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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돌아본 한국모터스포츠 25년사 (1)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3-24 13:45:16

본문

세계 최초의 자동차경기는 지난 1894년 파리-보르도 왕복구간(1,171km)에서 46대가 참가해 버너 루바소가 우승을 한다. 미국은 1895년 6대가 참가한 시카고레이스가 최초의 경기다. 이렇듯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개발 이후 1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보다 1세기 후인 1987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특기할 사항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제작사, 사업자 중심이 아니라 동호인들 중심으로 시작되어 특이하고 고달픈 역사를 잉태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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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록이 될 수는 없지만 1983년 9월 12일 잠실벌(현 롯데월드 자리)에서 동호인 22명이 모여 스프린트레이스 형태의 자동차달리기가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진기한 장면이라 ‘이것이 제일’이라는 TV프로에 소개되어 장안의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경주는 1987년 3월 19일 강원도 용평에서 랠리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틀간 치른 이 경기의 코스는 알프스 스키장을 출발해 원릉-인제-남면-운두령-진부-횡계 등을 거쳐 용평스키장에 도착하는 150km 구간에서 였다. 경기는 당일 오전 10시부터 5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시작되었고 현대 포니1, 포니2,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 르망, 로얄 XQ, 로얄프린스 등 18대가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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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에서는 속도제한을 두었으며, 속도측정을 위해 출전차마다 ‘코스모스2000’이라는 타코메타를 부착하고 내비게이터가 동승했다는 것은 특기할 사항이다. 구간에는 9군데의 체크포인트를 두었고, 구간 최고속도는 시속 60km 이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경기진행에 필요한 규정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은데다 첫 번째 차량이 운두령(해발 1086m)을 지나 진부로 빠질 무렵에는 눈이 많이 쌓여 경기규칙이나 제한시간을 지키는 일보다 갑자기 만난 난코스를 무사히 빠져나와 완주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참가자들은 스노타이어나 체인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데다 진행미숙으로 코스표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도중에 길을 잃는 선수가 많았다. 13대의 차량이 완주하였고, 여건상 제한시간을 맞춘 선수가 없어 피니시라인을 통과한 차례대로 순위가 정해졌다. 박권춘(프레스토) 선수가 4시간12분으로 맨 먼저 들어왔고 이어서 변우열(프레스토), 김명수(포니1)가 차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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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쌍용의 김석원 회장은 후원과는 별도로 코란도 5대를 행사진행용 지원하며 큰 관심을 보였었다. 그 중 양경선(96년 타계), 박원국, 박용진이 탄 진행차량이 운두령의 해발 500m 지점에서 10m의 계곡으로 추락했으나 다행히 차량만 대파되고 인명피해는 없는 기적같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자동차경기에 최초의 후원, 즉 스폰서는 쌍용이 된 셈이다.

또 국내 최초의 자동차경기인 만큼 MBC 라디오 취재팀이 눈속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전과정을 취재․리포트 했다는 것도 이야깃거리다.

두 번째 경기는 5월 31일 영종도 북부, 구 레저타운 비상설트랙에서 열렸다. 1.6km코스를 5바퀴 도는 이 경기가 국내 최초의 스피드레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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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량 1,500cc 이하의 국산차량 17대가 출전했으며 한독시계가 후원했다. 트랙의 코스폭은 12-15m이고 직선주로가 600m인 사각형 코스로 비포장이긴 하지만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차종은 포니1, 엑셀, 프레스토, 르망이 출전했으며 이때 막 출시하기 시작한 프라이드도(박정용) 참가해 선을 보였다.

기록은 세 명이 체크해 중간기록을 채택했고, 예선 체커기를 받고도 차량의 스피드가 제어되지 않아 경기사상 첫 전복사고가 피트인 하던 중에 일어났다. 이 경기에서 프라이드로 출전한 박정용(당시 28세/기아자동차 근무), 이명목(당시 24세/마산 완월농장), 변우열(정비사)이 각각 1, 2, 3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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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의 세 번째 경기 ‘제1회 그랑프리코리아 자동차경주대회’는 한국모터스포츠연맹과 문화방송이 공동주최하고 일간스포츠가 후원했다. 또 모빌코리아와 챔프통상이 협찬해 모빌은 직원이 직접 나와 참가차량의 오일을 교환해주는 등 성대한 행사로 치러졌다. 참가차량은 배기량별로 1,500cc와 2,000cc급으로 나뉘어져 현대 포니2, 포니2픽업,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 그랜저, 대우 르망, 르망레이서, 로얄XQ, 로얄살롱과 기아 프라이드가 참가했다. 여전히 경험부족이긴 했지만 주최 측은 국제스포츠규정이 정하고 있는 신호기세트를 일본에서 구입해다 사용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는 코스의 노면상태가 거칠어 기록보다 완주를 위해 타이어 버스트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날카로운 돌에 타이어가 찢어지는 것은 예사고 돌이 튀어 앞유리와 헤드램프가 깨지는 일이 많았다. 타이어파손이 너무 심하자 프라이드로 출전한 이석호는 휠사이즈가 비슷한 경운기타이어를 장착하고 나와 경기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가 하면 어던 사람은 타이어에 공업용 그리스를 떡칠하다시피 해 약간은 효과가 있었다는 후문이 들리기도 했다.

반면 어떤 사람은 타이어를 10짝씩이나 쌓아놓고 물량작전을 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결국 참가차 38대 중 대부분이 타이어파손과 차량고장으로 리타이어하고 8대만이 그레이드 구분 없이 동시출발로 결승을 치른다. 이때 명사들 시범레이스가 있었는데 아폴로박사 조경철, 만화가 고우영, 권투선수 홍수환, 가수 윤향기, 영화감독 정지영, 탤런트 송옥숙 등이 우정 출전해 트랙을 3바퀴 돌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 경기는 TV, 신문, 잡지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효과를 얻었고 최초의 성대한 행사, 단체의 조직이 형성된 대회로 기록된다. 그러나 오토바이협회의 호기종 씨, 박명철 씨 등이 오피셜 지원을 나왔음에도 모호한 판정시비, 좋지못한 트랙으로 여러 가지 희비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때 장안에서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로 모터스포츠의 인기를 반영했는데 당시 TV를 본 어떤 시청자가 ‘이 자동차는 영종도 경기에 출전했던 차량임’이라고 자신의 흰색승용차에 매직으로 쓰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네 번째 경기는 모터스포츠연맹이 주최한 두 번째 경기로 인천 송도의 임시트랙에서 대회명 ‘제2회 그랑프리 코리아’로 열렸다. 매립지에 조성된 코스는 1.3km이고 26대가 참가를 했다. 비포장경기의 코스에서 항상 보듯이 이때도 경기가 진행될수록 노면이 깊게 패여 많은 차량이 리타이어 했다. 이 대회에는 대부분의 출전차량이 머플러개조, 불필요한 좌석 제거, 엔진 튠업, 스티어링휠과 보디 튜닝도 선을 보였다.

대회의 우승은 조규준이 차지해 거금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지만 트랙주변에 널어놓은 그물을 망가뜨려 20만원을 변상하고, 자축연 술값에다 특히 차가 공장에 수리하기 위해 맡겨놓은 잘 아는 고객의 차로 살짝(?) 출전했기 때문에 파손부위 수리비를 합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우승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악조건에서는 순발력이 뛰어난 프라이드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서히 경주차의 세대교체가 시작된다.

이 경기는 한국타이어와 챔프정수기, 방가드가 대회협찬을 했으며 한국타이어는 자동차관련 메이커로서는 처음으로 대회협찬에 나서기 시작해 이후 한국모터스포츠연맹이 주최한 모든 경기에 지원을 하며 비포장레이스 시절의 커다란 협력자가 된다. 이때의 지원금은 400만원으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로써 세 차례의 경기경험을 얻게되고, 경기에 참가했던 몇몇 사람들이 주최자가 되어 이후 클럽중심의 소규모 경기가 산발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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