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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자동차의 150년 역사를 만든 명차들 Top 20 (4)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05-23 22:37:49

본문

4. 정밀성과 부품호환성으로 안전한 명품차의 기수가 된 캐딜락

 

1902년, 제일 처음 나온 캐딜락은 1기통 1610cc 7마력이었고 당시의 대표적인 유럽 차에 비한다면 대단치 않았지만 이 차를 만든 헨리 M. 리랜드(Henry Martyn Leland ; 1843 – 1932)의 진보적인 개성과 정밀 기술이 설계하고 만든 엔진만은 시대를 앞선 훌류한 엔진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자동차 구성품 중에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심장인 엔진 제작에 정밀성 기술이란 당연한 것이지만, 부품의 정밀성이나 호환성은 19세기 전환기에는 불가능으로 여기던 진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정밀기술과 기계를 처음으로 사용한 분야는 소형 무기 생산 공장으로, 새뮤얼 콜트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총기를 생산하기 위해 정밀 가공 공장을 커네티컷 주 하트퍼드에 세웠다. 헨리 리랜드가 바로 이 공장에서 기계를 천분의 2인치가지 정밀하게 깎을 수 있는

정밀가공 기술을 연마했고, 일생동안 정밀 기계기술 제일주의를 고수했다. 1890년 디트로이트에 정밀 금속 가공공장을 차리고 선박용 휘발유 엔진을 만들면서 리랜드는 전통적인 수가공식보다는 정밀 기계로 가공하면 품질이 뛰어나고 생산시간도 절약된다는 점을 입증하여 유명해졌다.

 

1901년 랜섬 E. 올즈(Ransom Eli Olds ; 1864 ∼1950) 는 앞부분이 휘어 오른 미국 최초 양산 자동차인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Oldsmobile Curved Dash)를 출시했다. 핸리 리랜드는 그의 정밀기술 소문 덕택으로 2천 대의 커브드 대시용 엔진 계약을 따냈다. 더구나 그는 꼭 같은 기본 설계로 타 엔진공장에서 만든 엔진보다 출력이 더 나오는 엔진을 만들어 유일한 경쟁자였던 다지(Dodge) 형제 공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1902년 동업자와의 불화로 헨리 포드가 떠난 포드 회사를 넘겨받은 핸리 리랜드는 여기에 캐딜락 자동차회사를 세우고 캐딜락 제1호를 만들어냈다. 이 후 캐딜락은 조용하고 힘이 강하며 잔 고장이 없는 명품 차로 삽시간에 소문나 창업이후 5년동안 총 1만6천26대가 팔렸다. 그런데 영국 런던에서 자동차 판매업을 하던 프레드릭 바넷트라는 사업가가 캐딜락의 우수성을 듣고 1903년 가을 미국으로 건너와 직접 타보고 캐딜락에 반한다. 그는 곧 영국내의 판매대리점 계약을 맺은 후 캐딜락 한 대를 배에 싣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이즈음 영국에서는 산오르기와 전국일주 자동차 경주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바넷트는 캐딜락의 진가를 영국인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1905년부터 캐딜락을 몰고 각종 자동차 경주에 참가, 연승해 인기를 모운다. 바넷트가 자동차경주에 참가한 근본 목적은 캐딜락을 영국에서 많이 팔 수 있는 선전효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영국인들도 캐딜락의 우수한 성능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나 부속품 구하기와 아프터서비스가 힘들 것이라고 단정해 정작 사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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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넷트는 진짜 부품 호환성 자동차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나 뾰쪽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1908년 드디어 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당시 영국의 자동차 애호가들은 황실이나 귀족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이 스포츠를 목적으로 조직한 영국황실자동차클럽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영국 황실자동차클럽은 자동차 스포츠 외에도 유럽에서 만들던 모든 자동차를 평가하는 권위있는 평가단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의 각 자동차회사들은 이 클럽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클럽의 말 한마디가 바로 자동차 판매의 진로를 좌우할 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넷트는 연줄을 달아 황실클럽으로 하여금 캐딜락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도록 작전을 세운 후 1908년 미국 캐딜락 본사로부터 신형모델 8대를 영국으로 실어 온다. 그런 다음 그 중에서 3대를 클럽이 마음대로 뽑아내게 했다. 바넷트는 클럽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3대를 모조리 분해한 다음 부품들을 모두 섞어 놓는다.

 

이튼날 아침 캐딜락을 전혀 모르는 영국기술자 두 사람을 데려다가 다시 원형으로 조립시킨다. 때마침 개관한지 얼마 안되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기장인 전장 7km의 부르크랜드 트랙이 런던 교외에 있었다. 황실클럽은 다시 조립한 3대의 캐딜락을 800km를 쉬지 않고 달린 다음 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자동차와는 견줄 수 없는 원시형 자동차로 이 먼거리를 논스톱으로 달린다는 것은 큰 무리였다.

 

우려와 상상을 뒤엎은 결과가 일어났다. 3대의 재조립 캐딜락은 고장 하나 없이 800km를 거뜬히 완주한 것이다. 정밀검사 결과는 분해 전 새 캐딜락과 일점의 차이도 없는 완벽한 자동차였다. 곧 캐딜락은 당시 자동차의 노벨상이라던 드와(Dewar)트로피를 받았고 정밀한 부품호환성 자동차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친다. 이때부터 전세계의 자동차회사들이 캐딜락의 제조공법을 모방했다.

 

1911년 캐딜락은 세계 최초로 셀프스타터(자동시동기)를 발명해 자동차 기술발전에 혁신을 일으키며 또한번 드와 트로피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동안 시동을 걸기가 어려워 운전하기가 힘들었던 여성과 노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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