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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오토뉴스 채영석 국장은 30년 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 왔으며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월드 카 오브 더 이어의 심사위원이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과 다른 시각으로 산업 분석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3,000종 이상의 차를 타고 시승기를 쓰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터쇼와 기술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차원의 트렌드 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골드만 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역으로 유가 폭락 가능성이 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15. 현대차그룹, 공격적 전략으로 21세기에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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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승인 2017-01-06 21: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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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차, 더 정확히 현대차그룹의 부상은 21세기 들어서부터다. 이 난이 구체적인 역사를 다루기보다는 맥을 짚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지금은 한국차라고 하면 현대차그룹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들여다 보면 여러 자동차회사들이 공존했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 전까지만 해도 7개의 메이커가 있었다. 현대를 비롯해 현대자동차써비스, 기아, 대우, 삼성, 아시아, 쌍용 등 모두가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였다.

 

한국의 대기업, 즉 재벌의 존재는 분명 연구대상이다. 여전히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현대기아차그룹만이 한국 메이커로 분류되고 있고 대우는 한국GM으로, 삼성은 르노삼성으로, 쌍용은 마인드라 산하로 들어갔다. 르노삼성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이지만 한국GM과 쌍용은 제법 오랜 역사 동안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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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독일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상주의 국가다.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수출 위주의 산업 정책을 취해왔다.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나라 중 국민 소득 1만 달러를 넘긴 것은 독일과 일본, 한국, 그리고 대만 정도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각 나라마다 취한 정책의 차이로 인해 21세기의 경쟁력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다음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지 못하고 ‘삽질’을 한 결과 한국은 지금 심각한 혼란에 처해 있다. 이미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은 다국적 기업이다. 순수 민족자본만으로 굴러가는 회사는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그들의 표를 위해 애국심을 자극하고 이용한다. 더 나아가 존스턴 교수와 김영란 전 대법관의 표현대로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가 만연해 지금은 정치가 기업 발전의 장애물이 되거나 또는 결탁해 경쟁력을 갉아 먹고 있다.

 

정치가 산업을 어떻게 육성하고 어떻게 망가트리는지는 독일과, 미국, 영국의 예에서 잘 봐왔다. 독일 총리는 별명이 ‘자동차 총리’라고 할 정도다. 자동차산업만으로 국한하자면 독일은 여전히 세계 자동차 기술을 주도하며 부가가치가 높은 모델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수익성 높은 고가의 모델들을 생산해 내며 브랜드의 힘으로 물량까지 끝없이 늘리고 있다. 지금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그 브랜드 파워로 인해 어떤 모델을 라인업 해도 팔릴 것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일본은 ‘모노쯔꾸리(물건만들기)’로 대변되는 장인정신을 무기로 세계적인 양산 브랜드인 토요타와 닛산, 혼다 등을 배출했다. 그로 인해 Made by Japan 자동차는 전 세계 연간 판매대수 9,010만대(2015년 기준) 중 2,700만대에 육박한다. 그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차에 대한 높은 신뢰도다. 20년이 지난 토요타의 픽업 트럭 툰드라를 바다에 하루 밤 동안 빠트리거나 고층 건물 위에 놓고 같이 파괴한 후에도 약간만 손을 보면 다시 굴러간다는 것이 서구인들에 갖고 있는 일본차에 대한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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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미국시장에서 주목을 끌면서 부상한 현대기아차 그룹이 이제는 세계 5위 메이커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에 맞는 브랜드파워를 갖추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이견이 존재한다.

 

사실 현대자동차는 후발 업체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세를 키워왔다. 초창기 포드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과정에서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의 도움을 받아 미쓰비시의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한 첫 번째 고유 모델 포니가 등장한다. 당시의 분위기는 ‘포니가 남산을 오르지 못하면 망한다’라고 하는 표현이 잘 말해준다.

 

1976년부터 시판이 시작된 뒷바퀴 굴림방식 모델 포니의 생산으로 자신감을 얻은 현대차그룹은 Y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스텔라라는 차를 만들었다. 그 다음에 1985년 출시된 X카 즉 포니 엑셀로 이어지며 기술자립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갔다. 이때부터 현대차 라인업은 앞바퀴 굴림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여전히 디자인은 이탈디자인이 했고 엔진도 미쓰비시의 오리온 엔진이었다. 차체, 엔진, 디자인이 모두 외주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주도한 것이 현대차라는 점에서 고유모델로 인정받았고 차만들기에 대한 노하우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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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은 1986년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해 16만 8,882대를 판매함으로써 수입차 업체 최초로 미국 진출 첫 해 16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때의 일시적인 성공에 도취된 현대자동차는 캐나다 부루몽에 현지 생산 공장을 건설했다.

 

하지만 1986년부터 1989년 동안 4,000억 원을 투자해 캐나다 브루몽에 연간 10만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해 가동했으나 조악한 품질로 판매가 급감해 1993년 가동을 중단했고 1996년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다. 시장 예측의 실수까지 겹친 사건이었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를 반면 교사로 삼아 이후의 해외 진출에서 많은 교훈이 됐다. 당시 부루몽공장 관련됐던 경영진들은 후에 현대자동차의 글로벌화 전략에 투입됐다.

 

엑셀은 캐나다 부루몽 공장의 아픔에 못지 않게 시장 침투가 쉽지 않았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가 급증한 것이 독이 된 것이다. 미국 TV토크쇼에서 품질 문제로 웃음거리가 되어 1990년대 암울한 시기를 보냈었다. 특히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현대차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1991년 현대차는 영국 리카르도 설계의 알파 엔진을 만들어 냈다. 엔진의 기술 독립을 위한 행보의 시작이다. 포니 개발 때도 그랬지만 많은 국내의 전문가와 언론들은 현대차가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 엄청난 투자가 잘못될 경우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상물림(밥 러츠는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 콩알만 세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들의 활약(?)은 시대를 불문하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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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모델 포니 개발, 자체 엔진 개발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세 번째 터닝 포인트는 1998년 닥친 외환위기였다. IMF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부도에 처한 기아자동차를 현대자동차가 떠안게 됐다. 당시는 부도난 회사를 다른 회사가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충족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합병도 세계 자동차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한 내용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세계 자동차업계에는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하는 메이커만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지배해왔다. 규모의 경제의 요체는 물론 비용저감이다. 그래서 당시 세계의 자동차업계에는 격심한 M&A 물결이 일었다.

 

규모의 경제 논리가 단순히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이라는 논리로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 기본적인 논리를 거역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 메이커들은 이합집산을 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던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일정 수준의 규모를 이루었고 그것이 오늘날 현대차 그룹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다. 합병을 하지 않았더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던 메이커들이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빅5 자동차 업체들 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 자동차 업계 빅5에 진입하기 위하여 연간 생산량 500만대 수준의 생산라인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또한 기아자동차를 외국계 업체가 인수할 경우 현대로서는 국내 시장에서 조차 점유율을 지키기 어려운 입장이었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알려진 내용이다. 여기에 국민 정서상 “국민의 기업”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기아자동차를 외국계 기업에 넘기는 것이 정부로서는 부담이었던 점도 작용해 두 회사는 합병의 길을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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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그룹은 합병을 통해 우선 연구개발센터를 통합해 연구개발과정에서 많은 비용저감 효과를 보았고 플랫폼 공유화를 통해 생산과정에서 비용을 크게 저감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 원천이 여기에 있다. 그 힘으로 현대기아차 그룹의 남양연구소는 1만명이 넘는 연구인력을 보유하며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루어냈다.

 

또 하나는 외환위기로 인해 국내 100대 자동차 부품 업체 중 49개가 외국회사에게 넘어갔다. 그들이 앞선 기술력의 제품을 생산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면서 현대차의 품질은 한 단계 발전한다. 이는 그룹차원의 품질 경영과 맞물려 현대차 그룹의 차만들기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삼성자동차가 닛산의 모델을 베이스로 한 SM5를 내놓으면서 독과점적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일었고 그 역시 현대차 그룹을 자극했다.

 

21세기 들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 들은 앞으로 10개 자동차회사만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했다. 물론 그 10개 안에 현대차그룹은 없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6개만 살아남는다는 논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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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도 일본 메이커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시장에서 성장의 단초를 잡은 메이커다. 우선은 1999년 처음 도입한10년 10만 마일 품질 보증기간 정책이 가장 크다.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효과는 분명했다. 1998년 현대기아차 미국 판매량이 17만여대였던 것이 2002년에는 61만대를 넘기며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 상승세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부시 정권의 이라크침공이었다. 그로 인해 유가는 급등했고 연비가 좋은 저 배기량차의 수요를 촉발시켜 세계 시장에서 현대와 기아자동차가 만든 모델에 대한 수요 증가에 극적으로 기여했다.

 

미국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석유회사에게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려 주었지만 반대로 디트로이트 빅3는 침몰하게 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가솔린 가격의 폭등과 소비자 무력증의 소위 “CNN 효과” 등 두 가지 단기적 현상이 예상되지만 심각한 손상은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보다는 중동에서의 장기간 혼란으로 인한 불경기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전쟁에 쏟아 부은 돈으로 미국은 지금까지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위협이 있을 때 이미 가솔린 가격은 배럴당 23달러에서 30달러를 넘었다. 물량부족보다는 공급체계 붕괴에 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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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장기화되고 지지부진함으로 인해 당초 예상대로 미국의 경기는 하락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J.D.파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가솔린 가격이 그렇게 높이 인상되면 같은 자동차보다 약간 작고 연료효율이 높은 자동차를 살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었다. 34%는 더 작은 차를, 23%는 하이브리드 파워 트레인을 적용한 자동차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부에서는 설사 가솔린 가격이 폭등을 해도 이 조사에 의하면 운전자들은 그들의 운전습관을 바꾸기를 꺼려하는 것으로 결론짓기도 했었다. 소비자들은 어떤 가격일지라도 대중교통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 풀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반면 중대한 오일쇼크가 진행되면 소비자들은 SUV를 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에 대해 당시 오일업계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 중대한 충격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들 모두는 틀렸다. 흔히 하는 ‘전문가’들은 항상 그들이 필요한 전망만 내놓는다.

 

부시의 이라크침공은 미국의 석유재벌들에게는 포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을 무너트린 결정적인 계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그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급부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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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1999년 한국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284만대, 2000년은 311만대였다. 나라별로는 세계 5위 수준이었다. 현대차 그룹으로 좁혀서 보면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들하고는 차이가 나는 데이터가 보인다. 2004년 현대차 그룹의 국내 생산대수는 269만대였는데 10년 후인 2014년에는 359만대로 33.5%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GM은 44.9%가 감소했고 PSA는 50.8%, 닛산 40.5%, 포드 25.5%, 혼다 22.6% 등 큰 폭으로 감소하며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이 역외 이전 형태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폭스바겐 만이 독일 내 생산이 27.2% 증가했다.

 

세계화(Globaliza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거의 모든 선진국 기업들은 생산 공장을 인건비가 낮은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했다. 물론 현대차 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국내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해외 현지 생산을 늘려갔다는 점에서 다른 메이커들과 차이가 있다.

 

모든 자동차회사들은 다국적기업이다. 국적에 의미가 없어진 세상이다. 다만 그 기업이 속해있는 지역에서의 사회적 기여도를 중시하는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차 그룹은 한국이라는 지리적인 국가에 대한 기여는 다른 나라 자동차회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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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현대차 그룹은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2006년 독일 폭스바겐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이다. 피터 슈라이어로 인해 현대차 그룹은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가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부사장으로 참여한 2006년 현대차 그룹의 연간 판매대수는 378만대 수준이었고 8년이 지난 2014년에는 그 두 배가 넘는 800만대 벽을 돌파했다. 엄청난 속도다.

 

그런 와중에 2007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합병이 해소되고 포드가 부진에 빠지면서 현대차 그룹의 글로벌 순위가 세계 5위에 오르게 된다. 현대차 그룹의 증가보다는 다른 환경의 변화로 순위가 상승한 것이다.

 

2007년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또 다른 터닝포인트로 기록된 해이다. 중국에서 자동차 할부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중국의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는 879만대. 골드만삭스는 중국은 공급과잉과 시장포화로 연간 1,600~1,800만대를 정점으로 성장을 멈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전망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투자자들에게 좋은 정보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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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국시장에 현대자동차는 2004년 베이징 공장을 시작으로 뛰어 들었다. 현재는 현대 125만대, 기아 89만대 생산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2017년 충칭 공장에 완공되면 현대차 그룹 전체의 중국 생산용량은 254만대에 이르게 된다. 이는 중국 전체 시장의 11%에 달하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은 1998년 인도를 시작으로 미국, 러시아, 브라질, 중국, 터키, 체코 등에 10개 해외 현지 생산법인을 운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국내의 전문가(?)들은 무리한 확장이라든가 시장의 미래를 읽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현대차 그룹의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특히 일본 자동차회사들과는 달리 고비용의 선진국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지역으로의 생산 시설 확대가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제품 측면에서의 발전도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를 대표하는 모델은 아반떼다. 아반떼는 글로벌 톱 10에서 4위(2015년)을 기록하고 있으며 머지 않아 누계 판매대수 1,000만대를 눈앞에 누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누계 판매 1,000만대를 넘긴 차는 토요타 코롤라를 비롯해 폭스바겐 골프 등 10개 모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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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세단 쏘나타는 현대차그룹이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YF쏘나타의 파격적인 디자인은 특히 미국시장에서 주목을 끌었고 누계 판매 194만대로 역대 쏘나타 중 가장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NF에 비해 파격적인 디자인은 수요층의 연령을 낮추었고 그로 인해 현행 LF쏘나타가 다시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바뀌면서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토요타 캠리와 폭스바겐 골프 등 세계적인 패밀리카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LF 쏘나타 디자인이 2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수요층을 확보하기에는 유리하다. 쏘나타가 세대별로 이처럼 극적인 변화를 보인 것이 소비자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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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현대차 그룹은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네시스의 런칭은 일본 럭셔리 브랜드들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다. 아큐라와 인피니티, 렉서스 등은 1980년대 말 호화롭고 배타적인 전시장을 통해 럭셔리 브랜드를 기존의 자사 브랜드와 구별 짓고자 했다. 그에 비해 현대는 기존 현대 브랜드에서 판매해 오던 차를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로 격상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대해 현대측은 현대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점은 일본 럭셔리 브랜드들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같은 모델을 만들어 차별화해 판매하는 전략을 택했다. 예를 들어 토요타의 셀시오는 렉서스의 LS로, 해리어는 RX라는 차명으로 판매했다. 엄청난 개발비를 저감하고 마케팅만으로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키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는 닛산의 인피니티와 혼다의 어큐라도 마찬가지였다. 토요타의 렉서스는 2005년 일본 진출을 계기로 별도의 모델로 독립을 했지만 인피니티와 어큐라는 아직도 같은 모델로 다른 브랜드에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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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달리 제네시스는 별도의 뒷바퀴 굴림방식 플랫폼을 개발했다. 2004년에 BH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을 때 별도의 브랜드를 생각했던 것이 실현되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비용 측면에서 렉서스 등보다 불리한 출발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별도로 개발한 뒷바퀴 굴림방식 플랫폼의 수익성이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플랫폼은 연간 50만대 가량은 생산을 해야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제네시스와 에쿠스, K9의 연간 판매대수는 모두 합해 10만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4년에는 제네시스가 7만 1,932대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에쿠스 1만 2,562대, 기아 K9 9,043대로 합계 10만 5,053대에 그치고 있다. 그것도 별도의 플랫폼인 제네시스 쿠페의 1만 1,516대를 제외하면 9만 3,537대에 불과하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판매대수를 늘리는 것인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브랜드 독립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대두됐다. 그 과정에서도 현대자동차는 럭셔리 브랜드 런칭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상황이 도와주지 않아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유가가 폭락했고 기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2009년에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또 하나 일본 럭셔리 브랜드들은 부분적으로 독일의 경쟁사들이 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풍부한 자금과 사업적 강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네시스에는 발돋움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전통 혹은 인지도가 없다.

 

여기에 GM, 포드,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약 100년의 전통이 있는 그들의 캐딜락과 링컨, 알파 로메오를 재건하기 위해 수십억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게다가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도 최근 파죽지세로 이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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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는 이처럼 많은 경쟁자가 있는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미투 브랜드(me-too brand, 남들도 만드니까 나도 만든 브랜드 혹은 모방 브랜드)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네시스만의 철학과 고유한 브랜드 전망을 제시해야만 한다. 정체성 찾기, 혹은 만들기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현대측은 모던 프리미엄(Modern Premium)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고급제품을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처음 진입을 위한 조건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 부가가치의 모델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유효성을 증명하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네시스는 2021년까지 6개의 모델을 라인업한다는 계획인데 이는 이미 수많은 모델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 벤츠를 따라잡으려면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단기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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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망은 있다. 바로 중국시장이다. 중국은 2010년 럭셔리카 판매가 70% 증가했다. 이는 전체 판매보다 2배 이상의 상승폭이다. 중국시장의 2010년 판매는 1,806만대로 전년 대비 32.37% 늘었다. 여기서 럭셔리카는 보통 30만 위안 또는 4만 5천 달러 이상의 차를 말한다.
 
중국은 럭셔리 브랜드에게도 기회의 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0년 럭셔리카의 판매는 미국이 15%, 독일은 30% 정도에 그쳤지만 중국은 70% 이상. 거기다 럭셔리카가 중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를 넘지 않는다. 2010년 중국시장 럭셔리 브랜드 1위는 22만 7,900대(+43.4)의 아우디였고 2, 3위는 15만 8,489대(+84%)의 BMW, 14만 8천대(+115%)의 메르세데스였다. 벤틀리의 경우 판매가 100%, 800% 치솟았다.
 
그러자 인피니티, 아우디, BMW 등 고급 브랜드들의 중국 현지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일본 업체로는 가장 먼저 중국 합자회사 둥펑(東風)닛산에서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를 현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중국 판매 확대를 위해 인피니티의 글로벌 총괄법인을 홍콩에 신설했다.

 

독일 메이커들 중에서는 아우디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당시 아우디는 2015년까지 창춘(長春)에 제 2공장을 설립할 계획으로 현재 30만 대인 생산 규모를 2015년 70만 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발표했었다. BMW는 중국에서의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할 예정으로 제 2 공장 설립 투자 금액을 5.6 억 유로에서 10 억 유로로 확대했다. 10 만 대인 생산능력은 30 만 대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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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행보를 보였던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는 중국의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14년 3개 브랜드를 합친 판매 대수가 132만대를 넘었다. 아우디는 57만대로 굳건하게 1위를 지켰고, BMW는 45만대, 메르세데스는 28만대로 2, 3위를 차지했다.

2014년 중국의 고급차 판매 순위는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 재규어랜드로버(12만 2,000대), 렉서스(8만 5,000대), 볼보(8만 1,200대), 캐딜락(7만 3,500대), 포르쉐(4만 6,900대), 인피니티(3만대), 시트로엥 DS(2만 6,700대) 순이었다. 시트로엥이 2014년 런칭한 DS는 혼다 어큐라를 제치고 10위 안에 진입했다.

중국의 고급차 시장은 독일 3개사가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의 고급차 시장 점유율은 73.9%에 달한다. 메르세데스는 아우디, BMW에 비해 차이를 보이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좋다. 작년 판매 상승폭이 29.1%로 17.7%의 아우디, 16.7%의 BMW보다 크다. 2015년 여름 들어 메르세데스 벤츠의 판매가 1위로 올라서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만큼 투자한 결과다.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독립시킨 것은 이런 중국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갈수록 치열해져 가는 시장에서 판매대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데 그 장이 20세기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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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브랜드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미국시장 기준 제네시스의 시판 가격을 10만 달러를 넘겨야 하는 과제가 우선이다. 미국시장 판매가격은 제네시스가 3만 8,000달러~5만 1,500달러 선이다. 에쿠스, 그러니까 G90는 6만 1,500~6만 8,750달러 선이다.
 
미국에서 시판 가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양산 브랜드가 3만 달러의 벽을 깨야 하는 것이 우선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현대나 기아, 토요타 등이 6만 달러 벽을 깨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또 다르다. 미국시장에서 10만 달러가 넘은 가격표를 붙인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는 독일의 BMW와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영국의 재규어 등이다. 렉서스가 2011년에 처음으로 렉서스 LS600h로 10만 달러 벽을 넘었고 지금은 12만 440달러의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 인피니티와 아큐라는 아직 이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캐딜락과 링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네시스는 앞으로 이 벽을 넘어야 한다. 모던 프리미엄을 내 세우며 합리적인 가격에, 자동차를 이해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브랜드를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은 간단하게 가격으로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다. 그래야 브랜드 파워가 커질 수 있다. 수익성 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필수 요소다.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인 현대차그룹의 판매 제고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렉서스의 연간 판매는 65만대이지만 그로 인해 토요타 그룹 전체 판매는 1,000만대를 넘었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역할은 현대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가격 장벽을 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를 바탕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었을 때 그 다음 단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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