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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남, 북극 탐사 자동차의 역사 (History of Pole Exploration Vehicle)

페이지 정보

글 : desk(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9-05-06 20:13:17

본문

◉ 극지 탐험의 목적과 역사
지구상에서 극한의 동토에 생물서식 최악의 지대인 남, 북극을 14세기부터 기를 쓰고 탐험하는 것은 첫째로 선박의 지구 순환 항로를 개척하기 위함이요, 다음은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성을 시험하는 것, 그리고 20세기 들어 속도가 빨라지는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마지막으로 광물, 석유, 천연가스 등 지하 자원을 개발하려는 목적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교통수단은 필수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 까지는 바다를 통해 선박으로 극지에 접근한 후 썰매와 도보로 양 극지를 정복했다. 그러다가 자동차가 발명되자 훨씬 간편하고 빠른 차량으로 양 극지에 도달하는 루트 개척에 혈안이 됐다.   
    
남, 북극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세기 초부터였다. 1527년부터 유럽의 탐험가들은 유럽에서 북극을 거쳐 아메리카인 신세계로 가는 동서 통로가 거대한 북극의 빙산이 차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 제일 먼저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톤 (Robert Thorne)이 영국 왕 헨리 8세 (Henry VIII)에게 북극원정을 지원해달라는 요청하면서 극지 탐험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으나 20세기 초까지 획기적인 진전은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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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정복 최초의 자동차
영국의 해군 장교에 선원이며 탐험가인 어네스트 셰클턴(Ernest Shackleton ; 1874 - 1922)은 영국 왕실의 남극 탐험대 대장으로 임명되어 원정대 선박인 님로드(Nimrod)호를 타고 1907년 8월 남극 대륙으로 떠난다.  원정대의 과학과 지리에 관한 여러 가지 임무 중 특히 남극 정복의 목표가 중요했다. 그런데 이 원정대에 자동차 한 대가 끼어 있었다. 그 사연인 즉 바로 이렇다. 4기통 15마력의 공랭식 엔진을 얹은 이 자동차는  원정대의 주요 스폰서인 영국의 중공업 대재벌인 윌리엄 비어드모어(William Beardmore)가 파산 지경에 빠진 스코틀랜드의 자동차 회사인 아롤 존스턴(Arrol-Johnston)을 인수하여 스코틀랜드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싶었다.
    
아롤 존스턴 자동차를 인수한  윌리엄 비어드모어는 아롤 존스턴 자동차를 홍보할 획기적인 방법을 찾다가 영국 왕실의 남극 탐험대 스폰서가 된 기회를 이용하여 남극탐험용 자동차로 한 대를 무료로 기중했던 것이다.  당시 자동차가 발명된 지 20년 정도였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매우 엉성한 형태의 기술품이라 남극 대륙보다 덜 까다로운 모든 상황에서 테스트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 조건을 가진 남극 주행을 성공할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차의 휘발유 엔진은 극한의 추위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되지 않았으며 설상 주행장치를 설치하기 위한 적절한 차체도 아니었다. 차량은 남극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조건에서 제대로 테스트되지 않은 채 남극으로 갔다. 차는 나무 상자 속에 넣어 5마리의 조랑말 그리고 생필품과 함께 ‘님로드’호의 갑판에 싣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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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로드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남극의 베이스 포인트인 허트 포인트(Hut Point)에 근접할 수 없게 되자 자동차는 첫 번째 주행에 도전했다.  차가 하역되어 남극의 얼음 위에 놓이자 녹 방지 그리스를 제거 한 후 정비공 버나드 데이(Bernard Day)가 엔진을 시동했다. 차는 20cm 깊이의 눈으로 뒤덮인 얼음바다 위에 서있었다. 그러나 스타트하는 순간 구동 후륜이 격렬하게 돌았지만 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 속에 묻혀 버렸다. 몇 시간의 실랑이 후 도저히 운행할 수 없게 되자 차는 다시 배위로 올려졌다. 남극 대륙의 첫 자동차는 이렇게 첫 출발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설상 운송수단으로서의 자동차는 잠시 무시되었다.
    
그런데 자동차를 그냥 방치할 수 없어 사용법을 연구하다가 선박과 베이스 캠프 사이에서 자동차가 못가는 눈길은 사람이나 당나귀가 썰매를 끌어  짐을 운반하고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딱딱한 곳은 자동차가 운송하는 방법을 찾아 차량을 1907년 11월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는 선착장에 세운 2개의 보급 창고와 베이스캠프 사이의 보급품 수송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차는 베이스 캠프로부터 24km 사이 딱딱한 루트만 운행했는데, 이곳까지 짐을 싣고 온 썰매를 끌고 베이스 캠프로 오갔다. 얄궂게도 혹한의 동토에서 엔진이 과열을 잘 일으켜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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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거리라도 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비사인 버나드 데이(Bernard Day)가 앞바퀴 밑에 스키를 달아 바다 얼음을 가로 질러 짐을 운반 할 수 있었다. 탐험대는 자동차의 운행거리를 계속 개척하여 1908년 5월부터는 남극 베이스캠프에서 150km까지 운행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남극 탐험 최초의 자동차는 1907년 11월부터 다음해인 1908년 12월 남극 빙하의 깊은 크레바스 속으로 추락할 때까지 원정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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