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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라이벌 경쟁을 보고 싶다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3-05-15 14:20:14

본문

다른 스포츠처럼 자동차경주도 스타의 탄생과 그들이 벌이는 경쟁을 발판 삼아 발전해왔다. 스타와 스타의 치열한 경쟁은 항상 관중을 열광시켰고, 스포츠가 빠르면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초기 모터스포츠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대항전 또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대결이었다. 간간이 누볼라리나 로제마리어 같은 천재적인 드라이버들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으나 자동차경주가 새 기술의 시험장이 되던 시기인 만큼 카레이서들은 테스트 드라이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F1의 등장은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F1은 1950년 시작되었고 초창기는 이태리의 페라리와 알파로메오가 축을 이루었다. 파리나, 판지오, 아스카리 같은 드라이버들이 라이벌전을 펼친 덕분에 F1은 빠르게 인기 모터스포츠로 자리매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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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F1 무대를 처음 평정한 스타는 후안 마누엘 판지오였다. 1954년 마세라티로 시작해 벤츠, 페라리팀을 오가면서 57년까지 4년간 F1의 황제로 군림했다. 판지오가 46세이던 1977년 호손, 모스, 클린스 등 20대의 젊은 드라이버들과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펼친 독일 그랑프리는 지금도 최고의 포뮬러 레이스로 회자되고 있다.당시 페라리 머신은 단 한 번 기름을 넣고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지만 판지오가 탄 마세라티는 연비가 나빠 큰 연료통을 뒤에 싣고도 레이스 중간에 재급유를 해야 했다. 그러나 판지오는 사상최고의 랩타임을 기록하면서 추격자들을 차례차례 따라잡아 마지막 랩에서 극적인 추월에 성공, 영광의 우승컵을 안았다. 이 같은 극적인 승부가 펼쳐지는 무대이기에 F1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레이스 사상 라이벌 대결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1980년대일 것이다. 80년대 초 등장한 프로스트는 당시 최고의 드라이버로 이름을 날리던 넬슨 피케, 니키 라우다와 경쟁을 벌이다 85년 대망의 월드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서킷의 교수’라는 별명까지 가진 재키 프로스트는 80년 말 신인 A. 세나와 맞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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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와 달리 세나는 데뷔 때부터 불같은 스피드와 야생마 같은 질주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서킷의 천재’. 성격이나 운전특성이 너무나 다른 둘은 서킷에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80년대 말 프로스트와 세나는 최고의 팀이었던 맥라렌에서 함께 뛰게 된다. F1은 2명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신인을 세컨드 드라이버로 기용해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둘은 너무나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세컨드 드라이버가 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야구로 말하자면 둘 다 4번 타자였고, 축구에서는 센터 포드였다.

당연히 레이스는 같은 팀 선수끼리 치고받는 형세를 보였고 관중들까지 두 파로 갈려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F1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1988년과 89년 나란히 챔피언 자리를 나눠 가진 프로스트와 세나는 한솥밥 인생을 정리하기로 했다. 맥라렌팀은 젊은 세나를 선택했고 프로스트는 페라리로 이적했다. 이후 2년간 F1은 세나의 독무대였다. 프로스트는 눈물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차의 성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페라리에서 쫓겨나 F1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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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최강 엔진을 자랑하던 혼다가 F1에서 물러나면서 르노 엔진의 윌리엄즈가 강자로 떠올랐고 노장 만셀을 사상 처음 챔피언 자리를 올려놓는다. 이에 고무된 윌리엄즈는 다음해 만셀을 미국 인디로 보내는 한편 낚시질하던 프로스트를 컴백시켜 2년 연속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다.

윌리엄즈는 다시 프로스트의 옛 정적 세나를 스카웃해 온다. 그러자 프로스트가 은퇴를 선언, F1에서 아주 발을 뗐다. 그리고 세나는 94년 경기도중 사망했다. 팀은 과욕으로 인해 최고의 흥행사 두 사람을 잃게 되었고 자연히 F1 인기는 시들해졌다. 프로스트는 97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팀을 만들어 F1 무대에 다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F1 관계자들은 흥행을 위해 인디에서 활약하던 만셀을 급히 데려왔으나 이번에는 내부반대에 부딪쳤다. 차라리 이 기회에 젊고 유망한 신인을 키우자는 의견이 강했던 것. 슈마허의 독주가 계속되었지만 그와 대적할만한 드라이버가 없었다. 결국 슈마허는 94년에 이어 95년에도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적수가 없는 F1은 심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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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허 은퇴 후인 2007년에는 키미 라이코넨과 루이스 해밀턴, 페르난도 알론소가 초박빙의 승부를 벌인데 이어 이듬해는 해밀턴과 마사가 혈전을 펼쳐 F1의 재미를 높였다. 2010년부터는 레드불의 베텔이 3연패를 기록했지만 2011년 시즌을 제외하곤 알론소와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올 시즌은 베텔과 라이코넨 두 라이벌의 무대다. 경주차의 덕을 보고 있는 베텔과 노련미와 테크닉을 겸비한 라이코넨의 대결은 한 마디로 화끈하다.

국내 레이스도 막을 올렸다. 국내 최대 규모인 슈퍼레이스의 경우 슈퍼6000 클래스에서는 김의수와 황진우가 포진한 CJ레이싱과 김동은, 다카유키 아오키로 라인업을 구성한 인제오토피아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GT 클래스에서는 EXR팀106과 쉐보레팀이 자존심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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