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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순간의 짜릿함에 몸을 맡긴다 ‘드래그 레이스’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7-29 02:50:47

본문

2차세계대전 직후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미국 젊은이들은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느끼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화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자동차에도 불어 취향에 맞게 차를 개조하는 유행이 태동했고, 돈 없는 젊은이들은 오래된 차를 손보거나 고출력 엔진을 올려 독특한 차를 만들었다. 이런 차를 가리켜 핫 로드(hot-rod)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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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로드를 몰고 나온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 혹은 값비싼 양산차에 시비를 걸며 도로 위에서 경주를 벌였다. 이 때문에 ‘도로의 무법자’로 찍혀 경찰의 집중 단속대상으로 떠올랐다. 거리에서 위험한 질주를 트랙으로 옮기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드래그 레이스다. ‘도로’라는 뜻의 속어인 드래그(drag)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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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레이스는 두 대의 차가 4분의 1마일(약 400m)의 직선 트랙을 달려 승패를 가리는 간단한 방식이다. 따라서 엔진의 출력과 트랙션을 찰나의 순간에 끌어내는 탁월한 감각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잘 발전시켜 즐기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들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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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레이스는 2차대전 중 미국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많은 핫로더들이 모여 속도경쟁을 벌인 것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드래그 레이스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월리 파크가 전국핫로드연합(NHRA)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1947년 보네빌의 ‘솔트 플레이트’ 호수 바닥에서 NHRA의 전신인 SCTA(Southem California Timing Association) 주최로 첫 번째 스피드 워크가 열렸다. 이 행사가 열리게 된 데는 불법적인 속도경쟁을 합법적인 레이스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파크의 공로가 컸다. 점점 높아지는 인기에 힘입어 기록측정을 위한 컴퓨터 장비가 도입되었고, 1950년 산티아나 드래그 레이스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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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RA 주최의 첫 번째 공식 레이스가 열린 것은 1953년 4월, 캘리포니아 포노마에 자리한 로스앤젤레스 컨트리 페어그라운드에서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트랙은 시즌 개막전과 메인 경기, 인터내셔널 시리즈 폐막경기가 되고 있다. NHRA에는 10만여 명의 회원과 4만여 명의 선수가 등록되어 있으며 1년에 4,000번에 가까운 경기를 여는 규모로 성장했다.

1970년대 초에 출범한 국제핫로드연합(IHRA)도 드래그 레이스의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 IHRA는 톱 퓨얼, 니트로 할리, 프로 모디파이 등의 클래스가 열리고, 일반인의 참여도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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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군에 의해 일본에도 드래그 레이스가 소개되었다. 스프린트 경주차르 웃도는 순간 스피드와 제동을 위해 낙하산을 펼치는 화려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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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페드라와 일본 드래그 레이스 드라이버연맹이 대회를 주관하고, 매년 전국 규모의 프로전을 개최했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프로전은 활성화되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경기는 상당히 활발했다. 아마추어 드래그 레이스는 대부분 유명 튜너들이 홍보를 위해 주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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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경기가 HKS 드래그 미팅과 암크레이드(Amkread) 드래그 배틀이었다. HKS의 경우 7개 영업소를 중심으로 2∼4회, 모두 20회의 지역전을 치렀다. 암크레이드 역시 5개 지역에서 각각 3∼4경기를 치른 다음 상위권 차들이 10월 센다이에 모여 최종 승부를 냈다. 아마추어 레이스는 상금 대신 상품을 수여하는 등 승부보다는 순수한 매니아들의 축제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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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용경기장이 없어 일반 서킷 직선로를 이용해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엔 강원도 태백 레이싱파크 서킷을 제외하고 400m를 온전히 확보할 수 없어 300∼350m 단축코스를 이용하고, 간간히 공로에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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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전용계측기가 도입되면서 드래그 레이스는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측기 조작 미숙과 진행상의 문제로 많은 트러블을 겪었고, 2002년부터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주차 완성도가 올라가고, 일반인의 관심과 참여가 늘면서 튜닝 매니아들의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레이스 도중 경주차가 사망사고가 일어나면서 침체기에 들어섰다.

드래그 레이스는 순간적인 가속으로 일반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주 쾌감을 맛볼 수 있다. 튜닝카라면 차의 성능과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데이터를 기초로 새로운 튜닝 방향을 찾아 갈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드래그 레이스는 도로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속도경쟁을 트랙으로 끌어낸 것이 시작이다. 따라서 승부보다 달리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는데 목적을 둔다면 굉장히 즐거운 취미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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