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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특장 자동차--공중사다리 소방차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09-21 19:02:14

본문

특장 자동차--공중사다리 소방차


◘ 집념의 소방관이 발명한 공중 사다리 소방차
소방용 공중 사다리의 전설은 복잡하고 성가신 메커니즘의 역사이지만 소방서에서 소방장비중 대대장 대접을 받는다. 이 공중 사다리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과학적 소방도구 중 하나로서 놀라운 혁신 중 하나지만 반면에 다소 고통과 비극적인 측면도 꾸준한 발전속에 동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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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에 다니엘 헤이스(Daniel D. Hayes)는 마차 위에서 스프링 장치로 들어 올리는 공중 사다리를 설계하여 만들었다. 불이 난 건물 고층의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건물의 창문으로 소방관이 신속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이 공중 사다리 발명은 고층화재 소방에 혁명을 일으켰다. 다니엘 헤이스가 이 공중 사다리 소방차를 설계 제작했던 샌프란시스코 소방서는 1950년대 후반까지 계속 헤이스의 고공 사다리를 사용했다.
 
‘헤이즈 (Hayes)’라는 이름은 미국 전역의 소방관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됐다. 미국의 모든 중요한 도시 소방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헤이즈 (Hayes)" 공중 사다리트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명가인 다니엘 헤이스는 소방 역사속의 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과 비극적인 발명가였다. 그는 뉴욕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에 5년 동안 뉴욕소방서에서 증기엔진 펌프의 자원 봉사 기술자로 근무랬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소방관으로 원래 기계 공학자였다. 뉴욕 소방서에서 5년간의 자원봉사를 끝낸 후 헤이스는 유명한 증기 기관차 제작회사인 맨체스터의 아모스케이지(Amoskeag Company)에 취직했다.
 
그는 곧 재능을 인정받아 1866년에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에 납품용으로 아모스케이지 특허의 소방펌프용 증기엔진 5기의 제작 책임을 맡았다. 이 엔진들은 1866년 4월 소방감독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헤이스는 이 엔진들을 배에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에 전달했다. 5기의 증기엔진을 인수한 샌프란시스코 소방서는 이 엔진들을 관리할 기술 소방관이 없었다. 그래서 헤이스에게 엔진 감독관을 제의하여 헤이스는 뉴욕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 불운했던 발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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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소방서 재직 3년쩨인 1868년 그는 그의 이름을 단 유명한 공중 사다리 마차를 만들었다. 그것은 소방장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손으로 펴접는 외가닥 구식 사다리를 밀어 버리는 소방장비의 대 발전이었다. 최고 연장 34피트(10.36m)인 헤이스의 공중 사다리 첫 테스트는 성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소방서는 이 성공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헤이스의 공중 사다리 마차를 3천 달러에 도입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장 휘트니는 소방관용 뒷좌석이 필요 없다는 억지 이유를 들어 이 신 발명품의 사용을 반대했다.
 
그런데 업 친데 덥 친격으로 1871년 샌프란시스코의 하펜딩(Harpending) 구역에서 발생한 대화재 진화에 실패한 헤이스의 비효율적인 공중 사다리 때문에 도시의 반이 잿더미로 변했다는 이유를 들어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법정에서 고공사다 값을 환불하라는 선고를 내려 헤이스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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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헤이스가 궁지에서 빠져 나올 기회가 왔다.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의 수석 엔지니어 인 데이비드 스넬 (David Scannell)은 1872년 7월 샌프란시스코 소방감독관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소방서의 공중 사다리는 불이 난 건물 상층에 충분히 도달 하여 지상으로부터 신속한 물 공급으로 그나마 건물의 일부를 구할 수 있었다. 하펜딩 지역 대화재의 원인을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화재가 발생한 건물 상부 부분뿐만 아니라 이 지역 대부분의 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어 화염이 급속히 확산했다. 헤이스의 고공 사디리 마차는 화재현장 도착 몇 분만에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서 여러 가닥의 물줄기로 진화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 소방 역사의 영웅이 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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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기술자 스넬의 말은 매우 합리적이고 진실했다. 하펜딩 대화재 다음 해인 1872년 4월샌프란시스코 소방서는 시민의 이해를 돕기위해 헤이스의 고공 사다리 마차와 5기의 증기엔진 펌프 등 모든 소방장비 퍼레이드를 거창하게 벌여 시민들을 흥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헤이스는 그의 고공사다리의 뛰어난 작동 능력을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했다. 이때부터 헤이스의 고공 사다리 소방마차는 미국 전역 대 소방서의 필수 장비가 되어 그의 명성과 함께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나갔다. 헤이즈는 1884년 6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최고 연장 65피트(20m)짜리 소방사다리마차를 만들어 로스엔젤래스 소방서에 2,750달러에 팔고 샌프란시스코 소방서를 퇴직한 후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갔다.
 
고정식 고공 사다리를 360도 회전할 수 있는 턴 테이블(Turn table) 고공 사다리 소방차는 1888년 5월 시카고의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프레스턴 (Edward B. Preston)이 시카고와 뉴욕에 건설하는 미국 최초의 고층 빌딩을 위해 50피트(15m) 높이의 턴테이블 고공사다리차를 발명했다. 해이스의 고공 사다리 소방마차가 자동차로 처음 바뀐 것은 1911년 로스앤젤러스 소방서가 고공사다리 전문 메이커인 시카고의 시그레이브(Seagrave Aerial Ladder Truck)에 주문하여 등장한 것이 최초의 고공 사다리 소방 자동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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