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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를 위해 등장한 푸드 왜건
이동식 푸드 트럭 (Mobile food truck)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8-11-28 18:01:36

본문

◉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를 위해 등장한 푸드 왜건

식당 트럭은 음식 을 조리하고 판매 할 수 있는 대형 차량이다 이중에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비롯하여 냉동되거나 미리 포장 된 음식을 판매하는 트럭들도 있다. 또 어떤 푸드 트럭은 설치 된 부엌애서 음식을 처음부터 요리한다. 대게 샌드위치, 햄버거, 감자튀김 및 기타 지역 패스트푸드가 주 메뉴이다. 이동식 푸드 트럭은 거리 식품 산업의 선두로서 매일 25 억 명의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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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의 요리왜건(chuckwagon)이 푸드 트럭의 선조이다. 1800년대 후반에 남서부의 소를 북부와 동부의 시장으로 몰고 가는데 몇 달씩 걸렸다. 1866년 텍사스 북부 고원지대인 팬 핸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대 목장주인 촬스 굿나잇(Charles Goodnight)이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사용하던 낡은 군용마차를 구입하여 선반과 서랍을 단 요리용 부엌을 설치하고 식품과 의약품을 실은 장거리 운행용 푸드 왜건을 처음 만들어 소의 장거리 수송을 하는 카우보이들의 식사불편을 해결한 것이 푸드 트럭의 시조였다.

 

이 최초의 푸드 왜건이 준비해 간 식품 재료는 말린 콩, 커피, 옥수수기름, 소금에 저린 소고기와 돼지고기, 말린 것이나 훈제 식재료들이었다. 여기다가 요리용 화목인 마른 나무껍질과 식수통까지 구비했다.

 

◉ 전쟁이 자동차 식당으로 바꾼 푸드 왜건

현대식 식당 트럭의 초기 원조는 1872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식료품 업자였던 월터 스콧 (Walter Scott)이 말이 끄는 창문을 크게 낸 점심용 런치 왜건을 선 보였다. 월터 스콧은 이 런치 왜건을 로드아일랜드 신문사 앞에 주차시키고 신문 기자와 언론인들에게 샌드위치, 파이, 커피를 팔았다. 1880년에는 매사추세츠주 우스터(Worcester)의 한 식당 카운터였던 토마스 벅클레이(Thomas H. Buckley)는 싱크대, 냉장고 및 조리용스토브와 컬러 창 등을 설치한 다양한 런치 왜건을 제작해 팔아 최초의 대량생산 말이 끄는 푸드 왜건 제조업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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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자동차시대가 1900년을 넘어 서면서 본격적으로 열리자 현대식 식당 마차를 처음 만들었던 월터 스콧은 속도가 느리고 지저분하며 불편한 말이 끄는 식당마차를 1911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 식당으로 바꾸었다. 스콧은 당시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던 컨닝험(Cunningham) 자동차가 생산하던 4기통 35마력 가솔린 엔진 트럭 섀시를 사용하여 자동차 식당을 만들었다.

 

지구촌 대 전쟁은 파괴와 혁신 그리고 풍요를 차례로 갖다 준다. 푸드 트럭도 대 전쟁 때문에 활성화 됐다. 1917년 미군은 유럽 전쟁터의 사병과 피란민을 위해 포드 트럭 섀시를 사용한 군용 푸드 트럭 4백여 대를 만들어 유럽 전선으로 보냈다.

 

◉ 도시의 총아 이동식 간이식당 푸드 트럭

최신 푸드 트럭은 195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차량들이다. 이 푸드 트럭들은 미군이 먼저 사용했는데, 민간 푸드트럭 업자들이 미군의 허가를 받아 군대 기지 내에서 사병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 이후 저렴하고 편리한 맛에 미국내에서 푸드 트럭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정부의 위생, 규격, 맛 관리에 적극 개입으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 볼 수 있어 미국 거리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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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대표작인 한식인 불고기 트럭도 미국에 상륙하여 특히 LA에서 코리안 바비큐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개발자인 로이 최는 원래 LA의 한 중견 레스트랑의 요리사였으나 아시아 소수민족이라는 멸시로 해고당해 복수하는 방법을 찾다가 우리 한민족 고유의 불고기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미국식 불고기가 히트하여 오늘날 로이 최는 코리안 바비큐 트럭의 체인 왕국을 이룩했다고 한다. 코리안 바비큐의 선조격인 고기(Kogi) 트럭을 2008년에 개발 크게 성공한 한국인 로이 최는 코리안 바비큐 트럭의 대부로 통한단다.

 

◉ 외로운 추억의 스넥카, 서울의 식당 버스

현제 서울에만 각양각색의 소, 중형 푸드 트럭이 520여 대나 된다. 특히 2010년대들어 정부의 청년 일자리 조성 정책에 따라 급증했다. 한국의 푸드 트럭의 역사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다. 주로 고물 버스를 개조한 버스식당이었다. 그런 추억의 버스식당들은 지금 대도시 거리에서 찾기 힘 든다. 한국 전쟁이후 90년대까지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폐차 직전의 버스를 이용하여 일명 스넥카라 부르던 식당 버스로 개조하여 낮에는 우동, 라면, 김밥, 떡볶이, 짜장면 등 간단한 음식을, 저녁에는 오뎅, 순대, 튀김, 소주, 막걸리를 파는 간이주점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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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만 해도 버스의 운전석 부분을 주방으로 개조해 라면, 우동이나 김밥을 팔고, 밤에는 포장마차 역할을 하던 스낵 카가 전국 대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2천년대로 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이 추억의 식당 버스 한 대가 서울 강남에 ‘영동 스넥카’라는 별명으로 남아 한국 푸드 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남 대치동 한복판에 있는 영동 스낵카는 여의도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1973년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원호대상자에게 이동식 분식점을 허가해 공사장 인근에서 영업을 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 강남의 개발이 시작되자 강남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 시절 폐차 직전의 버스를 구조 변경하여 사용했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을 목전에 두고 정부에서 새 차로 바꾸어야 영업을 허용한다는 지시에 따라 서울시의 도움으로 광주에 있던 아시아 자동차에 푸드 버스 제작을 주문해 13대의 신형 푸드 버스가 탄생했다. 정부 지정 신형 푸드 버스는 서울 시내에서 자유롭게 영업을 하다가, 전국체전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서울시의 지시에 따라 해당 장소로 이동해 영업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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