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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가솔린엔진 우편자동차 시대 개막
이동식 우편 자동차 - 3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9-01-21 18:01:12

본문

가솔린엔진 우편자동차 시대 개막
1906년 늦게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서 편지 수합과 배송에 가솔린 차량의 공식 사용이 세계 최초로 시작되었다. 시운전에는 콜롬비아의 가솔린자동차가 사용되었다. 시험은 성공적이었으며 곧이어 가솔린자동차 우편 운송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12 년 말까지 보스턴, 디트로이트, 인디애나 폴리스, 샌프란시스코 및 기타 4개 도시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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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정국은 1911년 뉴욕주의 가든시와 미네소타 사이에 처음으로 항공우송을 시작하여 1912년에는 미 전국 16개 주에 31개 항공우송 노선을 운영했다. 1913년 1월 소포우송(Parcel Post) 제도까지 개설하자 편지 우송 전용인 소형 우편자동차 우송가 위기를 맞았다. 새로운 소포우송을 위한 대형 자동차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편 소포는 서비스 시작 일주일 만에 4백만개가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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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연방 우정국장인 프랭크 히치코크(Frank Hitchcock)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소유 100대의 대형우편자동차 제작에 대한 입찰을 서둘러 발표했다. 그 결과 편지와 소포들을 같이 우송할 수 있는 대형 우편자동차로 바뀌어 본격적인 우편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편지와 소포 종합 우편제도 실시로 폭증하는 우편물을 우편자동차로 감당하기 힘겹고 우편 사용 백성들이 늘어나자 미우정국 산하 워싱턴DC 우편국에서는 당시로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인 도시내 순회우체국 자동차를 1916년 세계 최초로 게발해 시민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최초의 우편 자동차 등장
우리나라의 통신에 혁명을 일으킨 것은 19세기말이었다. 1884년 4월 편지통신을 개막시킨 우정총국을 설립하였고, 이어 1885년 9월에는 전보국이, 한참 늦게인 1893년에는 전화가 서울서부터 개통되어 근대적인 통신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중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편지와 소화물을 보내는 우편국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편물을 신속하게 전국으로 운반해 줄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해 1899년 전차와 기차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조선전역을 카버하지 못했다.


1899년부터 차례로 철도가 개통되자 우편통신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기차는 비로써 장거리 채신을 신속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전국 각 도시로 가는 장거리 우편수송은 기차가 담당했지만 가가호호에서 우편소로 모이는 우편물들을 지방으로 보내기 위해서 기차역까지, 그리고 기차가 싣고 오는 우편물을 각 가정으로 배달하기위해서 각 우편소로 수송하는 대는 빠른 지동차가 나타나기전이라서 자전거, 인력거, 수레, 우마치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신속한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우편제도는 기차 수송만 빨랐지 기차역에 내려놓은 편지가 두메산골 집까지 도달하는 대는 근 보름이나 걸렸다. 그래도 우정제도라는 것이 생겨나 옛날에는 꿈도 못 꾸던 친족들의 문안 글을 앉아서 받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근대화 우편제도가 그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의 등장부터였다. 1901년 처음으로 서울에 자동차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보급이 더디어 1920년까지는 우편물들이 자동차의 덕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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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을 넘어서면서 대도시에는 대절자동차들이, 지방에는 정기노선 승합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전국으로 자동차교통이 번져 나갔다. 그러나 한꺼번에 전국의 우편물을 자동차로 수송할 수 없어 우선 서울부터 자동차 우편이 시작됐다. 조선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서울의 경성우체국과 광화문 우체국에서는 날로 폭주하는 우편물을 남대문 기차역까지 마차로 수송하자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잡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성(중앙)과 광화문 두 곳 우편국에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1921년 우편자동차를 들여오기로 작정한 것을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자동차로 우편물을 운반--경성, 광화문 우편국 두 곳에서 남대문 역 사이에--경성우편국에서는 이제까지 남대문정거장에 우편물을 운반하는 데에 마차 세대로 하여왔으나, 점점 사무가 번잡하여가는 이 때에 도저히 마차로는 시간이 많이 걸리며 불편한 일이 많으므로 운반차를 자동차로 개량할 계획으로 체신청에 신청한 결과 불원간 자동차 네 채가 경성을 오겠으며, 목하 경성우체국에서는 마차 간을 고치어 자동차간으로 만드는 중이며 겸하여 운전수룰 모집중이라는데, 네 채 중에 한 채는 광화문우편국으로 보내고 한 체는 예비로 두겠으며, 자동차 몸에는 전부 붉은 칠을 하고 우편국 부호를 그리겠다는데 자동차를 사용할 시기는 4월 10일경이나 되겠다더라.」


이렇게 시작한 우편자동차가 그 신속하고 편리함을 절감한 체신청이 적극 추진한 결과 1년도 못간 같은 해 7월말 전국 우송망을 구축했다. 4개월 만에 전국자동차 우송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각 지방의 정기노선 승합차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편 속송 계획--자동차 망 완성--조선의 지방도읍을 연락하는 자동차영업노선은 만리장족의 진보를 달하여 금일에 이르러 전 조선에 걸쳐 노선은 150개 이상이요, 이의 연장거리는 1만4천 조선 리(里)에 달하여 대만의 남단으로부터 북경의 북단에 달하는 일직선보다 더 먼 거리인바, 체신국에서는 각 지방 연락자동차에 우편물을 탑재하여 속달할 계획으로 자동차영업자와 교섭한 결과 착착 실시하게 되어 금일에 우편물 자동차는 27개 노선에 걸쳐 연도지방 백성에 통신상 다대한 효과가 있는 상태이라더라.


상금 종래 제반관계와 전기 150여 노선 중 부정기운전의 자동차노선도 유한고로 자동차우송 선을 전 조선에 보급케함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체신국에서는 근래 기 체송 로선망의 완성이 필요타하여 목하 계획중이므로 불원에 전 조선 1만4천리 장거리에 거대하게 자동차우편을 행하게 되리라더라.」 체신국에서는 그 많은 노선에 전속 우편자동차를 구입할 여력이 부족해 일단 지방우송은 정기노선자동차업자들에게 수송비를 지불하고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편도 기차와 자동차에 기생하여 발전했다.


최초의 우편항공기가 등장한 것은 1936년 10월 이였다. 지금의 대한항공 전신인 KNA(대한국민항공)을 1948년에 창업한 비행사 신용욱씨가 1936년에 한국최초로 세운 신 항공사는 이해 10월 처음으로 서울~이리~광주 노선을 개설하여 운항을 시작하면서 이 지방의 승객과 우편물을 항공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우편물 운반용 자동차를 도입한 같은 해에 체신국에서는 이동체신자동차까지 일본에서 들여왔다. 이 차는 이름 그대로 전보를 치고 전화만 할 수 있는 움직이는 체신 차였다. ⌜1만 원짜리 체신자동차--체신국에서는 1만 원짜리 체신자동차 1체를 사들이게 되어 배로 인천에 내려 지나간 8일에 경성으로 왔으므로 제77호 번호를 달고 운전을 시험한 결과 성능이 매우 좋다더라. 19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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