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K9 페이스 리프트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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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구상(koosang@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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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28 09:3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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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4월에 등장했던 2세대 K9 세단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등장했다. 2세대 완전 신형의 등장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이다. 지난 2012년에 나왔던 1세대 모델 이후 6년 2개월만에 등장했던 2세대의 부분 변경 차량이다. 1세대 K9은 기아 브랜드의 플래그 쉽 모델이었고, 2세대가 등장한 지금도 그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도 초대형 세단이라는 존재감을 가진 플래그 쉽 이다. 그런 존재감의 한편으로는 제네시스의 G90과는 또 다르게 차별화 시켜야만 하는 숙제를 가진 차량이기도 하다.
페이스 리프트 된 K9은 전면의 이미지가 그야말로 개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좌우로 길게 넓어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가히 충격적인 인상을 준다. 너무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바뀌기 전의 2세대 모델의 앞 모습이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전 모델을 잊어버리게 하는 효과를 가졌다면 성공작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좌우로 넓은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은 입체적인 메시 형태를 가진 그릴로 채워져 있고, 양 옆으로 슬림하고 작아진 헤드램프로 인해 장년의 인상을 준다. 실제로 헤드램프의 크기가 커지면 이른바 왕눈이같은 효과를 내면서 귀엽거나 어린 연령의 인상을 주는데, 이런 원리는 그림을 그릴 때 인물의 표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다. 그래서 유아나 아동을 그릴 때 눈을 크게 그리는 것이다.
뒷모습도 트렁크 리드를 바꾸면서 번호판을 범퍼로 내리고 슬림한 가니시를 수평으로 배치해서 폭을 강조하는 인상을 준다. 이렇게 바뀌면서 뭐니뭐니해도 눈에 들어오는 건 새로 바뀐 KIA 로고이다. 전면은 그릴이 워낙 강렬해서 로고가 그다지 어필 되지 않는 듯 하지만, 뒷모습은 심플한 트렁크 리드 중앙의 KIA 로고가 선명하게 강조된다.
K9의 앞 모습 변화를 비교해보도록 하자. 1세대 K9은 7년 전인 2014년 1월경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현대자동차와 후륜 구동 플랫폼을 공유해서 개발된 대형 고급 세단으로 등장했다. 앞 모습은 기아 브랜드 특유의 호랑이 코 그릴을 쓰면서 치켜 뜬 눈매를 강조한 주간주행등으로 상당히 젊은 인상을 강조하는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태가 마치 BMW의 키드니 그릴의 가운데를 잘라낸 것 같은 인상이 들기도 했었다. 이후 한 번의 페이스 리프트를 거쳤지만, 그릴의 중앙부 굴곡을 매끈하게 다듬는 정도였다.
이후 2018년 4월에 2세대 모델이 나온다. 고급승용차로서는 이례적인 4년만의 모델 완전 변경 차량을 내놓은 것이다. 2세대 K9은 아래 위로 배치된 헤드램프, 이른바 듀플렉스 램프와 주간주행등으로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좌우로 폭이 넓은 그릴로 매우 ‘쎈’ 인상을 풍겼다. 고급승용차로서의 카리스마 같은 것도 보이는 듯 했다.
게다가 실내의 디자인과 구성이 제네시스 G90과 동급으로 꾸며지면서 가격은 약간 낮아서 ‘가성비’ 면에서 매우 유리했다. 그런 이유에서 1세대 모델보다는 판매량도 늘어나고,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높아졌던 것이다.
새로 등장한 K9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은 기존의 대형 그릴에서 좌우로 폭을 더 늘린, 그야말로 초광폭의 그릴을 보여준다. 여기에 헤드램프는 더 슬림하고 작아져, 그릴의 존재감을 더욱 강조해준다.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므로 기본적인 차체 비례는 달라지지 않아서 27%의 상대적으로 긴 비례를 유지하고 있다. 측면의 이미지는 1세대 모델에 비해 전반적으로 육중한 인상이고, 헤드램프를 슬림 한 이미지로 바꾸면서 앞 오버 행을 더 짧아 보이도록 했다.
그렇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이 크다는 인상은 지우기 힘들다. 기존 모델, 즉 페이스 리프트 이전의 2세대 모델 역시 그릴이 넓다는 인상을 주는 디자인 이었지만, 지금은 그릴과 헤드램프 사이를 메우고 있던 차체 색 부분도 사라지고, 그릴과 헤드램프가 맞닿아 있다. 이 정도면 그릴의 크기를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처음 K9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앞 모습을 보고는 의문이 들었다. 작년 11월에 나온 쌍용의 G4 렉스턴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앞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하고 렉스턴을 다시 봐야 했다. 가끔은 내 기억이 착각을 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착각은 아니었다.
물론 두 차, K9과 G4 렉스턴은 다르다. 차종도 전혀 다르고 세부 형상도 많이 다르긴 하다. 그렇지만 두 차의 앞 모습은 일견 비슷해 보인다. K9의 그릴이 넓고, 메쉬도 더 촘촘하지만, 이상하게 두 차는 같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진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
차량 디자인을 평가할 때는 당연히 세부적인 디자인을 보면서 평가하지만, 10미터쯤 떨어져서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여러 각도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그 때는 세부보다는 전체 이미지를 보는 건 당연하다. 기존의 차들과 명확히 구분이 되는지, 그리고 우연히 라도 비슷한 차량이 있는 건 아닌지 등을 봐야 한다.
전혀 다른 세그먼트의 다른 차종이지만, G4 렉스턴과 앞 모습이 비슷해진 건 일종의 ‘사고’이다. 두 차량 모두 페이스 리프트이고, 출시 시점이나 개발 기간을 보면 7개월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므로, 혹시 K9이 우연히 G4 렉스턴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더라도 이걸 손 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K9은 쌍용 G4 렉스턴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두 차가 비슷해졌다.
K9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을 본 쌍용의 디자이너들이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을 지 모른다. 기아가 우리 걸 베낀 건가? 하면서… 그런데, 이런 식의 우연의 일치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들은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우연히 비슷해진 디자인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해도, 저렇게 크고 넓은 K9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여전히 궁금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