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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자동차 디자인과 제2차 세계대전-1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10-15 16:56:05

본문

글/구상(한밭대 교수)

20세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역사적인 사건은 거의 전 세계를 5년여 동안 전쟁의 포화 속에 있게 만든 세계 제2차 대전이다. 이 전쟁은 자동차의 디자인에서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미 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유럽과 북미 대륙의 자동차문화와 산업이 확연한 차이를 가지도록 하는 촉매제로써 작용하였던 것이다.

유럽에서 아직 자동차 생산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20세기 초에, 미국에서는 거대기업의 형태를 가진 대량생산체제의 자동차 메이커가 생겨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은 오랜 마차 문화 전통의 영향과, 마차 제작자들의 공예적(工藝的) 제작 방식이 계속 이어져 대량생산체제로 자리 잡히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유럽지역이 마차의 전통으로 자동차의 산업화가 상대적으로 느렸다면, 신대륙은 광활한 넓이만큼이나 차량의 요구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1903년에 미국에서는 헨리 포드(Henry Ford)에 의하여 포드자동차가 설립되어 생산이 시작되었고, 이어 GM과 크라이슬러의 모태가 되었던 여러 회사들이 생겨 경쟁적으로 생산력을 늘려가게 되면서 자동차의 제작이 ‘공예’에서 ‘산업’으로 변화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에 미국에서 공예방식의 생산 체제를 가진 소규모 메이커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과 달리 신대륙은 지형적 특성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사고방식에서도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에서의 자동차가 주로 귀족층을 위한 사치품의 개념이었다면, 신대륙에서는 생활의 도구에 더 가깝게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 포드의 T형 모델이 1908년에 개발되고 그것이 대량 생산 방식에 의하여 생산이 시작된 1913년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차량 조립은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마차의 경우에서와 같이 차대(車臺;chassis)의 구조가 독립되어 있고, 여기에 엔진을 비롯한 구동장치 등이 장착되는 구조에서 변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시기에는 미국과 유럽에는 차체와 차대의 제작자가 별개로 존재하여, 차대 메이커에서는 프레임(frame)에 엔진과 구동장치만을 만들어주고, 구매자가 이것을 구입하여 별도의 코치빌더(coach-builder)에게 차체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 코치 빌더들은 전통적으로 마차를 만들던 메이커들이었다. 포드 이외의 메이커로는 듀센버그(Duesenburg), 어번(Auburn)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주로 차체 제작자들이었다.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은 1920년대 후반의 차량에서부터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는데, T형 이후에 1928년부터 등장한 A형이 그 예이다. A형은 포드의 두 번째 모델이지만, 그 구조나 형태의 개념에 있어서 T형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20년대까지도 유럽에서는 대량생산방식이 체계적으로 틀이 잡힌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차량기술의 진보는 상당부분에서 이루어졌다. 벤츠(Benz)와 다이믈러(Daimler), 부가티(Bugatti) 등에 의하여 차체의 제작이 수공업적인 판금방식에서, 금형을 사용한 프레스 가공방식이 도입되자 직선형 위주의 차체에 점차로 곡선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의 부가티는 이 시기에 새로운 기술이 많이 응용되어 제작되었는데, 프레스 가공 기술 뿐 아니라, 최초로 알루미늄 제 주조 휠(wheel)을 채용하는 등의 구조적 발전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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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뷰익 Y-Job, 1938년


1930년대는 미국에서의 자동차 산업은 포드뿐 아니라 모든 메이커들이 공통적으로 완전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자리잡게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양 대륙에서의 전반적인 기술의 발전도 여러 부분에서 이루어져,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기 시작한 항공기 기술과 함께 자동차 제작 기술도 발달하게 되었다. 생산 방식에서의 금형 기술의 도입뿐만 아니라 항공기 엔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차량의 엔진도 대형화가 이루어져 V형 8 기통, V형 10 기통, V형 12 기통과 같은 대형 엔진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개발되었다.

한편 금형 가공에 의한 대량생산 방식은 금형의 노후에 의한 재가공(retooling)의 필요에 따라 금형의 구조와 형태의 보완과 변경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주기적인 차체 형태의 변경과 자동차의 1년 단위의 스타일 변화(model year) 개념이 정착되었으며, 차체에서 스타일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 때에 최초의 컨셉트 카로써 뷰익의 Y-Job이 등장한다.

세계 제2차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개발이 완료된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은 히틀러의 지시에 의하여 독일 국민들에게 차량을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2차 대전과 함께 비틀의 생산은 유보되었다. 비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시대의 차량들과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차체의 구조와 크기, 엔진 탑재 방식 등에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공업 생산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생산 시설들이 전쟁으로 파괴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인하여 유럽의 모든 산업은 1939년을 기준으로 한동안 발전을 멈추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 대륙이 2차대전의 전장이 되어 있는 동안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지속적인 생산 활동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쟁특수(戰爭特需)로 전투용 기동차량인 지프(Jeep)를 비롯한 각종 차량과 군수품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차량 스타일은 다소 상자형의 이미지를 가진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이것은 군수품 생산에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과 아울러 전쟁의 영향으로 튼튼한 이미지를 선호하게 된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본토는 전쟁의 영향을 직접 받지는 않았으나, 민간인을 위한 정상적인 차량의 생산 및 판매가 군수품의 생산을 위하여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1940년대 중반부터는 거의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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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49년형 캐딜락


2차대전의 기간을 포함한 194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민간용 차량에서 보이는 뚜렷한 특징은 ‘통합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각각의 차체 부분들이 독립된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서 차체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각각의 요소들을 단순화하고 형태적으로 조합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미 언급한 ‘상자형’ 디자인의 추구에 의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분리형 펜더(fender)는 보다 단순한 형태로 정리되어 전체적인 볼륨은 오히려 감소하였으며, 차체의 측면도 상자개념의 간결한 이미지로 정리되었다.

1940년대 후반의 미국 경제는 군수품의 생산과 공급을 통하여 얻은 수익과 기술의 발달로 차량 엔진의 대형화와 고성능화가 계속되었다. 엔진의 대형화에 따라 후드가 직선적이며 무거운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 차량의 차체 스타일의 특징은 조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차체의 중량감과 부피감에 비중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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