적인 증기엔진 자동차를 대신할 간편한 효율적 차를 갈구


자동차의 1세대인 증기엔진 자동차시대가 19세기 초부터 영국에서 시작하여 19세기 말 까지 근 1세기동안 이어졌지만 비효율성 때문에 오늘날의 석유엔진 자동차처럼 넓게 실용화 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엔진 자동차가 운전하기 불편하고 속도도 느릴뿐만 아니라 덩치 또한 크고 무거워 여러모로 불리함을 깨달은 기술자들과 카 마니아들은 이보다 더 간편하고 힘이 강하며 속도가 빠른 자동차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욕망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타고 다니는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였다. 문제는 증기엔진처럼 석탄이나 나무 같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연소할 수 있는 기체나 액체연료가 필요했다.

 

전혀 새로운 엔진의 발명도 문제였지만 이러한 연료를 발명해 내는 것도 큰 과제였다. 그러던 중 증기엔진을 완성한 제임스 와트의 조수였던 스콧트랜드 출신의 윌리엄 머독(William Murdock)이 1782년 석탄에서 가스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하여 가로등 연료로 사용하면서 내연기관 연구는 한층 더 활기를 띄우게 됐다. 그 후 약 50년간 여러 기술자들의 실패를 거쳐 1850년대 초에 거의 실용화에 가까운 내연기관 (內燃機關)인 가스엔진이 발명됐다. 파리의 한 전기회사인 고체사에서 수석기사로 일하던 벨기에 태생 장 조제프 에뜨앙느 르노아르(Jean Joseph Etienne Lenoir ; 1822 - 1900)도 가스엔진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발잔티와 마테우치 등 선배들의 연구를 이어받아 위험한 수소혼합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윌리엄 머독이 발견한 석탄가스를 사용하는 자신의 독특한 가스엔진을 1859년에 발명했다. 르노아르의 첫 엔진은 배기량이 18,000cc에 겨우 2마력짜리로서 공장의 동력용으로 사용하는 큰 엔진이었다. 르노아르가 근무하는 고체사는 곧 자본금 2만 프랑을 투자하여 공장을 세우고 엔진을 생산했다. 르노아르는 이후 5년 동안 500대를 생산하여 프랑스 · 영국 · 독일 · 미국에 팔아 공장용 동력에 제2의 혁명을 일으켰다.

 

 

* 호탤 보이가 발명한 최초의 가스엔진 자동차


1860년 쟝․죠셉․에뜨앙느․르노아르는 처음으로 그가 발명한 석탄가스 엔진의 특허를 받았다. 르노아르는 그의 첫 가스엔진을 좀더 작고 효율적으로 발전시킨 자동차용 가스엔진을 3년 후인 1863년에 완성하고 이 엔진을 마차에 장치하여 세계 최초의 가스엔진 자동차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르노아르는 그의 공장이 있는 파리의 방상느에서 시내 즈엥빌까지 약 9.3km의 거리를 달리는 첫 시험운전에 성공했으나 속력을 낼 수 있는 가속장치가 없어 1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르노아르는 자기공장과 집이 있는 쥬배르뽕까지 18km를 이차로 출퇴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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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조셉․에뜨당느 르노아르는 원래 벨지움 태생으로 소년시절에 파리로 귀화하여 호텔보이, 페인트공, 전기공으로 전전하면서 가스엔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전기공의 기술을 이용하여 그는 세계최초로 전기 스파크식 점화장치를 발명하여 자기의 엔진에 적용하여 증기 엔진보다 빠르고 쉽게 시동되어 운전하기에도 편리했다.

 

그런데 파리주제 러시아대사로부터 르노아르가 타고 다니는 재미있고 괴상한 이 세계 최초의 가스엔진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1864년에 그 차를 사 갔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 페테르브르그의 궁전으로 팔려간 이후 종적을 감춘 체 오늘까지 그 후의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알레산더 2세는 세계최초의 내연기관차를 구입한 세계최초의 사람이 됐다.
    

 

* 만능 재주꾼 유태인이 발명한 첫 가솔린 자동차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니코라비치 2세가 르노아르의 자동차를 사간해인 1864년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는 세계 제2호의 내연기관자동차를 유태계 독일 기술자인 지그프리드 말커스가 만들었다. 르노아르의 자동차보다 훨씬 진보된 자동차인데, 이 차는 석탄 가스가 아닌 액체연료를 사용한 최초의 휘발유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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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프리드 말커스(siegfried marcus ; 1833-1898)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유태인으로서 전기기술자, 화학기술자, 치과기술자에다 기계기술자였다. 유태인이라는 국적 때문에 독일 사람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아 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로 귀화하여 오스트리아 황실학교의 화학교사로 근무하면서 그의 첫 가솔린 자동차를1864년에 완성하였다. 지그프리드의 첫 자동차는 매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비엔나의 밤거리를 100m밖에 굴러가지 못하였다. 첫 차에 불만했던 지그프리드는 좀더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빈곤과 싸우면서 10년동안 연구한 결과 1875년 그의 두 번째 가솔린자동차를 완성하였다. 이 자동차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시조였다.

 

그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시끄러운 엔진의 소리 때문에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위험한 기계로 오인하여 비엔나경찰의 엄한 통제를 받고 실망한 나머지 지그프리드는 이 자동차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 포기해 버렸다. 그가 죽은 후 그를 아끼던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그의 자동차와 설계도 일기 등을 비엔나 공업박물관에 보관했던 것을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군의 보복으로 지그프리드의 모든 유물이 파괴당할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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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그프리드의 추종자들에 의해 화를 면하여 그의 차 1대가 현재에도 비엔나공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차의 탄생 100년쩨가 되던 1974년 비엔나박물관 정원에서 0.75마력의 힘을 가진 이차는 시속6km의 속도로 8km를 달려갔다. 이때는 아직 휘발유가 발견되지 않아 석탄에서 뽑은 벤젠이라는 액체를 연료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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