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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대모험과 고난의 여정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20-08-19 11:08:23

본문

*1888년- 베르타가 주유한 포츠하임 약국

 

평소에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두 아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세 모자는 모험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 아버지의 공작실에 몰래 들어가 시동을 걸지 않고 살금살금 조용하게 밀어내어 집으로부터 서너 집 건너까지 끌고 갔다. 엔진소리가 잠자는 아버지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까지 왔을 때 큰 아들이 엔진시동 손잡이를 힘껏 몇 바퀴 잡아 돌리자‘ 풋풋풋’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시동이 걸렸다. 곧 세 모자가 탄 자동차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붕도 없고 철판 스프링을 장치한 쿠션에다가 의자만 덩그러니 얹혀 있는 차는 말발굽과 마차바퀴 자국이 깊이 파인 험하고 울퉁불퉁한 좁은 흙길을 덜컹덩거리며 평균시속16km의 속도로 굴러갔다. 

 

집에서 떠나 20km정도를 달려왔을 때부터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수냉식 엔진으로 설계했으나 이 첫차에는 냉각기가 달려 있지 않아 과열 때문에 연기가 난 것이다. 냉각기인 라디에이터 속에 있는 냉각수가 몸체 속으로 들어가 순환하면서 열을 식혀 주어야 하는데 그 장치를 미처 만들지 못해 임시로 물이 담겨 있는 큰 그릇 속에 엔진 몸체를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엔진이 뜨거워지자 물이 끓어 증발해 버리는 바람에 냉각작용을 장시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베르타는 매 18km 주행한 뒤마다 차를 세우고 도랑이나 우물에서 차거운 물을 떠다 부어야 했다. 

 

또 하나의 고통은 연료탱크가 작아 기름을 구해 자주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휘발유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솔벤트를 연료로 사용했다. 2~3마력짜리 1기통의 약한 힘을 내는 엔진인데도 연료가 금방 바닥이 나서 솔벤트를 구하기 위해 동리 약국마다 서야 했다. 당시에는 솔벤트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약국마다 조금씩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약국이 이 첫 자동차의 주유소 역할을 한 것인데, 그 첫 주유소가 하이델베르그를 지나 남쪽으로 얼마 안간 곳에 있던 비수록흐 마을의 약국이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당시 베르타가 처음으로 솔벤트를 구입했던 약국 앞에 차와 세 모자를 기리는 기념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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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8년 첫 번째 베르타의 주행

 

● 혼비백산한 남편

 

이런 고생을 하면서 세 모자가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은 이 달리는 이상한 기계를 쳐다보느라 넋을 잃는 소동이 벌어졌다. 증기엔진으로 달리는 증기자동차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다녔지만 시골에서는 자동차를 본 사람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베르타의 자동차가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가를 오늘날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여인과 어린 두 소년이 차 위에 높이 타고 제 스스로 달려가는 쇠수레를 보는 사람들 중에 는 공포감을 갖기도 하고 경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뿐인가 달리다가 만나는 말들이 놀라 앞발을 쳐들고 하늘 높이 뛰어오르다가 엉뚱한 길로 달아나는가 하면 강아지들이 동네가 떠나라고 짖어대며 따라 붙기도 하고 놀란 아이들이 달아나 나무 뒤에 숨어서는 차를 향해 돌팔매질까지 했다.

 

여정의 3분의 2쯤 인 부루샬 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베르타는 그제서야 남편에게 전보를 쳤다. “우리 두 이들과 나는 포오츠하임의 친정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 했지만 차라리 당신이 만든 자동차로 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겠다고 생각해 당신 몰래 자동차를 끌고 나온 것을 용서하세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어요. 당신의 아내 베르타.” 이 전보를 받은 카르 벤츠는 기절초풍을 했다. 평생을 바쳐 발명한 자동차가 틀림없이 망가졌으리라는 태산같은 걱정에 벤츠는 당장에 말을 타고 처가로 달렸다.

 

전보를 띄우고 계속 차를 몰아가는데 또 다른 장애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번에는 차가 달려가기를 거절하고 서버렸다. 엔진냉각수도 연료도 충분한데 이상했다. 엔진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한참만에야 연료파이프가 먼지 때문에 막힌 것을 발견했다. 베르타는 머리핀을 뽑아 막힌 파이프를 후벼내어 청소했다. 이 차는 2단 변속밖에 할 수 없었다. 힘이 가장 많이 쓰는 저단 변속기가 없었다. 가파른 언덕을 만나면 올라갈 수 없어 몸무게가 제일 가벼운 막내가 핸들을 잡고 어머니와 큰 아들이 밀고 올라갔다. 

 

또 언덕을 내려갈 때는 브레이크를 자주 써야 했기 때문에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 장치한 작은 브레이크슈는 그들이 여행을 다 끝낸 무렵에 가죽이 완전히 닳아 없어져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친정이 있는 포오츠하임 바로 전 마을에서 구두방을 찾아 새 구두 한 켤레를 사서 다 닳아 없어진 브레이크의 가죽신을 만들어 끼웠다. 이 구두방이 최초의 정비소가 된 셈이다. 친정이 있는 포츠하임 마을 가까이 왔을 때 자동차는 ‘끽끽’ 소리를 내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엔진의 동력을 뒷바퀴에 전달하는데 필요한 스프링이 달린 케이블을 다시 연결할 수 없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늘어나는 그녀의 스타킹 고무밴드를 생각하고 그것을 벗어 케이블에 이어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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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베르타와 벤츠 바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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