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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에드워디안 시대에 등장한 각종 모터 드레스와 악세서리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20-09-16 19:23:55

본문

* 1900년대 에드워디안 시대 모터 패션 

 

에드워디안 시대의 자동차들은 거의가 지붕이나 앞창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 운전에는 특수 의류가 필요했다. 얇은 천과 같은 직물 옷은 바람에 날려 풍선으로 변하기 때문에 드라이빙 드레스로 적당치 않았다. 대신 가죽으로 만든 타이트한 코트나 방수용 바바리 코트 등 특수 드라이빙 코트는 날씨와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손목에 밀착되어 있어 바람이나 먼지가 들어오지 못해 승객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 겨울에는 긴 모피 가죽 코트, 여름에는 먼지 침입 방지용 긴 린넨 또는 알파카 더스트 코트를 선호했다.

 

기름 얼룩을 방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앞을 볼 수 있는 베일로 감싼 크고 평평한 모자를 썼으며, 남성은 폭이 좁은 칼라와 더블 버턴이 달려 있으며 양쪽 가슴 주머니가 붙어 있고 양쪽 소매를 묶을 수 있는 윗저고리를 입고 발목을 단단히 묶을 수 있는 바지를 주로 입었으며 요트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겨울에는 가죽 코트와 모피 안감이 들어 있는 헬멧 또는 방진용 두꺼운 실크 코트를 많이 입었다. 또 비가 내릴 때 입는 탠트형 비옷과 먼지막이 안경도 이때 드라이버들을 위해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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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런던의 자동차 타기 유행

 

든 것을 빠르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자동차

 

자동차는 여가 활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증가시켰다. 더 이상 주말 파티가 성급하고 바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여인들이 흔히 좋아하던 토요일과 월요일이면 런던에서 시골을 오가며 즐기던 파티를 자동차가 빠르게 그리고 파티를 길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또 떨어져 있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연인들의 만남을 빠르게 해주었으며 업무도 더 쉽게 진행되도록 해주었다. 자동차여행 뿐만 아니라 런던 시민들이 시골을 더 많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런던의 확장하는 시내 전차 네트워크와 철도역시 여행붐을 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열광적인 운전자들은 여행을 자동차에 또 다른 형태의 레저로 접목했다. 1896년과 1914년 사이에 수많은 자동차관련 여행 책들이 출판되었다. 튀니지, 중국 또는 시베리아와 같이 자동차로 알려지지 않은 곳뿐만 아니라 스코트랜드 열도나 프랑스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으나 접근하기 쉬운 곳의 모터 투어를 소상히 소개했다. 이 새로운 자동차 여행은 당시 신용도가 높았던 런던의 토마스 쿡(Thomas Cook & Son) 여행사가 처음으로 ‘자동차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동차 여행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가능한 자동차여행 루트와 주유소 위치까지 안내서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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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에드워디안 시절-두꺼운 남여 운전복과 먼지막이 안경

 

* 자동차 경주의 등장

 

1900년대는 속도의 시대로 들어섰다. 자동차 드라이버들은 어떻게 하면 더 빠른 자동차를 몰수 있을까,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자동차 경주였다. 그 첫 번째 자동차 경주가 1894년에 프랑스에서 열렸고 곧 프랑스 르망과 미국의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비치에서 그랑프리가 창립되었다. 1904년에는 미국 철도 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반더빌트 주니어(Willie K. Vanderbilt, Jr)는 데이토나 비치에서 90마력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세계 최고시속 147km(92마일)를 기록했다. 1907년에 열린 최초의 지구 반바퀴 경주인 14,944km간 북경-파리 경주는 이탈라라는 이탈리아 차를 운전한 이탈리아의 보르게세왕자가 우승했다.

 

초기 레이스에서 영국 운전자들은 일반 도로에서의 경주는 불법이기 때문에 도로경주는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영국 드라이버들은 유럽대륙이나 아일랜드에서 경주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 경주장을 영국의 부유 한 지주인 휴 록 킹(Hugh Locke-King)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 전용 경주장 건설을 시작했다. 그 결과 세계최초의 그랑프리 서킷인 모서리가 둥글게 된 거대한 타원형 브루크랜드(Brooklands) 트랙이 완성됐다. 이 브루크랜드 서킷은 1905년에 착공하여 1907년에 완공되었으며 이어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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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여성 운전복

 

* 새로운 용어를 만든 자동차

 

자동차는 또한 영어에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넣었다. 차를 게러지(garage)라는 프랑스식 차고에 두지 않고 영국식으로 당시 부르던 차고인 자동차 마구간에(motor stable)에 주차했다. 에드워디안 시절 영국에서는 차고를 자동차 마구간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만들어 불렀지만 이 용어는 영국의 보수적인 합성 단어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그리스어에서 가두어 둔다는 뜻의 게러지로 불렀다. 그러니까 오늘날 차고라는 용어는 프랑스식으로 전해 온 것이다.

 

에드워디안 시절 운전자들을 드라이버(Driver)가 아니라 기계공(mechanic)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엔진 보닛을 자주 열고 손을 엔진 속으로 들여 밀기 때문에 기계공으로 불렀다. 또한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가정의 하인과 마부들은 연금을 받거나 운전을 배워 직업 운전사가 됐고, 마구간은 작고 매력적인 게러지로 바뀌면서 말과 마차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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