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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자신이 만든 경주차로 출전한 드라이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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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7-05-29 09:32:10

본문

F1 그랑프리는 단순한 자동차경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F1 머신 자체가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서 더욱 안전하고 빠르며, 효율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자동차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무대이다. 이 때문에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를 포함한 세계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들이 F1 머신 개발과 제작, 레이싱팀 운영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F1은 말 그대로 수백억 원 연봉의 선수가 수백억 원짜리 머신을 몰고 서킷을 달리는 ‘돈의 질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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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F1 역사상 특이하게도 선수 자신이 직접 경주차를 제작해 참가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모험이 아닐 수 없는데 가장 눈에 띄는 드라이버는 자신의 경주차로 82경기나 출전한 호주 출신 잭 브라밤이다. 브라밤은 자신의 경주차로 F1 드라이버즈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진기한 성과를 거두었다. 랩코 엔진을 얹은 브라밤을 몰고 4승을 거두며 1966년 타이틀을 거두었다. 1962년부터 1970년까지 9시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경주차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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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1972년)와 맥라렌(1974년)에서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른 브라질 출신의 에머슨 피티팔디도 모험을 걸었다. 형 윌슨의 팀에 합류하며 자신의 뛰어난 실력과 그들의 형편없는 피티팔디 머신을 맞바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 후 다섯 시즌 동안 에머슨 피티팔디가 거둔 최고 성적은 1978년 시즌에 기록한 10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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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팀의 설립자인 브루스 맥라렌도 빼놓을 수 없는 드라이버 중 하나다. 맥라렌 경주차가 F1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팀 설립자인 브루스 맥라렌이 직접 M2B를 타고 출전한 1966년 모나코 그랑프리였다. 1970년 브루스의 비극적인 테스팅 사고 이후 수년 안에 성공을 누릴 팀에게는 불운한 데뷔전이었다. 맥라렌은 1968년 벨기에 스파에서 자신의 경주차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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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출신 아르투르 메르자리오는 페라리와 윌리엄즈에서 이어가던 F1 경력이 결말로 치닫자 자신의 팀을 설립하고, 자체 제작한 섀시로 트랙에 나서 드라이버 시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편없는 머신 A1과 A2는 대부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1978, 1979년을 통틀어 결승에 진출한 그랑프리는 10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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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 댄 거니는 인디카와 스포츠카 섀시를 만드느라 바쁜 와중에도 서섹스에서 앵글로 아메리칸 레이서즈를 설립하고 팀 경주차 중 한 대, 이글 T1을 타고 1966년 벨기에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F1에서 두 시즌 더 활동했지만, 1967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초라한 1승을 거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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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F1 그랑프리에서 성공적인 10년을 보내며 1964년 페라리에서 월드 챔피언십을 장악했던 존 서티스는 1970년부터 자신의 서티스 TS7 섀시로 출전했다. 팀은 1978년까지 운영되었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들의 오랜 스폰서 중에는 홍차회사인 브룩 본드 옥소와 콘돔회사인 듀렉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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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주차로 14경기에 출전한 호주 출신 데이빗 브라밤도 주목을 받았다. 원래 팀은 데이빗 브라밤의 아버지 소유였지만 그레고르 포이텍이 1990년에 두 번의 레이스를 치른 이후 팀을 떠나자 데이빗이 브라밤 BT59-저드를 타고 예선 통과를 시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14전 동안 6전에서 예선 탈락했고, 최고 성적은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거둔 15위였다.

 

브라밤에서 2년 동안 활동한 윌슨 피티팔디는 1975년 시즌을 목표로 자체 섀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설탕회사 코퍼수카의 부족한 재정지원처럼 피티팔디 FD01은 속도가 부족했다. 월드 챔피언 출신인 동생 에머슨 피티팔디가 1976년에 드라이버로 나서자 팀 운영자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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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불스 출신의 크리스 아몽도 자신의 경주차로 레이스에 참가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1963년부터 1976년 말까지 F1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오랜 활동기간에도 월드 챔피언십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1974년에 자신의 경주차 아몽 AF101을 타고 네 번 출전했으나, 하라마에서 단 한 번 예선을 통과한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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