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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지프의 탄생 배경
역사적인 세계 4대 동키 카(Donkey cars ; 일꾼 차) -4-

페이지 정보

글 : 전영선(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21-01-06 20:23:31

본문

*프리랜더 천재 자동차 기술자 칼 프로브스트

 

세계 제1차 대전 때부터 4륜구동 자동차의 실용성이 차츰 커져 전장 어느 곳이든 자유롭고 민첩하게 다닐 수 있는 군용차의 연구가 계속되어 왔다. 이후 세계2차대전 전까지 여러 형태이 원시형 지프차가 나왔으나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민첩한 소형 만능 군용차의 필요성을 시급하게 해준 것은 1939년 발발한 2차 대전이었다.

 

1939년 9월 유럽에서 2차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의 강력한 기계화 부대는 전격전으로 대 성공을 했다. 아직 전격전에 폭스바겐을 4륜구동차로 개조해 소형자동차량으로 대량 투입 했다는 정보를 듣고 지휘용 소형 정찰차를 만들기로 했다. 특히 야전 전투에서 기마병 대신 절대 필요한 소형 경량 군용차의 개발이 시급함을 느낀 미 국방성은 1940년 5월 중순 일요일, 디트로이트시에 살고 있는 미국 제일의 프리랜서 자동차 기술자였던 칼․프로브스트(Karl Probst, 1883 – 1963)에게 긴급 통화로 그를 워싱턴으로 불러들어 이 소형 군용차 개발에 대한 협의를 했다. 마침 미 국방성은 유럽의 정보망으로부터 히틀러가 독일이 자동차 설계 제일인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박사에게 1933년 지시했던 국민차 폭스바겐을 사막전의 독일명장 롬멜의 제안에 따라 야전용 4WD소형군용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 이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미국 팬실바니아에서 영국제 경승용차인 오스틴7을 생산 판매하던 밴텀(Bantam Motor Co)자동차회사 사장 로이 에반스(Roy Evans)라는 미국인 사업가였다. 밴텀회사의 소형 승용차는 물질 풍요시대의 미국인들이 찾는 크고 빠르고 힘세고 멋있는 차의 유행에 뒤져 10년간 끌어오다가 22마력의 미니 밴텀쿠페는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잃어 회사가 도산 직전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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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빌빌거리던 꼬마 자동차 밴텀
 

* 구원의 손길

 

로이 에반스 사장은 마침 국방성에서 이 계획의 담당관이 친한 친구였던 관계로 모든 계획을 상세히 알 수 있었고 몰락해 가는 자기의 미니 밴텀차를 전용해 볼 욕심이 크게 일어났다. 국방성의 담당관은 칼 프로보스트와도 친한 사이였다. 소형 군용차에 대한 프로브스트의 의견을 듣고난 국방성은 사양을 결정하여 GM, 포드, 크라이슬러, 허드슨, 밴텀, 윌리스오버랜드 등큰 메이커들을 포함 미국내 135개 자동차회사에 알려 시험차 제작을 입찰했다. 

 

국방성이 제시한 이 차의 사양 규격은 차 길이가 3m를 넘지 말아야 하며 최소 250kg 이상의 무게를 실을 수 있어야 하고 앞 뒤 바퀴가 전부 구동되는 네바퀴굴림차, 차 무게는 500kg, 40마력 이상의 힘을 가진 엔진에다가 산간 전투를 고려하여 등판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찰에 참가한 메이커들은 사양서를 받은 즉시부터 24시간 내에 제반 응찰 서류와 제작 도면, 자재 소요표, 원가 계산서 등을 제출하여야 하며 낙찰자는 그 순간부터 49일 내에 견본차 1대를 납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밴텀 자동차의 로이 에반스 사장은 입찰 조건을 보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22마력의 미니 밴텀차를 이용할 수 있는 사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입찰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은행 부채를 갚을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칼 프르브스트와 손을 잡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로이 에반스 사장과 국방성 담당관의 간곡한 부탁으로 팬텀사를 돕기로 했다. 이것보다도 프르브스트의 구미를 당긴 것은 여태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그리고 혁신적인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프르브스트는 곧 기술자들이 다 흩어진 밴텀회사의 기술부로 짐을 싸들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미니 밴텀차의 하체만 이용하고 나머지 부속품들은 시중에서 구입해 국방성의 사양에 맞는 차를 만들기로 했다. 우선 기본 계획을 재빨리 세운 프로브스트는 제작 도면, 원가 계산서등 일체의 응찰 서류를 21시간만에 끝마쳐 제일 먼져 제출했다. 그 결과 최저 가격 입찰은 월리스 오버랜드로 떨어졌으나 완벽한 입찰 서류를 제 시간에 제출한 회사는 밴텀사뿐이었다. 또 밴텀사의 입찰 가격이 국방성의 내정 가격의 상한선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등으로 결국 밴텀사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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