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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우리나라 임금님과 대통령의 승용차는 처음부터 캐딜락 (하)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9-08-27 10:42:36

본문

*2915년 순종 어차 캐딜락 리무진

 

◉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자동차시대를 개막시킨 순종과 의암의 캐딜락

고종에 이어 두 번째로 왕실에서 자가용을 탄 사람은 순종이었다. 왕실에서는 마지막 임금님인 순종황제를 빼놓을 수 없어 미국으로부터 1915년 V형8기통 엔진을 얹은 캐딜락 리무진 한 대를 들여와 타도록 했다. 이 캐딜락 역시 지금까지 실물이 전해와 2003년 복원되어 현재 경복궁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이 캐딜락은 당시 20대 정도 밖에 만들지 않은 귀한 차로서 현재는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차와 합쳐 이 세계에는 단 4대밖에 없다고 한다.

 
일제 강압 40년에서 1945년 해방되어 독립을 찾아 대한민국 건국 초대 대통령부터 캐딜락을 다시 타기 시작했다.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은 하야할 때까지 1954년형 캐딜락 푸리트우드 임페리얼 리무진을 탔다.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증했다는 이 차는 캐딜락 중에서 가장 컸던 경 방탄차로 V형 8기통 6000cc 230마력 엔진에 히터와 에어컨까지 달려 있었다. 이 모델은 후에 윤보선 제4대 대통령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GM은 세계적 VIP들을 위해 610대만 생산했던 희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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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손병희 자가용 캐딜락 리무진 

 

왕실이나 고관 대작들이 아닌 자가용 자동차를 구입해 탔던 최초의 우리 민간인은 제3대 천도교 교주였으며 독립 운동가였던 의암 손 병희 선생이었다. 선생은 서자로 태어나 정치의 부패, 적서차별, 반상제도 등 봉건적인 악습을 배척하고 못 사는 나라가 한이 되어 부의 축적과 교육, 그리고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쳐 나중에 3・1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애국자의 한 거목이었다.

 
의암(義菴) 손 병희(孫秉熙) 선생은 35세 때인 1897년부터 민족 종교인 동학을 이끌어 오다가 부패한 조정에 대항했던 동학혁명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을 때인 1905년경 동경에서 우리민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타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때 일본에도 겨우 10여 대의 자동차밖에 없었다고 한다. 의암이 자가용을 탄 것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일본인들에게 과시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망명에서 귀국한 후 1915년경 일본에 볼일이 있어 잠깐 건너갔을 때 마침 공진회라는 국제산업박람회가 동경에서 열려 여기에 출품된 미국제 캐딜락 자동차를 보고 한 대를 사와서 자가용으로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의암의 자동차가 순종의 차보다 좋은 것을 알고 “내가 어찌 임금의 자동차보다 좋은 것을 타리요” 하고는 순종의 차와 바꾸었다고 한다.

 
이 차는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유리벽이 있어 의암의 대화를 운전사가 듣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암이 운전사에게 행선지를 지시할 때는 앞뒤로 설치된 소리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운전사가 귀해 중국인 운전사를 고용했는데 서울 가회동 자택을 드나들 때마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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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이승만, 윤보선 대통령 캐딜락 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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