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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어느 민족이 가장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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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3-28 19: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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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의 시초는 1906년 프랑스 오토모빌 클럽이 주최한 프랑스 그랑프리이다. 이후 그랑프리의 열기는 이태리, 벨기에, 모나코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초기에는 나라마다 독자적인 모터스포츠 규정을 갖추고 경기를 개최했다. 이 때문에 여러 국가의 팀과 드라이버가 한데 모여 경기를 치르거나 통합 시리즈를 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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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모터스포츠계는 근대적인 세계선수권을 창설했다. 1947년 여러 나라의 모터스포츠 관련단체가 모여 국제자동차연맹(FIA)을 만들었고, FIA는 그해 F1 규정을 내놓았다. 역사적인 F1 개막전은 1950년 5월 13일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열렸다. 첫 해에는 7개국이 참가해 각 나라들을 돌며 레이스를 치렀다. 현재는 19개국을 순회하며 모두 19전의 F1 레이스가 숨가쁘게 치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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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2014년까지 F1을 유치해서 1회 이상 레이스를 가진 국가는 모두 30개국이다. 그 중 이태리가 가장 많은 91회의 그랑프리를 열었다. 1950년부터 매년 몬자에서 열린 이태리 그랑프리 외에 산마리노(1981∼2006년)와 페스카라 그랑프리(1957년) 등도 함께 펼쳐졌다. 독일이 74회로 그 뒤를 이었다. 1951년부터 열린 독일 그랑프리 외에 독일에서는 1984, 95, 96, 99, 2000∼2007년까지 유럽 그랑프리와 독일 그랑프리의 서로 다른 명칭으로 2번씩 열렸다. 1997∼98년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는 룩셈부르크 그랑프리가 개최되어 눈길을 끌었다. 영국은 그동안 67차례 F1을 치렀다. 1983, 85, 93년 영국에서는 유럽 그랑프리도 열렸다.

미국의 경우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 1976∼80, 83년에는 동부와 서부 그랑프리를 각각 1회씩 한해 두 번 개최했다. 81, 84년에는 동부와 라스베가스, 서부와 라스베가스 그랑프리를 개최했고 82년 한 해 동안 동부, 서부, 라스베가스 등 모두 3차례 그랑프리를 개최한 때도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1950년부터 60년까지 11차례 인디500과 통합전을 치렀다. 한편 일본에서는 1976년부터 올해까지 31차례 F1을 개최했고, 그 가운데 1994, 95년의 태평양 그랑프리가 들어 있다. 아프리카지역에서는 남아공이 가장 많은 23회의 그랑프리를 열었고 한국에서도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남 영암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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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명예에 앞장서는 주인공은 드라이버들이다. 이태리 기업 페라리가 우승해도 시상대에서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의 모국 스페인국기가 오른다.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마찬가지다. F1 드라이버를 국가별로 갈라놓고 그 성적을 따져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드러난다. 절대수에 있어서는 유럽 자동차 선진국의 드라이버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에서 나온 드라이버들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그들은 태어난 나라를 떠나 멀리 모터스포츠 본고장 유럽으로 가서 정상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1950년부터 올해까지 F1 그랑프리 결승에 단 한 번이라도 나간 드라이버는 836명이 넘는다. 2011년 영국 그랑프리에 출전한 호주 출신 D. 리치아르도가 800번째 드라이버로 기록된 바 있다. 국적을 기준으로 하면 38개국 정도가 참가한 셈이다. 그 중 586명이 유럽인이다. 캐나다, 미국 등 북미 출신 드라이버는 170여 명이 F1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미국인 157명인데 이는 1950년대 열린 인디500 출전자의 상당수가 미국 출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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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오, 피티팔디, 세나 등 정열적인 기질의 남미 드라이버 66명은 숫자가 적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독보적인 전과를 거두고 돌아갔다. 30명의 F1 드라이버를 배출한 브라질의 대표주자는 E. 피티팔디.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고 뒷날 스스로 후배를 잘 돌보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세계 챔피언의 왕좌에 올라 모범을 보였다. 후배들은 그를 본받아 세계적인 무대로 뛰어들었다. 영원한 F1의 연인 아일톤 세나가 대표적이며 현역 드라이버로는 펠리페 마사가 브라질 국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23명의 F1 드라이버가 나왔다. 호주는 17명이다. 한때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는 유망한 드라이버를 유럽에 파견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를 바탕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드라이버도 나왔다. 국가의 명예를 걸고 F1 챔피언을 길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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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은 아직까지 F1 무대의 희귀족속이다. 모두 24명의 동양인 드라이버가 나왔을 뿐이다. 아시아 최초의 F1 드라이버는 1950년 영국 그랑프리에 출전한 태국의 비라 황태자. 나머지는 모두 일본인이다. 그러나 1976년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벌어진 그랑프리 이후 챔피언은 접어두고 우승의 문턱에 오른 드라이버는 없다.

드라이버들의 가장 큰 영광은 우승하는 것이다. 국가별 우승 드라이버(19명)와 우승(227승)은 영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독일이 7명, 146승으로 그 뒤를 따르고, 브라질은 6명, 101승을 올렸다. 알랭 프로스트(51승)의 프랑스는 드라이버 12명이 79승을 기록하며 상위권에 올랐다. 키미 라이코넨의 고국 핀란드도 4명의 드라이버가 46승을 거두었고 이태리가 43승으로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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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드라이버 부문 세계 타이틀은 영국이 14차례 거둬 모터스포츠 강국임을 분명히 했다. 뒤이어 독일의 11회, 브라질 8회와 아르헨티나 5회가 2, 3위 기록이다. 프랑스, 호주, 오스트리아, 핀란드도 4차례씩 월드 챔피언을 배출하고 모터스포츠 강국의 대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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