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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경악과 흥분의 작은 괴물- 베르타 벤츠가 세상에 알렸다.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20-08-24 19:22:15

본문

* 1890년대 벤츠 바겐을 탄 독일 상류층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해 계속 운전하기가 위험했다. 차에는 등불도 안 달려 있고 길가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세 모자는 더 이상 갈 수 없어 길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옆에다 야영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밝은 불빛들이 나타나 자기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남편에게 전보를 치기 위해 도중에 들렸던 부루샬 사람들이 포츠하임에다 세 모자가 자동차를 몰고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보로 알렸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포츠하임 사람들이 이 영웅들을 환영하기 위해 마중 나왔던 것이다. 베르타는 고향사람들이 밝혀주는 가스램프의 불빛을 따라 무사히 친정에 도착했다. 친정 식구들은 온통 기름투성이가 되어 눈만 빠꼼한 세 모자를 보고 놀라면서 환영의 박수를 끝없이 쳤다 

 

그 이튿날 새벽 처가에 도착한 칼 벤츠는 이리저리 차를 조사해 봤으나 크게 고장난데는 없고 잔고장들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 먼 험한 길을 주행했는데도 엔진 자체는 멀쩡한 것을 보고 아내 베르타와 두 아들을 끌어안고는 ‘분더바(Wunderbar ; wonderful)’를 연발했다. 베르타는 다음날부터 5일 동안 친정어머니를 태우고 친척들이 사는 이웃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동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어 100km의 먼 거리를 말(馬)없이 제 스스로 달려온 자동차 구경에 넋을 잃고 탄성을 금치 못했다. 

 

베르타는 만나는 사람마다 남편이 만든 자동차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였고, 매우 밝은 자동차의 장래와 그 실용가치, 그리고 틀림없이 육상 교통을 변혁시킬 자동차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열심히 선전했다. 이것이 최초의 자동차 홍보였다. 그런 후 세 모자는 다시 자동차를 운전해 만하임의 집으로 무사히 귀가했다. 포츠하임에서 돌아온 베르타는 엔진 자체의 고장은 전혀 없으나 언덕길에서 힘이 부족하고 핸들이 불안전하다는 등 여러 가지 장단점을 남편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 아내와 아들의 여행으로 벤츠는 그의 발명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베르타의 충고를 받아들여 변속기에 저속기어 하나를 더 장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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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벤츠 2호 벨로를 운전하는 벤츠 부부

 

● 가솔린 자동차시대의 전야제

 

1892년 킹핀에 의해 앞바퀴 차축이 좌우로 조향하는 애커먼식 핸들을 장치한 2기통 3마력의 강한 엔진을 만들어 얹은 최초의 네 바퀴차인 ‘빅토리아’호와 이어 좀더 가벼운 ‘벨로’호를 만들어 냈다. 이 2호와 3호차는 2천 마르크에 팔았는데, 1895년까지 매년 130대씩 판매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모두 아내와 아들이 성공한 덕분이었고, 각 신문이 앞 다투어 사상 최초로 세 모자가 모험한 롱런 테스트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 큰 선전효과를 얻은 결과였다. 

 

이로써 칼 벤츠는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완성차 생산업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시기에 가솔린 자동차를 벤츠보다 3개월 정도 늦게 발명했던 고트리프 다임러는 그의 자동차를 시판용으로 생산하는 데는 벤츠보다 훨씬 늦었다.

 

다임러는 완성차 생산보다는 차의 엔진부터 생산해서 독일 내 다른 기업체나 프랑스의 기업가들에게 팔기 시작해 세계 최초의 엔진 전문 생산 메이커라는 기록을 남겼다.  

 

베르타의 모험은 자동차가 단순히 하나의 값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말이 끄는 마차보다 훨씬 실리적이고 빠른 새 시대의 육상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베르타가 지도 한 장 없이 말과 마차들만 다니던 험한 옛길을 따라 지금처럼 쿠션이 좋은 타이어가 아니라 딱딱한 통고무타이어가 달린 원시적인 자동차를 운전해 긴 여정을 완주했다는 사실은 여자의 놀라운 인내이면서 집념이요, 자동차시대를 개막시키는데 공헌한 위대한 자동차의 어머니였다. 

 

 당시의 법률은 자동차의 장거리 시험운전을 절대 금지시켰고 다만 허가해 준 특정 코스에서만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법을 깨뜨리고 장거리 여행을 해낸 여자의 대담성과 남편의 발명품에 대한 굳은 신념은 전 유럽 사람들에게 혁명적이며 실용적인 수송의 수단으로 자동차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포오츠하임의 건축가였던 베르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탄생하던 날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 했다. “오늘 불행하게도 딸이 또 하나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섭섭했던 것과는 반대로 베르타의 탄생은 자동차 역사에 커다란 행운을 가져왔고 여러 가지 뜻있는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자동차 도둑이요, 최초의 도로교통법 위반자요, 최초의 자동차 주행시험을 한 자요, 그리고 최초의 자동차 선전가요, 최초의 정비사요, 최초의 여성 운전자요, 최초의 기솔린 자동차 장거리 주행을 했다는 점들이다. 자동차도둑이란 선의적인 뜻이지 결코 그녀를 모독하는 말은 아니다. 벤츠가 성공한 후부터 현모양처인 베르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터 벤츠(어머니 벤츠)`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고, 남편이 별세한 후 15년간 더 살다가 1944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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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벤츠 2호 벨로를 운전하는 베르타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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