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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악마의 바겐(Wagen)이 영원한 서민의 쿠페로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20-01-06 15:05:53

본문

*1936년 폭스바겐 비틀

 

계란을 옆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반달형으로 생긴 차체 스타일에 문은 달랑 두 개, 그리고 냉각수가 전혀 필요없는 공랭식의 어른 주먹만 한 엔진이 차 뒤꽁무니에 들어 있는 그 유명한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이 탄생했던 당시의 정식 명칭은 "KdF 바겐(Kraft durch Freude — 즐거움을 통한 힘 만들기)“ 였으나 2차 대전 동안에도 살아남아 전쟁으로 완파된 전후독일의 경제를 발 빠르게 부흥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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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폭스바겐 비틀

그 단순한 메커니즘과 잔 고장 없고 연비가 우수하며 차 값까지 싼 폭스바겐 KDF는 미국과 유럽 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이때 미국시장에 상륙한 폭스바겐 KDF를 미국 사람들은 딱정 벌래 같이 생겼다하여 아돌프 히틀러가명명한 KDF 대신 폭스바겐 비틀(VW Beetle ; 딱정벌레)라 부른 것이 이 차의 영원한 브랜드 네임이 됐다. 전쟁의 화신, 인류의 악마인 아돌프 히틀러의 아이디어로 탄생했지만 1938년부터 2003까지 약 70년 동안 2도어 쿠페 모양 조금도 변하지 않고 21,529,464대를 생산 쿠페의 전설이 됐다.

 
◉ 인류의 악마와 자동차 천재의 악수

1920년대 말에 전 세계를 강타한 대 경제공황을 벗어나 번영의 독일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정치구호가 독일 국민들에게 먹혀 1933년 드디어 일개 졸병이었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된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첫 방법으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Autobahn) 고속도로를 건설한다. 히틀러는 이어 이 고속도로에서 독일 국민들이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는 값싼 국민의 자동차를 만들어 보급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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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시작차를 보는 히틀러(가운데)와 포르쉐(왼쪽)

이때 독일에는 메르세대스 벤츠 자동차 출신으로 자동차 설계의 세기적 천재였으며 지금의 명품 스포츠카 포르쉐의 창업자 였던 페르디난드 포르쉐(Ferdinand Porsche)가 밴츠에서 일하고 있음을 기억한 히틀러는 포르쉐를 불러 아우토반에서 부담없이 탈 수 있는 독일 국민차의 설계 제작을 지시한다. 히틀러로부터 부탁받은 국민차의 설계는 그가 세워 놓은 소형차의 계획과 일치해 1936년 드디어 딱정벌레형의 시작차 3대를 완성해 히틀러에게 바친다.

 
2년간 이 차의 주행 시험 결과에 만족한 히틀러로부터 포르쉐는 독일문화훈장까지 받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막 생산에 들어가려던 1939년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피비린내 나는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다. 그 바람에 폭스바겐 KDF는 생산이 중단되었고 대신 히틀러의 군용차로 변신한다. 전쟁이 끝난 다음까지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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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녀년 폭스바겐 비틀1호화 설계자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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