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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오토뉴스 채영석 국장은 30년 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 왔으며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월드 카 오브 더 이어의 심사위원이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과 다른 시각으로 산업 분석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3,000종 이상의 차를 타고 시승기를 쓰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터쇼와 기술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차원의 트렌드 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골드만 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역으로 유가 폭락 가능성이 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전쟁이 만든 자동차, 자동차가 만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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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승인 2016-12-14 21:01:54

본문

큰 틀에서 보면 석유회사와 자동차회사의 결탁이 20세기를 자동차의 시대로 만들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그리고 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은 전쟁이었다. 20세기 자동차 기술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전쟁이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든 행동 가운데 자본과 자원을 가장 많이 소모하고 공해를 가장 많이 일으킨다. 지금도 지구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공해 유발지수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 등 운송수단의 기술 수준을 몇 단계 끌어 올려 놓았다.

 

역사학자들은 전쟁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하고 배경을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그것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동차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가를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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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기술 발전의 기회라는 것은 절대 복종이라는 지휘 체계 때문이다. 평상시와 달리 속전속결이 필요한 전쟁에서 적보다 장비에서 우위에 선다는 것은 곧 전투의 승리를 의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쟁은 참혹하지만 그로 인한 수혜자는 반드시 있다. 1차 세계 대전의 수혜자는 미국과 일본이다. 무엇보다 2차 세계 대전의 축복을 받은 것은 미국이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서유럽과 일본 등 대부분의 국토가 파괴됐지만 미국은 엄청난 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됐다.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든 결정적인 동인은 전쟁이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운송수단에 관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1912년의 타이타닉호 침몰이 그것이다. 당시 타이타닉호는 길이 250미터, 무게 4만 6,000톤, 21층 높이로 증기기관을 사용했다. 영국과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 4개국 합작품인 이 배의 소유주는 미국과 영국의 금융 황제 모건과 로스차일드간의 합작회사였다. 이들은 지금도 세계 금권의 배후로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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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명의 승객 중 1,523명이 사망한 대 참사는 ‘자연에 대한 기술의 승리’를 부르짖던 것을 비웃듯이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연의 경고’로 바꾸었다. 이 사건은 국가간의 속도경쟁의 결과였다. 승객을 더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 더 빨리 달려야 했다. 이 침몰 사건은 700여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선전신이라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타이타닉호가 증기선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시선은 없었다.

 

그리고 2년 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운송수단의 극적인 발전을 가져온 사건이다. 자동차를 이용한 기동화 전쟁과 비행기를 이용한 육해공 입체전이 시작됐다. 땅에서는 군용 트럭과 장갑차, 바다에는 군함과 잠수함, 탱크,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았다. 근대식 기계화 전쟁으로 변한 것이다.

30여년 동안 발전해 온 자동차의 기술이 없었다면 비행기와 탱크는 1차대전 때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20세기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자동차는 현대전쟁의 대량 살상무기의 기술적 바탕을 제공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참전국 자동차 업체들은 군용차와 비행기 엔진을 제작했다. 우선은 미군이 전쟁에 참여했던 1917년에는 포드 모델 T가 1만9천대나 유럽 전장으로 보내져 기동성을 높여 주었다. 다임러와 벤츠는 모두 군용차를 제작했고 BMW 자동차 사업의 전신인 ‘딕시’ 또한 전쟁이 시작되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용품을 생산했다. 항공기 프로펠러 로고로 유명한 BMW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설립돼 V형 12기통 전투기 엔진을 납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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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진흙탕 평야에서도 달릴 수 있고 포탄에 맞아도 뚫리지 않는 탱크를 개발했다. 자동차 바퀴로는 진흙탕에서 굴릴 수 없어 무한궤도를 발명했다. 최초의 탱크는 시속 6km 정도의 저속이었지만 참호전에서는 가공할 전투력을 과시했다.  바로 벤츠와의 기술제휴로 벤틀리를 제조하던 영국 다임러사의 105마력 엔진을 얹은 마크 원 탱크였다. 

 

그러자 독일, 프랑스, 이태리에서도 탱크를 개발해냈다. 그러면서 개발된 지 10년 밖에 안된 비행기를 포격 관측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내연기관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는 공중전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제1차 대전 직전부터 소형 경비행기가 나타났다. 비행기를 전투기로 처음 사용한 유럽의 나라는 독일로 체펠린 비행선으로 벨기에 리에주에 폭탄을 투하했다. 1914년 8월에는 파리 철도 역을 폭격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격을 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됐다.

 

1918년 봄 독일군의 공습으로 영국 민간인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4,000명이 부생을 당했으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영국은 개전 당시 전투기가 110대밖에 없었으나 1918년 종전까지 프랑스와 함께 10만대를 더 생산했다. 독일은 4만 4,000대를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전투기의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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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서운 것은 비행기끼리의 공중전이었다. 처음에는 먼저 권총을 쏘기 시작하고 소총을 쏘아 조종사를 맞추어 비행기를 추락시키려 하면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공중전에서 이기기 위해 더 빠른 비행기를 위해 가볍고 마력수가 크며 단면적이 작은 엔진의 개발이 다투어 일어났다.

 

명차 알폰소를 내놓았던 스페인의 이스파노 스이자는 수랭식 V형 8기통 SOHC 150마력 엔진을 경합금으로 개발했는데, 중량 당 마력수가 같은 당시의 항공기 엔진, 스타형 로터리식 엔진보다 단면적이 작아 유선형 앞머리를 한 전투기를 개발하는 데 유리했다. 같은 마력이라도 공기저항이 작아 속도가 빨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엔진은 연합국 측에 즉시 채택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엔진을 독일 측은 다임러사에 요청해 직렬 6기통 SOHC 4밸브 160마력엔진을 개발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도 항공기 엔진을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패커드사가 개발한 리버티 엔진이 공군의 주력엔진이 되었다.

 

당연히 그 발전은 속도다. 먼저 등장한 자동차가 속도 기록에서도 앞서 갔다. 자동차 경주를 통해 속도 경쟁을 했고 그 결과는 양산차에 피드백됐다. 1908년 등장한 동력을 이용한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늦은 1913년에 처음으로 200km/h 를 넘었다. 전쟁이 기술 발전의 기폭제가 되어 가공할만한 페이스로 속도가 빨라졌다. 1930년에는 300km/h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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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발전의 속도는 바로 엔진의 발전 속도다. 자동차에서 향상된 엔진 기술은 비행기와 선박에 이용되었고 사용 도중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개선했다. 당연히 그 기술은 다시 자동차에 적용되었다. 1, 2차대전에서 있었던 항공기 엔진의 경쟁적 기술개발로 전쟁 후의 자동차산업은 가벼우면서 출력이 높은 엔진을 다투어 자동차에 얹게 되었다.

 

자동차 속도경쟁에서도 그런 일들은 반복됐다. 1970년대에 비행기에 제트 엔진이 등장했고 그 제트 엔진을 속도기록용 차에 탑재해 700km/h의 속도를 돌파하기도 했다. 자동차로 400km/h 이상을 달리기 위해서는 제트 엔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쟁이 언제나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리적, 지형적 제약으로 ‘꼼수’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2차 대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의 패튼 장군과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롬멜과의 싸움에서였다.

 

1941년 리비아에서의 사막 전투 때 롬멜은 폭스바겐 자동차에 나무로 틀을 짜 달아 탱크처럼 위장해 영국군에게 대군이 몰려 온 것처럼 위장했다. 사막의 저녁 햇빛을 등지고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와 모래 먼지로 인해 거대하게 보이는 전차 군단이 영국군의 측면을 공격해 영국군을 격퇴시킨다. 탱크처럼 꾸민 전차로 적군을 현혹시켜 승리한 것이다. 아날로그 전쟁은 물리적인 힘 외에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삼국지 적벽대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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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측면에서의 발전은 자동차의 형태의 변화다. 복엽 비행기를 생산했던 프랑스의 항공 기술자 가브리엘 보아장은 1차 대전 후 비행기 수요가 급감해 경영난에 빠져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 이 때 이때 친구인 앙드레 시트로엥이 만들었던 4,000cc 대형 고급 차에 비행기 기술을 접목시킨 `보아장 C1`을 를 개발하면서 비행기사업을 자동차사업으로 전환했다.

 

그가 1934년에 만든 `보아장 C25` 는 6기통에 배기량 3000cc의 100마력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 140km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차가 35년 파리 오토살롱(모터쇼)에 등장했을 때 공기역학적으로 만든 차체 디자인은 너무나 그 시대의 유행을 파괴하는 전위적인 모습이라 혐오감을 준다는 혹평 때문에 생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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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선과 전투기 모양은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친 예는 또 있다. 이탈리아 로마 출신 귀족 마르코 리코티(Marco Ricotti) 백작이 비행선 모양의 차체 디자인을 스케치 한 후 레이싱 카 전문 메이커였던 알파 로메오에 부탁하여 1914년 `알파 40 리코티(Alfa 40 Ricotti)`라는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유선형 자동차가 탄생됐다. 역시 너무 파격적이라는 이유로 양산되지는 못했다.

 

엔진 성능이 좋아지고 자동차의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엔지니어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공기의 힘이었다. 100km/h가 되자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키려는 다양한 연구가 디자인으로서 성립이 되었다. 초창기는 빠른 속도의 경주용차에 주로 채용되었고 양산차에 반영되어 오늘날까지 자동차 형상의 공기역학은 연비성능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후 완성된 것이 공기의 벽에 대한 유선형이고 또 하나가 웻지 형상(쐐기형)이 있다. 자동차보디의 유선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비행선이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공기저항계수(Cd)다. 유선형 자동차는 1920년대 초기에 등장하는데 자동차와 항공기 기술자인 에드몬트 룸펠러와 파웰 야라이 등의 노력에 의해 티어 드롭(Tear Drop; 눈물 방울 형상) 유선형을 고안해 이것을 자동차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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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차로서 야라이 이론을 처음으로 받아 들인 것은 미국의 크라이슬러 에어플로(34년)였다. 이것은 일본의 토요타 AA(36년), 메르세데스 벤츠 540K와 푸조 402등에 채용되었다. 타트라77(34년)은 전형적인 리어 엔진 유선형 보디를 갖고 있었고 폭스바겐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대전 후에는 웻지 형상, 즉 쐐기형의 차체 이론이 등장했다. 다운포스에 의해 차체를 지면에 붙여 구동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통해 우선 F1 그랑프리 머신(페라리, 브라밤, 68년 벨기에 GP)의 윙의 채용으로부터 시작해 결국은 양산 모델에도 다용되게 되었다. 오늘날 자동차 디자인에는 유선형, 쐐기의 두 가지가 통합되어 응용되고 있다.

 

비행기의 속도가 빨라지자 착륙이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ABS(Antilock Brake System)다. 이 외에도 비행기의 기술이 자동차에 적용된 대표적인 것으로는 BMW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비롯해 1914년 전투기가 공중회전할 때 조종사 몸을 고정시키는 가죽 안전벨트, 안전벨트, 알루미늄 차체, 선루프, ABS 등 수없이 많다. 최근에는 비행기에 사용되고 있는 By-Wire 기술이 하나씩 자동차에 채용되고 있다. 그동안은 물리적인 연결에 의해 작동됐던 엔진과 변속기, 조향장치, 현가장치 등의 전기적인 명령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 연료전지 시스템을 자동차에 채용하기 위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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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전투용으로 바뀌면 장갑차가 된다. 1903년 오스트리아의 독일 다임러 자동차 자매회사인 오스트로-다임러사의 장갑차는 총알에도 펑크가 나지 않는 통 고무 타이어를 달았다. 라디에이터와 운전대를 두꺼운 철판으로 감싸고 운전석 뒤쪽에 회전식 기관 포탑을 설치했다. 독일 고트리프 다임러의 큰아들 파울 다임러가 연구하던 4WD 시스템을 처음으로 적용했으며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4륜 조향장치(4 Wheel Steering System)까지 달았다.

 

최초의 대공 기관포 장갑차는 1906년 독일에서 나타났다. 무기 제조업자 하인리히 에르하르트((Heinrich Ehrhardt)가 카이저 황제의 의뢰로 생산하고 있던 2기통 1,250cc 엔진의 발트부르크를 대공사격차로 개조한 장갑차 `에르하르트 BAK`가 그것이다. 1915년 전투기가 나타나기 전에는 하늘에 관측용 기구를 높이 띄워 적진의 상황을 정찰했는데 대공포 장갑차는 바로 적의 기구를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후에는 전투기 공격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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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에서 장갑차를 대량 생산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의 장갑차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세계 최고의 승용차 롤스로이스의 `실버 고스트`를 이용해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1914년 말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영국 해군항공대에서 벨기에 해안의 영국 비행장 경비용으로 사용하면서 독일군을 공격하는 데 큰 전과를 올렸다.

 

장갑차보다 더 기동성에 기여한 네바퀴 굴림방식(4WD)도 전쟁이 만든 산물이다. 네바퀴 굴림방식 특허 제1호는 18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막 내연기관 자동차가 탄생해 걸음마를 하는 시절이었다. 당시 몇몇의 엔지니어들은 엔진 출력을 모두 타이어에 분배하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4WD 기술에 흥미를 가진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노면 상황에 관계없이 주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군대의 위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후자의 이론 쪽이 중요시되었다. 4WD의 기술이 전쟁의 산물이라는 얘기이다. 예를 들면 폭스바겐이 1941년에 출시한 코맨더 바겐 타입 87은 그런 자동차 중 하나다. 비틀의 차고를 높이고 험로용 타이어를 장착한 4WD차량은 독일군의 주문으로 개발되었다. 그것이 현대적인 개념으로 진화하는데 기여한 것이 미국의 지프 랭글러와 영국의 랜드로버 디펜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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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WD, 그리고 군용이라고 하는 키워드에서 떠 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지프(Jeep)라고 하는 브랜드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FCA그룹의 지프 브랜드 영국의 랜드로버와 함께  4W의 대명사로 사용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만해도 지프는 봉고, 미원 등과 함께 보통명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SUV붐을 타고 더 이상 지프라는 용어를 보통 명사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지프의 탄생은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발단은 미국군 참모본부가 실시한 군용차량 경연이었다. 구동방식은 4WD, 최대적재량 1/4톤 등의 세부적인 조건이 제시되었고 유일하게 아메리칸 밴덤사가 그것을 통과했다. 그런데 아메리칸 밴덤사는 그것을 단기간에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군의 지시에 의해 실제 생산은 윌리스 오버랜드와 포드사가 위탁을 받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지프 라이센스는 윌리스 오버랜드가 소유하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윌리스 모터스, 카이저 지프 코포레이션, 아메리칸 모터스, 그리고 크라이슬러로 바뀌게 된다. 이는 오늘날의 장르상으로 SUV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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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장 나쁜 정치적 행위이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위해 ‘애국’이라는 명분에 밀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한 전쟁은 명분을 얻을 수 있지만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전쟁, 일본의 진주만 폭격, 부시의 이라크 침공 등은 권력자의 폭거다. 그들의 전쟁을 위해 자동차회사들은 의도적이지 않게 부역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부역이 수익과 연결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전쟁에 참여한 나라를 위해 자동차회사들은 군수용품을 생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업체인 르노는 1차 세계대전 동안 FT-17 탱크와 같은 군수물자를 생산했고 푸조도 군용 자전거, 탱크, 포탄, 군용 차량과 무기를 제조하는 군수 업체로 전환했다. 미국의 캐딜락은 항공기에 쓰일 엔진과 기계 부품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산해야 했다.

 

1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회사의 로고에 고스란히 남은 업체도 있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도약하는 말’ 모양의 로고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전투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Francesco Baracca)’가 자신의 전투기 동체에 그려 넣었던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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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는 1차 세계대전이 회사 설립의 기회가 됐다. 토요타 설립자 토요다 기이치로의 선친 토요다 사키치는 방직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의 섬유 수출이 위축되자 일본이 호황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유산을 물려주며 아들 기이치로에게 자동차 개발에 매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승전국인 프랑스 업체 르노는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시에 버스와 트럭으로 생산 차종을 확대한 후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반면 패전국인 독일의 업체들은 뒤이은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다. 경영난에 빠진 다임러와 벤츠는 합병해 다임러벤츠AG가 됐고 BMW는 살아남기 위해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전쟁의 산물이자 전쟁의 축복을 받은 것은 미국이다. 서유럽은 전쟁으로 모든 국토가 파괴됐지만 미국은 엄청난 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됐다. 그 결과 1920년대 말 미국에선 3,000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었고 4명 중 1명이 자동차를 소유했다. 자동차의 최대 시장이 된 미국에서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 재건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은 일본 토요타에게 자동차 제조 기술을 제공하고 차량을 납품받았다. 그것이 일본 자동차가 재건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2차 대전은 미국을 세계 패권 국가로, 한국 전쟁은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부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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