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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크레도스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으며 기아자동차 북미디자인연구소 선임디자이너를 지내기도 한 자동차디자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입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구상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는 독자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자동차 디자인과 생산방식의 변화

페이지 정보

글 : 구상(koosang@hongik.ac.kr) ㅣ 사진 : 구상(koosang@hongik.ac.kr)  
승인 2021-08-22 14:33:41

본문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컨베이어 시스템(conveyer system)의 도입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 물론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조립되는 차량이 이동할 수 있게 해주어 작업자 대신 작업 대상이 이동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량이 더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게 대량생산방식의 핵심 개념은 아니었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Henry Ford)가 T형 모델을 개발한 것이 1908년이고 대량생산 방식으로 차량 생산을 시작한 것이 1910년이었지만,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좀 더 뒤인 1913년부터 이었으므로,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의 핵심이 컨베이어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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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모델 T 이전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생산된 차량은 1899년에 나온 올즈모빌의 커브드 대시(Curved Dash) 였지만, 이 차는 여러 대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지, 체계화 된 방식에 의한 대량생산방식으로 제조된 것은 아니었다.

포드는 수공예로 만들어지던 것을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차량의 구조와 형태를 바꾸어서 작업하기 쉽고 공정을 줄일 수 있도록 바꾸었다. 그 한 예가 엔진의 실린더 블록(cylinder block)을 그 당시 다른 메이커가 네 개의 부품을 조립하던 것을 하나의 단일 부품 구조로 바꾸었다고 하며, 이밖에 그는 전 공정에서 동일한 측정 기준을 사용하도록 해서 부품의 규격을 통일하고 조립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작업자가 조립하기 위한 부품을 직접 운반할 때 발생하는 시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작업자가 있는 곳으로 부품이 투입되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해 작업자는 조립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조립되는 차량도 각 작업자의 위치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컨베이어였던 것이다. 포드는 또한 각 작업 공정을 단순화하여 각각의 작업자는 한가지의 단순한 작업만을 하고 이에 따라 공예 생산방식에서는 차량을 제작하기 위해 고도로 숙련된 작업자가 요구되던 데에 비하여, 포드의 생산방식에서는 비 숙련자는 물론이고, 작업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더라도 생산에 차질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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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공장의 생산량이 최고에 다다랐을 때의 작업자 수는 7,000 명 이상이었다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디트로이트(Detroit)시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수는 외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작업 내용뿐 아니라 공정 당 작업 시간(task cycle)도 단축되어 포드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작업자 1인당 작업 시간이 1913년에 2분 18초였다. 이것은 공예방식의 1인당 작업 시간이 약 8시간 반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포드가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두고 대량생산 방식을 이룰 수 있었던 이면에는 포드의 제품 포트폴리오(product portfolio)가 T형 모델 단 한가지였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T형 모델은 차체색(body color)도 검정색 한 가지뿐이고 옵션도 없어서, 모두가 같은 차량을 만들었다. 포드가 차체 색을 검정색으로 통일한 것은 각기 다른 납품업체에서 색깔을 칠한 각 부품들이 조금씩 색깔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 건 물론이고, 검정색이 다른 색깔에 비해 복사열이 높아 건조가 빠르기 때문에 생산 시간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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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동차산업의 대량생산체제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은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P. Sloan Jr.) 이다. 그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출신의 전기 엔지니어로써 베어링 제조회사를 경영하던 중 GM의 경영자 윌리엄 크라포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 1861~1947)의 제의에 의하여 GM에 합류하여 GM의 다양한 브랜드 체제의 근간을 마련했으며, 차종 간 부품 공용화와 관리혁신으로 대량생산 체제의 조직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포드가 그의 공장을 대량생산방식으로써 기틀을 잡았으나, 디자인이나 제품 다양화를 이루지 못했던 반면, 슬로언은 그것을 더욱 체계화하여 디자인과 제품의 다양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포드도 이후에 보다 체계화된 대량생산방식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개발한 모델 A형에서는 옵션과 컬러를 다양화 시켜서 추가하는 등 디자인 변화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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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는 모두 대량생산체제의 틀에서 운영되어 나갔고, 1955년에는 처음으로 북미 내수시장 규모가 700만대에 이르렀고,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미국 빅(big)3가 미국 자동차 내수시장의 95%를 점유했으며, 그 중 80%는 이들 3사의 6개 차종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대량생산방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거의 모든 나라의 자동차와 산업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 놓은 생산방식이었던 것이다.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은 유럽에도 변화를 가져왔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의 고급 메이커는 수공예방식을 유지하면서 대량생산방식의 개념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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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의 패전국에 대한 기술원조 제도를 이용해 포드에서 대량생산방식을 배워 변형시킨 저들의 ‘간판방식’을 고안해 감각적인 특징을 가진 일본차를 개발해 1980년대부터는 미국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미국은 전승국의 위치에서 실시한 패전국에 대한 기술원조 제도를 통해 자신들이 개발한 대량생산방식으로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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