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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맥라렌 레이싱 주역 론 데니스의 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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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9-06-02 10:48:14

본문

전 세계의 많은 팀들이 모터스포츠 최고봉인 F1 그랑프리에 뛰어들었고, 좋은 결과를 보여준 팀이 있는 반면 나쁜 사례를 보여준 팀도 있다. 이 가운데 론 데니스와 닐 트룬들이 설립한 론델은 자동차경주 레이싱팀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제시해주었다.
 
론의 첫 팀은 F1 사상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의 작은 단면을 보여주었다. 론이 1971년부터 73년까지 운영한 론델은 F1 그랑프리 진출을 열망하고 있던 F2팀으로 그레이엄 힐, 카를로스 로이트만, 조디 쉑터 그리고 톰 프라이스와 같은 그랑프리의 전설들이 몸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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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스토리는 브라밤 미캐닉이었던 론이 독립해 자신의 F2팀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던 1970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브라밤에서 가장 친했던 동료들 중 한 명인 닐 트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론은 “팀을 운영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브라밤팀 론 타우라낙 대표가 이미 F2 브라밤 몇 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브라밤 F1팀과 계약했던 호주 출신 팀 쉥켄이 드라이버로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론델’이라는 이름은 론과 트룬들의 ‘die’을 잘못 쓴 단어의 조합이다. 론은 “RON-die은 어색하게 들리지만 RON-DEL은 프랑스어처럼 들린다”고 트룬들을 설득했다.

 

브라밤의 지원이 있었지만 독립한 팀엔 별도의 작업장이 필요했다. 마침 포뮬러 애틀란틱에서 활동하던 닉 쿡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유한 농장을 부지로 내놓았고 론델 팀의 작업장으로 꾸며졌다. 쿡은 자신의 경주차에 신경 써준 론델 덕분에 혜택을 받은 드라이버였다. 론의 부모는 트룬들이 집에 묵을 수 있도록 허락했고 당시 20대 중반의 팀 대표 2명은 1년간 그곳에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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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재정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론의 연인의 아버지인 존 펠프스가 운영하던 골동품 가게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F1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골동품 단골 고객 토니 블라소폴로와의 만남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 토니는 무역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전직 굿우드 서킷 해설자였다.

 

블라소폴로는 보험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켄 그롭을 끌어들였다. 존의 형제인 데이브 펠프스는 론의 회계사로 일하기로 했고 미캐닉으로 클라이브 윌턴과 프레스턴 앤더슨이, 그리고 드라이버로는 쉥켄이 확보되었다. 그리고 1962년과 1968년 F1 그랑프리 챔피언 그레이엄 힐도 있었다.

 

독일 호켄하임에서 첫 레이스. 힐은 자신의 론델 브라밤으로 1승을 올리고 그날 전체 2위를 차지했다. 1주일 후엔 로니 피터슨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를 벌인 끝에 드럭스톤에서 열린 결승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론델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초기의 성공에 힘입은 론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의 열정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면,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예선을 치르고 있을 때 트랙 뒷부분에서 수도관이 터졌다. 힐은 물 위에서 미끄러져 충돌했고, 섀시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론이 레이스 준비를 까다롭게 하는 편이라 팀원들은 이미 전날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다.

 

론은 캠프에 가서 부품을 모아 트랙으로 돌아오던 길에 졸음운전으로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엔진이 뒤로 밀려났고 그는 안전띠를 매고 있지 않았다. 부상은 꽤 심각했다. 얼굴이 찢어져 봉합수술을 했으며 덕분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눈에도 부상을 입었다. 안구에는 상처가 생겼고, 망막이 약간 분리되었다. 결국 그가 돌아왔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론은 1972년에 확장하고 있던 팀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팀은 F1 데뷔 첫해를 브라밤과 함께했던 카를로스 로이트만을 영입했다. 그러나 이스터 드럭스톤에서 경주차 뒤축이 떨어져나갔고, 로이트만의 발목이 부러지면서 그의 타이틀을 향한 희망도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드럭스톤에서 론델은 다음 시즌부터 F2 컨스트럭터로 활동하고 F1 경주차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항공우주분야에서 일하던 레이 제솝을 브라밤으로부터 영입했다. 컨스트럭터로서 론이 처음으로 내놓은 경주차는 스폰서였던 프랑스 오일업체의 이름을 따 ‘모툴 M1’이라고 명명되었으며, 1973년 4월 호켄하임에서 데뷔했다. 복귀에 대한 론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다음 레이스인 드럭스톤에선 헨리 페스카롤로가 밥 월렉을 원투 피니시로 이끌었다. 노리스링에서는 론델의 F1 드라이버로 내정되어 있던 쉥켄이 선두로 달려 팀의 1-2-3-5위 성적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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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델은 1972년에 윈저로 이전했지만, 1973년에는 펠트햄의 새로운 시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던 팀은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오일 위기가 있었고, 회사는 파산할 지경이었다. 펠트햄 시설을 대사관이 후원하는 그레이엄 힐의 그랑프리 팀에 매각함으로써 빚을 청산할 돈이 생겼다. 하지만, 론은 팀을 떠났고, 트룬들은 계속 F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론델은 펠트햄 시설을 폐쇄했지만. 팀은 월튼-온-템스에 작은 작업장을 마련했다. 팀원은 닐 트룬들과 미캐닉 크리스 루이스뿐이었다. 그들은 팀을 후원하던 토니 블라소폴로와 켄 그롭의 이름을 따서 F1 경주차도 토켄으로 개명했다. 트룬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론 데니스 없이 1974년에 그랑프리에 3번 출전했고, 그 중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66랩까지 버티며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나코 그랑프리에 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 트룬들은 팀을 떠나 티렐로 갔다. 론은 1976년에 트룬들의 제의로 프로젝트4(P4) 레이싱과 함께 돌아왔다. P4는 1980년에 위태롭던 맥라렌 Ltd를 흡수해 맥라렌 레이싱이 되었으며 그랑프리 최강팀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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