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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과 로터스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9-03-29 11:50:21

본문

머신 중앙 부분에 노란색 줄무늬가 그려진 녹색 로터스 25와 남색 헬멧을 쓰고 파란색 던롭 레이싱 유니폼을 입은 짐 클라크의 모습은 1960년대 중반의 F1 그랑프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영상처럼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버렸다.

 

가장 뛰어난 영국 F1 팀으로 로터스가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레이싱 팬들은 2015년을 끝으로 사라진 로터스의 모습보다는, 클라크가 레이스를 휩쓸었던 팀의 전성기를 더 또렷하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토록 훌륭했던 로터스의 마지막은 초라하고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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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채프먼은 언제나 뛰어난 엔지니어링을 갈망했다. 1960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스털링 모스가 우승을 차지하고 그로부터 27년 후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아일톤 세나가 우승을 거둘 때까지 로터스는 월드 챔피언십 그랑프리에서 무려 79회의 우승을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설립자 채프먼이 1982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세상을 떠난 이후 팀이 단 7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채프먼은 명성으로 따지자면 브라밤의 고든 머레이만이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고, F1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기술 혁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노코크 섀시 구조, 그라운드 이펙트 에어로다이내믹, 트윈 섀시 개념 등은 모두 채프먼이 개발한 걸작들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당시의 기술규정이 오늘날보다 훨씬 제한이 적었음에도 도용하는 일 없이 독창적인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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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전성기에도 채프먼은 항상 위기 상황이었다. 1960년 시즌에 벨기에 그랑프리 연습주행도중 서스펜션 이상으로 사고가 발생해 6주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 그 사고로 인해 척추뼈에 금이 가고, 두 다리가 부러지는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로터스의 초창기엔 서스펜션 트러블이 자주 발생했다. 채프먼은 경주차를 설계할 때마다 항상 경량화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도 많은 드라이버들이 팀 로터스에 합류하기를 원했다. 1968년 말, 잭 브라밤에 대한 존경심으로 브라밤 팀에 남고자 했던 요헨 린트조차도 월드 챔피언십 종합우승을 거머쥐기 위해 로터스에 합류했다.

 

하지만 1970년 이태리 그랑프리 연습주행 도중, 로터스 72의 프론트 브레이크 샤프트가 부러지면서 충돌사고가 발생했고, 린트는 치명상을 입었다. 린트는 F1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사후 챔피언이 되었다. 이 때는 지금과 너무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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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은 쇼맨십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1981년, 존 버나드가 사상 최초로 탄소섬유 합성물을 이용해 개발한 맥라렌 MP4-1이 공개되자, 며칠 뒤에 탄소섬유 케블러를 이용한 로터스 88이 공개되었다. 한계선을 뛰어넘기 위한 채프먼의 노력은 타입 86의 트윈 섀시 구성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주차의 극도로 단단한 섀시 셋업으로부터 받는 충격 이외에 드라이버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인 충격으로부터 경주차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역학적 하중을 분리시키기 위해 디자인 되었다. 트윈 섀시는 채프먼다운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새로운 국제자동차연맹(FIA) 장-마리 발레스트르 회장은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채프먼의 독창적인 트윈 섀시와 타입 86,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변경한 타입 88까지 모두 규정에 위반되는 머신이 되었다. 1982년 말, FIA가 1983년 시즌부터 그라운드이펙트 터널을 금지하고, 바닥이 평평한 섀시로 통일해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하면서 팀 로터스, 그리고 F1 컨스트럭터즈 협회에 속해 있던 영국 팀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 무렵 채프먼은 1983년 시즌부터 르노의 V6 터보 엔진을 사용하기 위한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다. 처음엔 엘리오 드 안젤리스의 경주차에만 공급할 수 있어 나이젤 만셀은 어쩔 수 없이 코스워스 엔진으로 시즌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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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3년 그랑프리 시작과 함께 채프먼은 로터스 92에 로터스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의 초기 형태를 장착해 출전시켰다. 이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채프먼의 끈질긴 노력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시스템의 개발 상황은 완전한 초기 단계였다. 만셀은 컴퓨터 두뇌가 필요 이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인 탓에 몇 번이나 거칠게 트랙 밖으로 벗어났고, 로터스 92는 모든 서킷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머신처럼 보였다.

 

당시 많은 팀들은 로터스와 액티브 서스펜션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모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셀은 1982년 12월 16일에 채프먼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10년 뒤 만셀은 견고한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이 장착된 윌리엄즈-르노 경주차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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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터스는 1980년대 중반에 세나를 앞세워 다시 한번 전성기를 노렸다. 톨레만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세나는 전설적인 팀에 합류하기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1985년 초 로터스로 이적했다. 브라질 출신 세나가 로터스에 합류했을 때는 이미 팀을 구현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나는 채프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로터스는 세나 덕분에 1980년대 중반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채프먼의 후임자인 피터 워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세나는 팀이 예전의 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세나는 로터스에서 마지막 시즌이 시작될 무렵에 혼다 엔진을 얹은 99T의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세나는 1988년에 맥라렌으로 이적했고 로터스는 1994년 말에 서킷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010년, 한때 페라리의 말 모양 로고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로터스 팀 로고를 스타팅 그리드에서 다시 볼 수 있었지만 이후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1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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