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경주 최고봉의 이색 드라이버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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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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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31 13: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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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경주 최고봉인 F1 그랑프리. 칠순을 앞둔 F1 그랑프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드라이버들의 이색적인 이야기가 모여 있다. 독특한 부츠를 신은 드라이버부터 드라이버에서 TV 권위자로 변신한 선수까지. F1 무대에서 활약한 이색적인 드라이버들을 소개한다.
글 / 김병헌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독특한 부츠를 신은 알렉산더 부르츠
‘F1 그랑프리에서 성공하려면 다리 길이를 줄여보라’는 농담을 듣기도 한 부르츠(186cm)는 1997년 영국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3위 포디엄을 밟았다. 98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미하엘 슈마허와 휠을 부딪치는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대다수 드라이버가 혼란에 빠진 2007년 캐나다 몬트리얼에서는 침착하게 레이스를 운영해 3위에 올랐다.
조지 메달을 수상한 전설의 영웅 데이빗 퓨리
퓨리는 1973년 잔부트에서 불타는 마치 머신에 갇힌 로저 윌리엄슨을 구하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 일로 나중에 조지 메달을 수상한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77년 영국 실버스톤에서는 179.8G로 방호벽에 충돌했다. 이는 역사상 인간이 살아 남은 가장 큰 감속 지포스로 알려진 기록이다.
드라이버에서 TV 권위자로 변신한 자크 라피테
그는 레이싱을 좋아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은 이태리 몬자의 호텔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리지에가 팀 미캐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고, 아무도 몰래 골프를 치느라 연습주행을 허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리지에 시절에는 매우 중요한 선수였다.
뛰어난 백업 드라이버 패트릭 탐베이
1982년에 질 빌르너브가 사망하자 스쿠데리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 자리를 대신한 탐베이는 이듬해 독일 호켄하임에서 연습도중 일어난 사고로 드라이버 경력에 종지부를 찍은 피로니의 대타로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탐베이는 빌르너브와 피로니의 다툼으로 회자되는 1982년 이태리 이몰라 이후 정확히 12개월 만에 우승할 수 있었다.
세나와 슈마허에게 대등하게 맞선 마틴 브런들
1983년 영국 F3 타이틀을 놓고 세나의 경합을 벌였던 브런들은 이듬해 티렐 소속으로 F1에 데뷔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당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주차로 고전했지만 92년에는 베네통에서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활동했다. 6차례 포디엄에 오른 브런들은 슈마허를 초조하게 만든 드라이버 중 한 사람이었다.
최고에 가까웠던 스웨덴 드라이버 스테판 요한슨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드라이버 요한슨은 같은 스웨덴 출신 로니 피터슨과 군나 닐슨의 뒤를 이어 F1 그랑프리에 입성했다. 성적의 기복이 심한 편인 요한슨은 1980년대 중반에 페라리의 맥라렌에서 활약했고, 황금기였던 1985년 여름에는 몬트리올과 디트로이트에서 연속으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부드럽고 매끈한 로마 출신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그는 1997년 벨기에 스파프랑코르샹에서 2위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호켄하임에서는 타이어에 펑크가 나기 전까지 선두로 달렸다. 부드러운 드라이빙 덕에 2001년 선수들이 뽑은 ‘드라이버즈 드라이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르노가 타이틀을 거머쥔 해에는 페르난도 알론소의 ‘윙맨’으로 활약했다.
또 한 명의 미카, 그리고 슈마허의 대역 미카 살로
그는 티렐에서 F1에 첫발을 내딛었다. 1996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빗속을 논스톱으로 질주하려 했던 일로 유명해졌다. 99년에는 다리를 다친 슈마허를 대신해 6전에 참가했다. 호켄하임에서 우승할 수 있었지만 팀 명령으로 에디 어바인에게 양보했다. 이후 이태리 몬자에서 3위를 차지했다.
열정적인 네덜란드 마스터 요스 페르스타펜
주니어 포뮬러에서 활약한 페르스타펜은 F1 그랑프리 입성 초창기에 가장 빛났다. 슈마허의 팀 동료로 활동했던 1994년에 두 차례 포디엄에 올랐다. 독일 그랑프리 피트스톱 때 그의 베네통 머신이 불길에 휩싸인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을 듯하다. 페르스타펜은 일곱 팀을 거치며 107경기에 출전했다.
너무도 일찍 막을 내린 군나 닐슨
로터스 드라이버 닐슨은 1976년, 단 세 번째 출전 만에 3위를 기록했다. 1977년 초에 벨기에 그랑프리가 열린 졸더에서는 휠넛 이상을 이겨내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뒤로 성적이 떨어졌고, 같은 해 암 진단을 받았다. 1978년에 애로우즈와 계약했지만 실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해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비행을 즐긴 사고뭉치 레이서 패트릭 드파일러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애연가. 드파일러는 서킷 안팎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고에 휘말렸다. 늦깎이 드라이버로 1979년에야 비로소 두각을 나타낸 그는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타이틀 경쟁에서 3위로 떠오를 무렵, 행글라이딩 추락사고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미처 빛을 발하지 못한 유망주 로저 윌리엄슨
영국 출신 윌리엄슨의 F1 경력은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고 말았다. 다중 추돌사고로 잘 알려진 1973년 영국 그랑프리를 통해 F1에 데뷔한 윌리엄슨은 네덜란드 잔부트에서 열린 그 다음 레이스에서 타이어 이상으로 충돌사고에 휘말렸다. 그는 이 사고의 여파로 불길에 휩싸여 세상을 등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