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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디자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모두 다 맞춤형 자동차였다
수공업과 주문생산

페이지 정보

글 : 구상(koosang@kookmin.ac.kr)
승인 2018-11-12 10:39:49

본문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승용차들, 1,000cc의 경승용차에서부터 5,000cc이상의 대형 고급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량생산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량생산방식의 장점은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빠른 시간에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싼 값에 공급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자동차는 처음부터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요즘의 차들을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지 않고 옛날과 같은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만든다면, 차량 가격은 대략 지금의 열 배,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비싸질 지도 모른다.


대량생산방식 덕분에 생산단가가 낮아져 자동차가 오늘날 이렇게 대중적인 제품이 된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어 등장한 19세기 말 1886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20세기가 된 뒤에도 상당기간 동안은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사실 ‘수공업’이라면 어쩐지 세련되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들고, 구시대적인 인상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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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공업은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쉽게 비유하면 마치 완전한 맞춤양복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양복들이 소위 ‘기성복’이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맞춤양복이 기성복보다 훨씬 보편적이었다. 필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 디자이너로써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988년 겨울, 사회 초년생으로써의 첫 양복을 자금은 사라지고 없는 서울 명동의 어느 양복점에서 맞추어 입었었다.


나만을 위한, 내 몸에 꼭 맞는 옷, 디자인은 물론이고 옷감의 색깔과 무늬, 그리고 단추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으로 골라서 다는 세상에서 단 한 벌 밖에 존재하지 않는 옷, 그게 바로 맞춤양복인 것이다. 물론 요즘에도 맞춤양복이 있지만, 값이 무척 비싸다. 그리고 기성복 중에도 옷을 만드는 과정의 절반쯤은 맞춤으로 만드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매우 고급제품이다. 바로 옷을 입을 사람의 치수에 딱 들어맞게 만들어 주는 것, 이런 점이 바로 수공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물건을 공장에서 기계로 척척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솜씨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 그래서 만든 이의 숨결과 정성이 들어가 있는 정교한 제품이 바로 수공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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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에 대한 설명을 하다 보니 양복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아무튼 초기의 자동차들은 이와 같은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의 보편적인 이동수단이었던 마차들 역시 전문적으로 마차를 만드는 공방(工房)에서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이와 같이 마차를 만드는 공방을 ‘코치 빌더(coach builder)’ 또는 이탈리아에서는 ‘카로체리아(Carrozzeria)’ 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주문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크기와 형태, 구조, 재료, 색깔, 실내장식 등 제각각 다른 형태의 마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오래 동안, 가업(家業)으로 대를 이어 마차를 만들어왔던 장인(匠人)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코치 빌더들이 만들던 것은 한대의 완성된 ‘마차(馬車)’가 아니라, 동력을 제공해주는 동물(馬)을 제외한 마부나 승객이 앉기 위한 객실(客室, cabin)이었다. 그러므로 코치 빌더는 엄밀하게 보면 마차 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차 구성요소의 일부인 ‘객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코치 빌더들이 가진 기술은 오늘날의 자동차 구조의 기준으로 본다면 주행과 관련된 부품인 차대(車臺, chassis)보다는 사람이 타는 공간을 이루는 차체(車體, body) 쪽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역할은 그들이 만든 ‘차체’를 움직여주는 동력이 말(馬)에서 가솔린 엔진으로 변화된 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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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부분의 코치 빌더들의 공예생산방식은 도제제도(徒弟制度; apprenticeship)로 운용되고 있었는데, 도제(徒弟; apprentice)는 숙련된 마이스터에게 기술을 배우는 문하생으로, 그 공방의 기술적 특성을 이어가는 방법이기도 했으므로, 이러한 체제를 통해 각 코치 빌더 별로 그들의 제품과 기술의 특징, 전통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공방마다의 독특한 기술은 완성된 마차나 차량의 개성적인 구조와 형태를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마차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자동차산업과는 달리,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사실상 180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개척된 ‘신대륙’이었으므로, 1900년대에 자동차의 산업화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유럽과 같은 긴 전통은 없었다. 게다가 철도가 교통체계의 중심이었던 유럽과 달리, 드넓은 북미대륙은 철도부설공사보다도 먼저 개별 이동수단에 대한 수요가 컸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과 생활방식의 차이가 있었던 까닭에 대량생산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대량생산으로 차량 가격이 낮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되고 자동차 제조업은 가장 유망한 사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마차 제작자들이 자동차로 ‘업종전환’을 하면서 많은 군소 자동차메이커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또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들 군소 메이커들은 그 당시로써는 ‘첨단기술’이었던 엔진이나 구동장치를 스스로 설계하고 제작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차대 전문제작업자가 만든 엔진과 변속기, 바퀴가 붙어있는 ‘뼈대’를 가져다가 주문자, 혹은 자신들이 디자인한 차체를 만들어 얹는 방식으로 차량을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성능이나 디자인, 설계개념에서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진 차들과는 다른 성격의, 공예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대량생산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차들은 보편성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바꾸어 이야기하면 대량판매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량생산에 의하지 않는 차들은 제작자, 또는 주문자의 개성을 가진 차가 될 가능성을 크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세기 초에 미국은 모든 산업분야가 대량생산방식으로 탈바꿈되면서 1920년대 이후부터는 시장의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생산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주가폭락과 연쇄부도로 이어져, 1929년부터 경제 공황(恐慌)이 시작된다. 그러나 코치 빌더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급승용차들은 계속 생산 ․ 판매되었다. 경제공황 속에서도 듀센버그와 어번과 같은 코치 빌더들은 공예적인 생산방식을 고수하며 고급스러운 마무리로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들 듀센버그(Duesenberg) 등은 과거에 미국을 대표하는 소량생산 메이커였다. 이들은 각기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 에렛 로반 코드(Errett Lobban Cord, 1894~1974)에 의해 합병되고 경영되었다. 한편으로 194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모든 산업이 대량생산으로 바뀌면서 유럽의 롤스로이스 등은 수공업적인 방법을 고수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의 소량생산 자동차 메이커는 리무진 등의 개조 메이커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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