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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무득점으로 퇴장한 드라이버 열전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7-01-31 12:26:05

본문

현재 F1 최고 득점의 드라이버는 2,247점을 기록한 흑인 출신 루이스 해밀턴이다. 3회 챔프(2008년, 2014년, 2015년)인 해밀턴은 그동안 188경기에 출전해, 레이스당 평균 11.9점을 기록한 것이다. 2, 3위는 세바스찬 베텔(2,108점)과 페르난도 알론소(1,832점)다. 각각 178경기와 273경기에 출전한 두 드라이버의 레이스당 평균 포인트는 11.7점과 6.7점이다. 지난해 F1 챔프 니코 로즈버그와 미하엘 슈마허가 1,594.5점(레이스당 평균 7.7점)과 1,566점(레이스당 평균 5.1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F1에 데뷔한 뒤 단 한 차례도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드라이버도 많다. 특히 20경기 이상 출전했는데도 무득점을 기록한 불운의 드라이버도 10여 명이나 있다. 이제부터 그들의 굴욕적인 인생 스토리를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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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바도어 - 가장 오랫동안 포인트를 얻지 못한 드라이버 1위 자리에는 미나르디와 포르티에서 활동한 이태리 출신 루카 바도어의 이름이 올라 있다. 50경기에 출전했으나 단 한 차례도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1999년 유럽 그랑프리에서는 미나르디로 출전해 득점을 눈앞에 두었으나 4위로 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기어박스가 부러지면서 리타이어 했다. 바도어는 레이스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10년 뒤인 2009년, 페라리 유니폼을 입고 F1에 복귀해 시즌 중반인 유럽과 벨기에 그랑프리에 출전했으나 각각 17위, 14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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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트 룬저 - 미국 출신인 브레트는 거액을 들고 F1 그랑프리에 등장했지만 결과는 미치지 못했다. 1975년 헤스케스에서 제임스 헌트의 팀동료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즌 3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태리 그랑프리 10위가 최고 성적이다. 이듬해에는 팀 로터스와 1년을, 그 다음에는 맥라렌 M23, M26 커스터머로 출전한 뒤 1978년 말에 F1을 떠났다. 34경기 동안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한 그의 최고 성적은 78년 벨기에 그랑프리 7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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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노스케 타카키 - 일본 출신의 토라노스케 토라 타카키는 동포인 우코 카타야마의 발자취를 따라 F1에 입문했다. 하지만 성과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F1에서 두 시즌을 지낸 타카키는 데뷔 첫해인 1998년에는 티렐, 이듬해에는 애로우즈 소속이었다. 그가 거둔 최고 성적은 1999년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의 7위.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3년 시즌까지는 7, 8위에 책정된 포인트가 없었다. 32경기 무득점 레이스를 펼친 타카키는 1999년 일본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F1 무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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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스피드 - 레드불의 후원을 받고 F1에 데뷔해 화제를 모은 미국 출신의 스콧 스피드는 드라이버에게 알맞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을지는 몰랐지만, 토로 로소에서 활동한 28경기 동안 포인트는 전혀 올리지 못했다. 2013년까지 많은 점수를 나눠주는 나스카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지난해까지는 글로벌 랠리크로스 챔피언십 시리즈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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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퀴 베르놀디 - 브라질 출신의 베르놀디는 영국 F3와 F3000 챔피언십 시리즈를 거친 뒤 2001년 애로우즈 팀을 통해 F1에 입성했다. 그 뒤 포인트를 기록할 절호의 기회는 레이스 절반 동안 데이빗 쿨사드의 맥라렌을 가로막았던 2001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레이스 결과는 선두에 2랩 뒤진 9위. 그해 독일 그랑프리에서는 자신의 최고 성적인 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베르놀디는 이듬해인 2002년까지 애로우즈에서 활동했으나 28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치며 F1 무대를 떠났다.

 

마이크 뷰틀러 - 클라크 모던 거스리 레이싱 소속으로 커스터머 마치 섀시를 몰았던 마이크 뷰틀러는 1971∼73년 사이에 출전한 F1 그랑프리 28경기에서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영국 출신으로 그가 기록한 F1 최고 성적은 1973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의 7위. F1에서 은퇴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88년 캘리포니아에서 에이즈로 45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리카르도 로제타 - 풋워크 애로우즈(1996년)와 PIAA 티렐(1998년)에서 풀 시즌을 보낸 브라질 출신의 리카르도 로제타는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채 트랙을 떠났다. 1997년에는 불운한 마스터카드 롤라 F1팀 소속으로 호주 개막전으로 향했지만, 예선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결승에 나가지 못했다. 경주차는 포드 V8 엔진을 얹은 롤라 T97/30.

 

루피트 키갠- 영국 F3에서 활동한 뒤 F1에 진출한 영국 출신의 키갠은 펜트하우스 리즐라 레이싱(1977년)과 듀렉스 팀 서티스(1978년)에서 활동했다. 안타깝게도 후원사들은 그가 바라던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1980년과 1982년에 각각 윌리엄즈와 마치 소속으로 잠시 F1 무대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레이스에서도 무득점에 그치며 F1 유니폼을 벗었다. 그가 출사표를 던진 F1 대회는 25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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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로덴가터 - 네덜란드 출신의 로덴가터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팀에서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1984년 캐나다 그랑프리에 스피리트 레이싱 소속으로 F1에 입성했고, 그 뒤 오셀라(1985년), 잭스피드 레이싱(1986년)로 이적했다. 1986년 호주 그랑프리까지 25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몇 번 밖에 완주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늘 득점권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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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브라밤 - 트리플 월드 챔피언(1959년, 1960년, 1966년)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F1팀을 창단한 뒤 팀 오너 겸 드라이버로서 활동했던 호주 출신의 잭 브라밤(Jack Brabham)의 세 아들 중 F1에서 활동한 사람은 데이빗뿐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와 같은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F1에 참전한 1991년과 1994년 두 시즌(24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친 것이다. 영국 출신의 앤서니 데이비슨(2002년, 2005년, 2007년, 2008년)과 브라질 출신의 타르소 마르케(1996년, 1997년, 2001년)도 24개 그랑프리 연속으로 포인트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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