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추상성

어떤 대상이 가지고 있는 형상(形象)을 통해 그것의 관찰자가 의식과 감성의 작용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순수미술’ 분야 작품들의 주된 기능이다. 그렇다면 이들 순수미술품들의 이러한 비물리적 기능(非物理的 機能)은 자동차가 가진 물리적 기능과는 다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러한 순수조형물의 비물리적 기능은 조형의 원리가 내재된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에 의하여 다시 입증되고 있다.

글/구상(한밭대 교수)

그런데 반대로 기능적으로 잘 달리거나 작동되더라도 그 대상의 형태에 조형적 특성에 의한 감성(이를 테면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그다지 매력적인 제품이 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제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회화나 조각품과 같은 감상용(感想用) 제품(?)에서부터 자동차와 같은 승차용(乘車用) 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조형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형작업으로써의 디자인의 개념은 단지 차갑고 무거운 기계를 예쁘게 ‘장식’하는 개념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튼튼하며 합리적인 제작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제품을 창조하는 종합적 과정이 되는 것이다. 다만 디자인은 회화나 조각과는 달리 공업적인 방법을 통해서 대량생산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동차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 중의 하나이고, 목적하는 용도에 부합하는 기능을 가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 자동차는 모두 움직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와 같이 스스로 움직여 기능을 수행하는 제품의 형태가 가진 추상성(抽象性)은 그렇지 않은 제품, 이를테면 오디오나 TV등과 같이 고정된 위치에서 사용되는 제품들이 가진 기능의 추상성과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움직임에 다시 속도(速度)가 더해진다면, 이제는 그 효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특성이 필요해진다. ‘움직인다는 것’과 ‘속도’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이동수단으로써 자동차는 요구되는 실내공간의 확보와 동시에 고속주행에 의한 저항극복의 과제를 안게 되고, 이들 두 요소를 절충(折衷)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유선형(流線型)의 채용이다. 그러므로 유선형에 의한 조형은 자동차에 있어서는 스타일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공기에 의한 물리적 저항을 완화시키는 기능적 형태임과 동시에, 속도를 가진 존재임을 이야기해주는 은유적(隱喩的) 형태언어(形態言語)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재규어XF는 이러한 역동성을 추상성으로 가지면서 새로운 기능의 기계로써의 이동수단의 특징을 설명하는 추상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재규어XF의 어느 부분에도 동물로써의 재규어를 닮은 부분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동차 재규어XF에서 맹수로써의 재규어의 특징을 추상적으로 느끼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는 오늘날까지 물리적 기능을 전제로 하는 제품에서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기능이 같다면 형태도 동일한가?’라는 역설에서는 오늘날의 자동차 스타일의 다양성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동차(제품)의 형태결정요인은 물리적 기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품이 주는 만족감은 물리적 기능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기능 이외의 조형요소에 의한 만족감까지 포함된다면, 제품의 형태는 사용자가 가지는 즐거움에 따라 변화된다.(Form follows fun) 기본적으로 같은 기능을 가진 자동차가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제품의 기능이 단지 물리적 기능만을 가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