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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대량생산방식과 자동차 디자인

페이지 정보

글 : 구상(koosang@hongik.ac.kr)
승인 2015-04-27 17:37:34

본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조립되는 차량이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컨베이어 시스템(conveyer system)의 도입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작업자가 이동하지 않고, 작업 대상이 이동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대량생산의 열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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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포드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Henry Ford)가 대량생산 방식으로 T형 모델의 생산을 시작한 것은 1908년이었고, 컨베이어 시스템이 사용된 것은 1913년부터 이었으므로, 대량생산 개념의 근본이 컨베이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포드 모델 T 이전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생산된 차량은 1899년에 개빌된 캐딜락의 커브드 대시(Curved Dash) 였지만, 이 차는 여러 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지, 체계화 된 방식에 의해 대량생산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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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차량의 구조와 형태를 작업하기 용이하며 공정을 줄일 수 있는 구조로 바꾸었다. 그 한 예가 엔진의 실린더 블록(cylinder block)을 그 당시 다른 메이커가 네 개의 부품을 조립하던 것을 하나의 단일 부품으로 만들었다. 이밖에 그는 전 공정에서 동일한 측정기준을 사용하도록 하여 부품간의 규격을 통일하고 조립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작업자가 조립하기 위한 부품의 운반 때문에 발생하는 시간 손실을 줄이기 위하여 작업자가 일하는 곳으로 부품이 투입되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작업자는 조립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되어 조립 능률이 높아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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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또한 각 작업 공정을 단순화하여 각각의 작업자는 한가지의 단순한 작업만을 하고 차량이 각 작업자를 이동하는 개념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공예 생산방식에서는 숙련된 작업자가 요구되던 데에 비하여 포드의 생산 방식에서는 비 숙련자는 물론, 작업자가 바뀌더라도 생산에 차질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해졌다. 1915년에 포드가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그 생산량이 최고에 다다랐을 때의 작업자수는 7,000 명 이상이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디트로이트(Detroit)시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더러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상당수는 외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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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내용뿐 아니라 공정 당 작업시간도 단축되어 포드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작업자 1인당 할당시간(task cycle)은 이미 1913년에 2.3분(140초)이었다. 이것은 공예 생산방식의 1인당 작업 할당시간이 514분(약 8시간 반)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포드가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두고 대량생산 방식을 이룰 수 있었던 이면에는 포드의 상품 포트폴리오(product portfolio)가 T형 모델 단 한가지였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T형 모델은 차체색(body color)도 검정색 한가지뿐이어서,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가 같은 차량을 만들었다. 포드가 차체 색을 검정색으로 통일한 것은 각기 다른 납품업체에서 색깔을 칠한 각 부품들이 조금씩 색깔의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색깔에 비해 건조가 빠른 특성 때문에 생산시간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디자인의 다양화는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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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동차산업의 대량생산체제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은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P. Sloan Jr.) 이다. 그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출신의 전기 엔지니어로써 베어링 제조회사를 경영하던 중 GM의 경영자 윌리엄 크라포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 1861~1947)의 제의에 의하여 GM에 합류하여 오늘날의 GM 브랜드체제의 근간을 마련했으며, 차종간 부품 공용화(共用化)와 관리혁신으로 대량생산 체제의 조직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포드가 그의 공장을 대량생산방식으로써 기틀을 잡았으나, 디자인이나 제품 다양화를 이루지 못했던 반면, 슬로언은 그 더욱 체계화하여 디자인과 상품의 다양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포드도 이후 보다 체계화된 대량생산방식의 개념으로 개발된 모델 A형에서는 옵션과 컬러를 추가하는 등 디자인 다양화를 위한 변화를 보인다.


이후로 미국의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3사는 모두 대량생산체제의 틀에서 운영되어 나갔고, 1955년에 이르러서는 생산량과 차량의 종류와 색상 등 디자인 다양화가 이루어진다. 1955년에는 처음으로 북미 내수시장 규모가 700만대에 이르렀고, 빅(big)3가 미국 자동차 내수시장의 95%를 점유했으며, 그 중 80%는 이들 3사의 6개 차종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대량생산방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의 자동차와 산업을 크게 바꾸어 놓은 생산방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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