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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첫 경험에서 큰일 낸 선수들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3-04-29 15:19:31

본문

카레이서들의 영원한 꿈의 무대인 F1에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다수의 레이서들은 자신의 목표가 F1 드라이버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드라이버들은 모두 F1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F1에서 뛴다는 것은 힘들다. 최소 10년 이상 레이스를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그리고 F1에 진출했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3년 동안 단 한 포인트도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운을 겪은 드라이버가 부지기수다. 반면 데뷔전부터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드라이버도 있다. 지금부터 그 드라이버들을 소개한다.

존 파슨
F1 데뷔 연도에 우승한 드라이버는 3명이다. 지안카를로 바게티와 주제페 파리나, 그리고 1950년에 미국 인디500에서 우승한 존 파슨이다. 그러나 당시 인디500은 F1 일정에 포함되어 실제로 그 경기가 존 파슨의 인디애나폴리스 데뷔전은 아니다.

브루스 맥라렌
1958년 독일 그랑프리에는 F1 출전자가 고작 13명에 그쳐 주최 측이 F2 선수들을 포함시켜 총 26명의 선수가 참가하게 되었다. 맥라렌은 자그마한 쿠퍼 T45로 월드 챔피언십에 데뷔, 까다로운 14마일의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5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그러나 맥라렌은 F2 클래스 우승을 위해 F1 포인트는 획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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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카를로 바게티
1950년의 첫 번째 F1 그랑프리와 인디 500을 제외하고, F1 데뷔 연도에 월드 챔피언십 우승까지 차지한 최초이자 유일한 드라이버는 여전히 지안카를로 바게티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1961년 프랑스 랭스에서 페라리에 안겨준 우승은 그 중에서도 더욱 극적이었다. 레이스 마지막 코너에 다다라서야 댄 거니를 추월하고 1위로 나섰기 때문이다.

마리오 안드레티
미국 레이싱계에서 성공을 일구었지만, F1이 미국에 입성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세 번째 로터스 49로 출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왓킨스 1968년 미국 글렌의 예선에서 폴포지션을 차지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차체 결함으로 피트로 들어갔고, 결국 클러치 이상으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카를로스 로이트만
버니 에클레스톤이 브라밤을 소유하고 있던 1972년에 가장 처음 영입한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로이트만은 자신의 데뷔전이자, 그해 챔피언십의 첫 레이스인 1972년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BT 34로 예선 1위를 차지해 고국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어박스 이상으로 인해 제속도를 유지할 수 없었고 7위까지 떨어져 경기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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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허버트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열린 F3000 레이스 도중에 끔찍한 충돌사고를 겪고, 부상이 완치되기도 전에 목발을 짚고 1989년 브라질 자카레파구아에 나타나 F1 데뷔전을 치렀다. 베네통 소속으로 출전한 그는 61랩을 분투한 끝에 값진 4위를 기록했다.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허버트는 레이스 이후에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빠져 나왔다.

에디 어바인
사람들을 쉽게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가 펼친 최고의 레이스는 아마도 데뷔 무대였던 1993년 일본 스즈카 레이스일 것이다. 백마커였던 어바인은 아일톤 세나의 앞을 가로막았고, 세나는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세나는 분노했고, 레이스가 끝난 직후, 어바인의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쟈크 빌르너브
1995년 인디 500에서 우승한 빌르너브는 겨울 테스팅을 마치고, 이듬해 윌리엄즈에 합류했다. 1996년 호주 멜버른에서 그는 바게티의 기록에 근접했지만 1그리드에서 출발해 선두로 팀동료 데이먼 힐을 이끌던 중 연료 누출로 인해 1위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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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웨버
약체팀 미나르디에게는 포인트 획득의 기회가 너무나 드물었다. 호주 출신의 마크 웨버는 2002년 데뷔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팀의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미나르디는 웨버가 5위였음에도, 시상대에 올라가 호주 팬들과 팀 보스인 풀 스토다트에게 샴페인 세례를 퍼부을 수 있도록 했다.

루이스 해밀턴
해밀턴이 2007년 호주 그랑프리에서 그렇게까지 활약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해밀턴은 그의 새로운 팀동료이자 당시 월드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페르난도 알론소를 바깥쪽에서 추월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선두로 나서기까지 했던 해밀턴은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22세의 신예가 거둔 성적으로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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