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르망에서 활약한 영국의 벤틀리는 1927년과 28년에 3.0리터와 4.4리터 모델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929년과 30년에도 우승을 거둬 르망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당시 르망은 1"/> 초기 르망에서 활약한 영국의 벤틀리는 1927년과 28년에 3.0리터와 4.4리터 모델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929년과 30년에도 우승을 거둬 르망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당시 르망은 1"/> 르망의 전사들, 그 두 번째 기록 > 김병헌의 모터스포츠 강의실 | 글로벌오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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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르망의 전사들, 그 두 번째 기록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6-07-01 06:56:41

본문

초기 르망에서 활약한 영국의 벤틀리는 1927년과 28년에 3.0리터와 4.4리터 모델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929년과 30년에도 우승을 거둬 르망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당시 르망은 1회와 3, 4회를 프랑스 차가 우승했었지만 그 후 벤틀리의 성능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의 이름난 회사들은 르망 레이스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소규모 메이커들만이 참가했다. 이 때문에 르망 레이스는 영국과 미국의 싸움터로 바뀌어 갔다.

27년 벤틀리는 스피드 식스를 선보였다. 이 차는 르망 레이스가 열리기 한 달 전에 완성한 것으로 테스트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벤틀리는 4½ 모델 4대를 함께 출전시켰다. 원래 2대에는 슈퍼차저를 달 예정이었지만 사정이 생겨 자연흡기 엔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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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차는 모두 25대로 전해까지 2연승을 올린 벤틀리를 시작으로 영국에서는 인빅타와 라곤다, 앞바퀴굴림의 앨비스와 리프란시스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듀폰과 스터츠, 크라이슬러가 경주차를 보내왔다.

이해부터 샤르트 서킷은 약간 바뀌어 랩타임이 단축되었다. 1928년 1주 최고속은 버킨이 몬 벤틀리의 8분39초였고 29년에도 역시 버킨의 벤틀리가 7분57초의 최고속 랩타임을 기록했다. 3대의 벤틀리가 그 뒤를 따랐고 스터츠가 5, 6위, 벤틀리가 7위였다. 레이스 시작 4시간이 흐른 뒤에는 벤틀 리가 1위부터 4위까지 차지했다. 스터츠가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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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오전 10시까지 바네이트와 버킨의 벤틀리는 한 대의 벤틀리를 같은 랩에 둔 채 다른 차들을 한 바퀴 이상 추월해 선두를 지켰다. 크라이슬러가 한때 4, 5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벤틀리는 1∼4위를 휩쓸며 3연승을 기록했다, 스크랩 아이언이라 불리던 벤틀리는 르망 우승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총 주행거리 2,843.8km, 평균시속 118.5km로 1928년에 비해 기록이 많이 향상되었다.

1930년에 열린 제8회 르망은 참가대수 16대로 르망 역사상 출전차가 가장 적은 레이스로 기록되었다. 이해에는 처음으로 벤츠가 7.1리터 엔진을 얹은 SS 38-250으로 르망에 도전했다. 벤츠는 역사에 남을 명드라이버 루돌프 카라치올라와 크리스틴 베르너를 드라이버로 내세우며 르망 3연승의 벤틀리에 도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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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SS는 포르쉐 박사가 다임러 근무시절에 만든 모델 K에 기본을 두었다. 1926년 벤츠와 합병한 다임러는 모델 K의 단점을 개량한 모델 S를 발표했고 루돌프 카라치올라라는 젊은 드라이버를 내세워 유럽 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S를 개량한 SS와 SSK는 28년 등장했다. 포르쉐 박사가 설계한 직렬 6기통 엔진을 배기량 7.1리터로 키워 170마력을 냈다. 이 무렵 포르쉐 박사가 벤츠를 떠남으로써 SS는 그가 벤츠에서 만든 최후의 모델이 되었다. 

벤틀리는 출전대수 중 1/3이 넘는 6대가 출전했다. 이 중 3대는 워크스로 나온 스피드 식스였고 나머지는 4.5리터 슈퍼차저 엔진을 얹은 도로시 페제트팀 소속이었다. 그밖에 스터츠 2대와 라곤다 2대, MG 1대가 나왔고 알파로메오 6C 1750과 부가티, 탈보가 르망에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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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치올라는 명성에 걸맞게 처음부터 선두를 달렸다. 그 뒤를 버킨의 벤틀리가 쫓았고 4주 때 벤츠를 추월하며 르망 4연승을 노렸다. 그러나 2주 후 타이어 파열로 벤츠가 다시 선두에 올랐다. 오후 8시가 넘어 바네이토의 벤틀리가 벤츠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결국 바네이토와 클레멘트의 벤틀리가 1, 2위를 차지하며 르망 4연승의 기록을 남겼다. 총 주행거리 2,930.7km, 평균시속 122.1km였다.

1931년에 열린 제9회 대회부터는 참가 메이커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당시 자동차업계는 불황에 허덕여 레이스 활동을 할 만큼 여유있는 메이커가 많지 않았다. 르망을 4연패했던 벤틀리도 경영악화에 시달려 워크스 활동을 중단했다. 벤츠, 스터츠 등도 같은 상황이어서 개인자격으로 1대 정도 참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그랑프리에서 이름을 날리던 부가티와 알파로메오만이 워크스팀으로 참가했을 뿐이다. 그밖에 MG, 아롤 아스타 등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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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주인공은 알파로메오였다. 1906년 설립된 알파로메오는 벤츠, 부가티 등과 함께 초기 자동차 레이스를 이끈 오랜 명문이며 페라리의 모체이기도 하다. 1920년 시실리섬에서 열린 타르가 플로리오를 시작으로 활발한 레이스 활동을 벌인 알파는 1년 전 내놓았던 6C 1750에 이어 8C 2300을 출전시켰다.

6C 1750을 기본으로 엔진을 2.3리터로 키운 8C 2300은 DOHC, 경사진 밸브, 반구형 연소실 등 당시로는 매우 앞선 메커니즘을 갖추었다. 1930년부터 39년까지 9대만이 제작된 이 모델은 르망에서 4연승하며 알파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29년 바네이토와 함께 벤틀리로 우승을 차지했던 버킨은 하우 백작의 알파를 몰고 우승을 했다. 2위는 이바노프와 스토펠이 몬 벤츠 SSK였다. 총 주행거리는 처음으로 3,000km를 넘어 3,017.7km가 되었고 평균시속은 125.7km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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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1km의 새로운 코스에서 열린 제10회 르망에서는 알파가 슈퍼차저를 얹은 새 8C 2300을 선보이며 독주를 계속했다. 당시 알파는 실버 애로가 독일 제3국의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파시스트의 재정지원을 받아 자금이 넉넉했다. 이해에는 출전대수가 26대로 늘어났고 애스틴 마틴, 알파오메오, 부가티, 탈보 등이 워크스로 참가했다. 그밖에 벤틀리와 벤츠, 스터츠, 아밀카 등이 참가했다. 

슈파차저의 위력에 힘입은 알파팀은 초반부터 맹렬한 기세로 선두에 올랐다. 1주 평균 138km의 최고기록을 내며 선두를 지켰고 저녁까지 리드를 지켜 나갔다. 그 뒤를 부가티와 애스턴 마틴, 탈보 등이 따랐다. 새벽에 선두를 달리던 코르테제의 8C 2300이 피트 인하자 솜머의 8C 2300이 선두에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출전차 26대 중 9대 만이 완주했고 총거리 2,954km를 달려 평균시속 123.1km를 기록했다. 

1933년에는 그랑프리에서 이름을 날리던 전설의 명드라이버 타치오 누보랄라가 르망에 도전했다. 누보랄리는 1932년 우승자인 솜머와 함께 슈퍼차저 엔진의 알파 8C 2300을 타고 우승을 차지했다. 알파로메오 4대 중 솜머/누보랄리의 차는 숏 휠베이스의 밀레밀리아 모델이었다. 프랑스 11대, 영국 10대, 이태리 7대, 미국 1대 등 총 29대가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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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에는 그랑프리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알파의 에이스 드라이버 시론이 출전했지만 솜머와 누보랄리가 선두를 지켰고 그 뒤를 다른 알파 8C 2300들이 뒤따라 결국 알파가 1, 2, 3위를 휩쓸었다. 누보랄리는 르망에 단 한 번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는 기록을 남겼다. 

34년 르망은 출전대수가 44대로 늘어 제법 큰 규모가 되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알파로메오는 워크스팀이 없어지고 프라이빗팀으로 출전했다. 1932, 33년 알파 8C 2300을 몰고 연승을 차지했던 솜머는 137.6km의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며 선두를 지켰고 그 뒤를 32년에 2위였던 키네티가 따랐다.    

선두를 주고받던 두 대의 알파로메오 중 솜머의 차가 사고로 화염에 휩싸였고 그 후 끝까지 선두를 지킨 키네티와 에탄셀린의 알파 8C 2300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알파는 벤틀리에 이어 르망 4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 뒤를 라일리와 MG, 싱거 등 영국의 소배기량 경주차들이 따랐다. 총 주행거리 2,886.9km, 평균시속 120.3km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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