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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티포시의 성지 이태리를 빛낸 드라이버들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8-08-29 1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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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그랑프리도 끝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태리 몬자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린다. 이태리 그랑프리는 1921년부터 몬자 서킷을 중심으로 꾸준히 열렸다. 드라이버는 몬자 서킷을 가장 빨리 주파하는 시간을 겨룬다. 서킷은 대부분 코너가 시케인으로 이루어져 고속구간이 긴 것이 특징이다.

 

몬자 서킷을 말할 때 매년 이태리 그랑프리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티포시를 빼놓을 수 없다. 티포시는 이태리어로 ‘팬’을 뜻하는 단어지만, 이미 F1 페라리 팀의 열성적인 팬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일부 과격한 티포시 때문에 때때로 축구의 훌린건과 비교하지만 페라리가 F1과 함께한 동안 매년 몬자 서킷을 빨갛게 물들이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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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랜 역사와 열정만큼이나 이태리 출신 드라이버도 다양하다. 우선 F1 최초의 월드 챔피언 주제페 파리나가 떠오른다. 그는 F1 그랑프리 데뷔 시즌에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드라이버로 기록되어 있다. 파리나는 또한 그랑프리 6회 출전 만에 최초의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차지한 결코 깨지기 힘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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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을 잘 믿는 선수도 있다. 사실 미신은 레이싱 드라이버들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이버가 이태리 출신 스테파노 모데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신을 신봉한다고 생각했다. 괴상한 부츠를 신고 한쪽 장갑을 뒤집어서 끼기도 했으며, 팀 동료에게 개러지를 바꾸자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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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아스카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아버지 안토니오가 그랬듯이 36세에 사망했고, 둘 다 13승을 올렸다. 그리고 둘 모두 심각한 사고를 견뎌내고 4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알베르토의 경우 모나코 항구로 뛰어들어 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자신이 원래 쓰던 행운의 파란색 헬멧 대신 빌린 헬멧을 쓰고 몬자에서 스포츠카를 테스트하다가 사망했다. 행복했던 시절에 아스카리는 9전 연속 우승을 포함해 1952∼53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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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에 나타난 천재 드라이버 엘리오 드 안젤리스도 이태리 출신 드라이버다. 데뷔 후 세 번째 그랑프리에서 우승할 만큼 출중했다. 2승 중 첫 승은 82년 오스트리아에서 기록했다. 마지막 코너를 전속력으로 달려 로스베르크를 0.05초 차이로 꺾었다. 82년 드라이버 파업 당시 뛰어난 피아노 연주로 동료들을 위로해 극찬을 받기도 했다. 86년 테스팅 도중 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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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통산 256회로 그랑프리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한 리카르도 파트레세도 이태리 출신 드라이버다. 그는 레이스 대부분을 경쟁력 있는 머신으로 치러 많은 승리를 올릴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빨랐다. 데뷔해 77년에는 말솜씨가 없었지만 93년 은퇴할 즈음에는 인터뷰에 능숙한 베테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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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출신 알렉산드로 나니니는 빠른 드라이버였지만 경력 또한 너무나 빨리 끝났다. 세나가 프로스트와의 접전 끝에 실격당한 1989년 일본 스즈카에서 유일한 우승을 기록한 그는 1년 후 헬리콥터 사고로 오른손을 잃으면서 F1에서의 경력을 마쳤다. 그러나 수술 후에 스포츠카와 투어링카 레이스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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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로 알려진 루이지 파지올리도 이태리 출신이다. 파지올리의 별명은 ‘아브루찌 약탈자’. ‘미스터 콩’(파지올리는 이태리어로 콩이라는 뜻)보다는 훨씬 나은 별명이다. 판지오와 경주차를 공유한 1951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1승을 챙긴 파지올리는 판지오에게 우승을 양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이를 불쾌하게 여기고 즉시 경주를 중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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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서 페라리 유니폼만 입은 L. 반디니도 이태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에 페라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반디니는 유일한 우승을 64년 젤트베그의 울퉁불퉁한 비행장 트랙에서 거머쥐었으나 당시에는 서티스의 넘버 투 역할을 맡고 있었다. 르망, 데이토나, 타르가 플로리오 등 스포츠카 경주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 67년에 모나코의 하버 시케인에서 페라리가 전복되어 불길에 휩싸인 채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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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로마에 태어난 지안카를로 피지켈라는 그랑프리에 몇 번밖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스포츠카, F2, 태즈먼, F5000에서는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60년대 초,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잭 브라밤의 팀 미캐닉으로 일했다. 그러나 브라밤 소속으로 레이스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1965년에 존 윌먼트 오토모빌 소속으로 레이스에 참가했다.

 

글 / 김병헌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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